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보장.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다. 언제 돌발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투자에서 원금 보장은 매력적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라든가 바닥을 헤맬 때 원금 보장 상품은 인기를 끈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다. 수익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필요 노후자금을 모으지 못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원금 보장의 허실을 짚어보자.
퇴직연금 95%가 원금보장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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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보장 상품은 주가 높을 때 사야원금 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증시가 좋을 때 원금 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주가가 오랜 박스권을 벗어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요즘이 그렇다. 그러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를 상대로 원금 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 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의 세계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 보장이란 없다. 목돈으로 큰 돈을 단기적으로 투자할 때 원금 보장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적립식으로 다달이 얼마씩 부어나갈 때엔 어느 정도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그 대신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시간은 수익과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전문가들은 연금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최소 4~5% 수준이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 후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 이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의 권장 소득대체율은 70%이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원금 보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원금 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생활비가 모자라 ‘노후빈곤 쇼크’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결국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적배당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박스기사] 원금 보장 심리 퇴치법 - 주가 확인 자제해 ‘최신 효과’ 차단해야인간은 최신 정보와 충격적인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걸 ‘최신 효과’라고 한다. 예컨대 주가 하락과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신문기사를 봤을 때 최신 효과가 작용해 앞으로의 위험을 과대평가한다. 반면 주가 상승 기간엔 기회를 과대평가하고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사람은 주가 상승을 암시하는 정보를 무시하고 손실회피 심리에 빠진다. 원금 보장 상품을 사는 건 그래서다.대표적인 원금 보장 상품이 저축성 생명보험이다. 이 상품은 사고나 질병 등을 보장해주고 납입한 보험금 원금과 확정이자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비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채권도 비슷하다. 채권투자자는 손실회피 심리 때문에 채권에 손을 댄다. 채권은 투자포트폴리오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재산 대부분을 채권이나 부동산·생명보험에 묶어두는 것은 좋지 않다. 주식은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수익률이 높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채권이나 생명보험에 투자하는 것은 주식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손해가 두려워 안전자산에 가진 돈을 집중시키는 것은 물가상승률과 세금까지 감안할 때 앉아서 재산을 까먹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손실이 두려워 섣불리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최신 효과를 차단하면 된다. 매일 주가 움직임을 확인하거나 주가에 관한 기사를 수시로 찾아 읽는 것을 삼가라는 이야기다.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당연히 자산의 안전성이 최우선이다. 투자한 돈이 필요할 때가 다가올수록 금고에 닥칠 위험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은퇴 후반에 쓸 돈만큼은 수익성을 생각해 위험자산에 묻어두어야 한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