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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17) 빚갚기] ‘빚꾸러기’ 은퇴자 되길 원하나요?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오랜 저금리로 ‘부채 불감증’ 만연 … 은퇴 후 빚 상환능력 저하로 노후자금 까먹기 일쑤

가계부채가 1400조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다 보니 온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 빚이 많은 개인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50대, 60대 나이 드신 분들의 부채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빚을 안고 은퇴생활로 접어드는 것은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부채 상환 부담 탓에 현금흐름이 더욱 빡빡해질 가능성이 커서다. 무슨 수를 쓰든 은퇴 전에 빚은 청산하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은행돈이 내 돈, 빚 권하는 사회

성남시 분당의 김모(53)씨 이야기다. 10년 전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창업한 자영업자다. 2015년 초 내 집이 있었으나 사업장을 넓힐 자금을 만들기 위해 처분하고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집값 오름세가 무서워 전세 만기가 다가온 올 초 보유 자산을 전부 동원해 다시 12억원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2억 원을 투자한 펀드가 손실이 나는 바람에 모자라는 구입 자금 2억5000만원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대출금리는 2.7%로 원리금 합쳐 한달 108만원씩 나가고 있다. 한 달 수입이 평균 600만원 정도지만 자녀 교육비를 위해 붓는 적금 100만원으로 생활비가 구멍이 나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우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저금리 기조는 빚에 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은행 돈을 가볍게 여겨 빚 얻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풍조다. 말하자면 ‘부채 불감증’이다. 김씨네는 2%도 안 되는 은행적금 이자를 받으며 6%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고, 손실 난 펀드라도 집 구입 자금이 모자라면 처분해 충당해야 할 텐데 오히려 2.7%짜리 은행 담보 대출을 얻었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가계 운영이다. 재산이 야금야금 졸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을 수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금리가 센 마이너스 통장을 쓸 것이 아니라 정기적금을 해지해야 한다. 적금을 해지하면 금리 차로 인한 재산 손실을 다소나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김씨네와 같은 선택을 한다. 그 이유는 사용목적이 다른 돈에 의미의 차이를 두기 때문이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자녀의 교육자금과 생활자금은 다른 돈이라고 여긴다. 이른바 ‘심적회계’다. 마음 속에 오락계정·생활비계정·소득계정 등으로 분류하고 돈 소비를 달리하는 것이 심적회계다. 오락계정에 있는 돈은 별 부담 없이 쓴다. 대개 명절 때 회사에서 주는 떡값이나 연말 보너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높은 이율의 대출을 부담하면서 낮은 이율의 적금을 붓는 것도 심적회계의 영향이다. 적금을 마음속의 자녀교육 계정에 넣어 두고 ‘이 계정은 신성불가침 영역이니 절대 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씨네는 적금을 깨면 자녀의 교육비로 쓸 자금을 만드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지출은 줄이지 않고 부족한 생활비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웠다. 이는 잘못이다. 만약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 때 빚을 얻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또 펀드를 처분하기 아까우면 자금 사정에 맞춰 주택 규모를 줄이든가 해서 은행 대출을 최소화했어야 했다. 김씨네는 지금이야 부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벌고 있지만 소득이 확 줄어드는 은퇴 후엔 빚 올가미에 걸려 생활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빚을 쓰게 된다. 돈이 들어갈 일이 있는 데 모아 놓은 저축으로 부족하다면 일단 빌려서 메우고 나중에 갚을 수밖에 없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빚을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걸 갚을 능력이 있느냐다. 벌어들인 소득으로 빚을 통제 범위 내에 묶어 둘 수 있다면 빚의 과다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빚이 없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다.

문제는 저금리로 인해 부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은퇴생활로 접어들기 전엔 부채를 줄이거나 끄는 게 정상이지만 그냥 안고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고령층은 소득변동성이 크게 증가하지만 부채 부담이 커 재정적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한 지난해 기준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비율을 연령대별로 보면 55~64세가 85.5%, 65~74세가 115.2%로 35~44세(71.1%), 45~54세(85.5%) 등에 비해 높았다. 우리나라는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은퇴 이후엔 소득흐름이 줄어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능력이 떨어진다. 젊어서 일할 때는 급여형태든 사업소득이든 매달 정기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출금은 손쉽게 갚아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은퇴 후엔 모아온 자산을 축내면서 살아야 한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부채 상환 부담이다. 빤한 은퇴 생활비를 헐어가며 갚아나가야만 한다. 은행도 은퇴한 대출자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마이너스 통장은 신용도가 떨어진 은퇴자의 대출에 인상된 금리를 적용하거나 대출한도를 줄일 수 있다. 대출 원금에 대한 상환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금리 상승에 집값 하락 겹치는 복합충격

이 때 금리라도 오르면 큰 일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지금의 2배인 3%대로 올릴 것으로 예고한 만큼 우리나라는 그 수준 이상으로 금리가 오르리라고 전망한다. 금리 상승은 대출자의 이자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대출금리가 지금보다 2배 오르면 2억5000만원을 빌린 사람은 월 220만원의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우리나라 55세 이상 부부의 한달 평균 생활비는 230만원 정도다. 생활비 대부분이 빚 갚는 데 쓰이는데 견뎌낼 재간이 있는 은퇴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 큰 문제는 금리 상승에 집 값이 떨어지는 복합충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주택시장이 금리가 상승 기조로 돌아서면 하락세로 기울 것이란 의견이 분분하다. 원리금 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은퇴자들이 결국은 집을 팔아 대출 상환에 나설 것이고, 이렇게 되면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며 집값이 폭락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집을 팔아도 담보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깡통 주택’ 출현도 점쳐진다. 빚 상환 능력을 상실한 은퇴 파산자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우리보다 복지 수준이 높은 캐나다는 고령층의 은퇴파산 문제로 떠들썩했다. 캐나다의 65세 이상 노인들 중 42.5%가 어떤 형태로든 빚을 보유하고 있었고, 10%는 파산국에 파산을 신청했다. 노인 부채 증가의 주범은 저금리로 지목됐다. 초저금리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대출이 손쉬워지고 부채를 우습게 아는 풍조가 가속화해 빚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다 수명은 자꾸 늘어나는 데 부채 상환 부담에다가 질병 등의 이유로 목돈이 필요한 비상 상황까지 겹쳐 파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부채 증가 원인이 우리와 빼닮았는 점에서 은퇴 파산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험악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안되길 바라지만 빚은 은퇴 전에 청산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도다. 갚을 돈이 없다면 집을 줄이고 남는 돈으로 적극적인 빚 상환에 나서는 것이 안정된 은퇴생활을 약속하는 길이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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