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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0) 물가상승 대비] 노후자금 갉아먹는 ‘악마’ 물가 경계령 

 

명목금액으로 계산하면 목표자금 부족 위험... 은퇴설계에 주식·펀드 꼭 포함시켜야

▎사진:아이클릭아트
노후에 쓸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보통 의식주 비용인 기초 생활비는 월 150만원, 여기에 문화생활·의료비용을 더한 적정 생활비 200만~250만원, 그리고 해외 여행 등 여가를 즐기면서 지내는 데 필요한 돈은 300만원 이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이대로 준비하면 되는 걸까? 아니다. 큰 일 난다. 금액이 적어서가 아니다. 물가를 감안하지 않아서다. 물가는 돈의 가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악마’다. 노후자금은 물가 상승을 고려해 현재 계산된 명목금액보다 훨씬 많이 준비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돈 가치, 시간·물가와 반비례


얼마 전 한 보험회사는 국민연금 127만원과 주택연금 108만 원을 타는 어느 고객에게 노후생활비로 20년 간 매달 250만원을 쓰려면 즉시연금에 6500만원을 가입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보험사는 상속형 즉시연금에 이 금액만큼 가입하면 매달 15만원이 나오고 20년 후 원금이 만기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에 즉시연금 15만원을 더하면 월 250만원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물가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

물가 상승으로 15만원의 화폐가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진다. 즉시연금에서 나오는 월 15만원의 고정 금액으로는 현재 구매력 기준으로 매달 25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의 현금흐름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간 물가상승률을 2%로 잡고 10년 후 현재 화폐가치로 15만원의 연금을 타려면 6500만원이 아닌 7847만원을 즉시연금에 들어야 한다. 20년 후엔 9658만원이 필요하다. 만약 보험회사의 추천대로 즉시연금을 준비한다면 노후에 생활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돈이라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 또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속성이 있다. 돈은 위대하지만 시간 앞에선 맥을 못 춘다. 경제성장에 따라 물가가 오르고 시중에 돌아다니는 통화량이 늘어나게 돼 돈 가치의 하락을 부른다. 이를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돈 가치는 시간이 길수록, 물가상승이 심할수록 하락세에 가속이 붙는다.

주어진 물가 상승 아래 현재 돈의 가치가 절반이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72법칙이다. 72란 숫자를 연간 물가상승률로 나누면 원금의 가치가 반 토막 날 때까지 걸리는 햇수를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간 물가상승률이 3%라면 24년 뒤 화폐가치가 절반이 돼 그 시점의 1000원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현재의 500원에 해당한다. 30대 중반의 월급쟁이가 24년 뒤의 노후자금을 5억원으로 계산했다면 목표는 10억원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돈의 속성을 감안하면 은퇴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분명해진다. 투자수익률이 최소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야만 목표자금이 부족하지 않게 된다. 만약 물가상승률이 2%지만 투자수익률이 6%라면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가치는 그 차이인 4% 복리로 불어난다. 그러나 투자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면 투자원금의 실질가치는 오히려 떨어져 재산 가치가 줄어드는 결과가 된다.

노후준비 같은 장기 재무목표는 물가라는 변수를 꼭 챙겨야 나중에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보험사처럼 노후생활에 들어가는 시점에 자산 규모를 정해놓고 생활비를 계산하다가는 고객의 노후준비를 망칠지도 모른다. 결국 은퇴설계는 죽는 날까지 어떻게 하면 물가 훼방꾼을 철저하게 막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은퇴 시작 시점에 얼마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방식보다는 은퇴 기간을 초기·중기·후기의 3단계로 나누어 자산을 분산해 두는 것이 좋다.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시간과 물가를 이겨낼 수 있는 주식과 채권 비중을 높여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은퇴설계는 인플레이션과의 장기전이다. 은퇴 자금의 일정 부분을 마지막까지 투자 자산으로 보유해야 하는 이유다.

사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저물가의 영향으로 은퇴설계에서 물가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론 다르다. 미국이 지난해 말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한 것은 물가 상승을 의식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저금리 기조가 끝나는 건 시간문제다. 통화당국이 인상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소비자물가지수상승률은 정부의 연간 목표억제선인 연 2%를 이미 넘었다. 유럽 국가들은 디플레의 함정이 빠지지 않도록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저물가 시대가 저물고 있다.

[박스기사] 물가 방어 3총사 - 물가연동채권·국민연금·주택연금, 물가 오를수록 이득

보통 기준금리를 올리는 전통적 통화정책의 이면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물가연동채권이 주목받게 된 것은 그래서다.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채권값도 하락하게 마련이지만 물가연동채는 물가가 오르면 원금이 불어나고 받는 이자도 늘어 물가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을 보상받게 되는 구조다. 물가연동채는 이자지급 주기가 돌아오면 그 달 발표된 물가연동계수를 원금에 곱해서 조정원금을 산출한다. 물가가 상승할수록 조정원금이 커지고 이자 지급 규모도 늘어난다.

예를 들어 10년 만기, 액면 1억원, 표면이율 2%인 물가연동국고채에 투자할 경우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행일 100에서 1년 후 102로 올랐다면 이때 원금은 1억200만 원으로 조정된다.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면 이자는 연 200만원 수준이지만, 물가가 올라 이자도 연 204만원으로 늘어났다. 10년 만기까지 보유했을 때 물가지수가 그 사이 110으로 상승한다면 원금은 1억1000만원으로 늘고, 이자도 연 220만원으로 증가한다. 다만 물가채도 채권이기 때문에 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에 자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만기까지 보유하면 초기 투자했던 원금보다 물가가 오른 만큼 더 많은 상환금을 받게 된다. 여기에 물가 상승 기대감에 물가채에 대한 투자수요가 몰리면 물가채 금리는 덜 오른다. 금리와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시기에는 물가채를 사고 일반 국채를 매도하면 인플레를 헤지하면서 금리 상승에 따른 수익까지 노릴 수 있다.

국민연금은 미래 가치를 반영한다. 지금보다 미래에 받는 연금이 더 커진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개인연금은 개시 시점에 고정된 수령금액이 끝까지 유지된다. 지금이나 미래나 받는 연금이 동일하다는 말이다. 개인연금과 국민연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국민연금의 미래 가치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는 전년 동월 대비 전국소비자물가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클수록 국민연금 수령액도 커진다. 소비자물가상승률 반영 시기는 4월1일부터 익년 3월31일까지다. 예를 들어 2015년 전국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였기 때문에 2016년4월부터 올 3월까지 2015년도보다 1.9% 인상된 국민연금이 지급됐다. 올해는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 0.7%만큼 오른 금액이 4월부터 내년 3월말까지 지급된다.

주택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물가상승률에 직접 연동되지 않지만 가입 당시 결정된 주택가격상승률이 매년 일정하게 계속되는 것으로 가정한다. 물가 상승의 영향을 전혀 안받는다고 할 수 없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396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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