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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2) 심적회계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음속 ‘노후계정’으로 돈관리를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돈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 달라져...어떤 돈이든 절대금액은 같다고 여겨야

▎사진 : ⓒgetty images bank
1980년대만 해도 직장인의 월급은 봉투에 담겨 나왔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가 빳빳한 현찰로 돌아오니 뿌듯함이 컸다. 집에선 그걸 집세, 음식료비, 각종 공과금으로 나눠 각각의 봉투에 넣어 관리했다. 살림이 계획적으로 꾸려져 헛돈이 생기는 일이 적었다. 지금은 월급이 전산처리돼 은행통장에 입금된다. 실물 없이 숫자로만 나타나니 월급 타는 맛이 없어졌고, 지출내역별로 갈라놓는 봉투를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를 이용한다. 마음속에 회계장부를 만드는 것이다. 심적회계는 비합리적으로 관리되기 십상이다. ‘이 돈은 피땀 흘려 번 돈이니까 아껴 써야지’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돌려받아 공돈이 생겼으니 여행이나 갈까’ 하는 식이다. 심적회계는 이처럼 낭비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노후준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양날의 검인 심적회계를 유리하게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합리적 소비 부르는 ‘심적회계’

퀴즈 한 토막. 뮤지컬을 보려고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관람료는 10만원이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10만원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입장권 살 돈은 남아 있다. 뮤지컬을 꼭 보고 싶다면 10만원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사야 할까. 상황을 이렇게 바꿔보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10만원짜리 입장권을 미리 사두었다. 그러나 공연 당일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 호주머니를 살펴보니 입장권을 잃어 버렸는지 안 보인다. 10만원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다시 사야 할까. 두 상황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뮤지컬을 꼭 보고 싶다면 10만원을 다시 투자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 상황에 대해 다르게 대처한다. 전자에 대해선 다시 사겠다는 답변이, 후자는 사지 않겠다는 답변이 많다. 왜 그럴까. 사람들의 마음속엔 ‘뮤지컬관람계정’과 ‘현금계정’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잃어버린 10만원은 현금계정이어서 뮤지컬 관람을 위한 추가 지출 정도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10만원을 지불한다. 그러나 후자는 뮤지컬관람계정에서 입장권이 빠져나간 것이어서 똑같은 입장권을 두 번 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심적회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심적회계는 경제학과 심리학을 융합한 행동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이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소비에서 사람들의 24%는 구두쇠 성향을 가지고 60%는 크게 갈등을 겪지 않고 소비하며, 15%는 낭비벽을 가진다. 구두쇠와 낭비벽이 있는 사람의 차이는 지출에 대한 고통의 정도에서 나타난다. 구두쇠는 지출의 고통을 크게 느끼는 데 반해 낭비벽이 있는 사람들은 지출을 하더라도 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심적회계의 마술에 잘 걸려드는 것이 바로 구두쇠를 제외한 76%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구분해서 생각한다. 기업이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처럼 마음속의 회계장부를 가지고 돈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생활비계정’ ‘저축계정’ ‘기타계정’ 이런 식이다. 따라서 같은 돈이라도 그 돈을 어떤 계정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소비의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기타계정에 있는 돈은 부담 없이 쓰지만 생활비계정에 있는 돈은 아낀다. 대개 쉽게 번 돈은 기타계정으로, 어렵게 번 돈은 생활비계정으로 향한다. 연말정산 환급금이나 성과급이 기타 계정으로 들어가게 되면 흥청망청 사용돼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현찰이 아닌 상품권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가 훨씬 씀씀이가 커지는 것도 심적회계의 영향이다.

이런 심적회계는 실생활에서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예금계좌에 돈이 있으면서 신용카드 빚을 갚지 않는 행위다. 예금이자는 기껏해야 2% 내외고 신용카드 이자는 10% 이상이다. 예금으로 신용카드 빚을 갚으면 연 8%의 차익거래 기회가 생기는데도 상당수 가정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예금을 마음속 저축계정에 넣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이란 이름이 붙으면 좀처럼 꺼내 쓰려 하지 않는다. 또 신용카드 빚을 갚으려고 빠져나간 예금을 바로 메우지 않으면 큰 피해가 돌아올 것이라고 걱정한다. 결제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구매한 물건에 대해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그 비용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돈이 내 수중에서 나갔다는 생각이 덜하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펀드 투자도 이런 심적회계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투자자가 A회사 주식을 주당 20만원에 샀는데, 주가가 25만 원까지 오르다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매입가를 밑돌게 됐다고 하자. 이 투자자는 A회사 주식을 팔 수 있을까. 커다란 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면 이 투자자는 어지간해선 이 주식을 팔지 못한다. 마음속 회계장부에 5만원의 이득을 봤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어 언젠가는 주가가 매입가를 웃돌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강하다. 한 증권사가 적립식 펀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이상이 투자의 목적을 노후준비라고 답했고, 적정 투자기간은 3.3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1년 이내에 적립식 펀드를 환매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제 투자기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1년10개월로 2년이 채 안됐다. 투자자들은 대개 수시로 수익률을 확인하면서 마음속으로 회계장부를 작성하는데, 그러다 보면 장기 보유를 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헝클어지는 것이다. 또 시장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분산투자에도 심적회계가 끼어들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수익률에 대한 평가를 전체 포트폴리오가 아닌 개별 자산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리저리 투자처를 옮기거나 자주 사고파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마음속 장부, 쉽게 바꿀 수 있어

돈을 쓸 때마다 미래를 생각하고 내 자산의 변동상황을 일일이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심적회계를 사용하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심적회계는 합리적 경제행위를 방해하는 요소다. 그럼 어떻게 하면 심적회계의 덫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먼저 어떤 돈이든 절대 금액은 같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월급으로 받는 돈이든 선물로 받는 돈이든 모든 돈은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심적회계는 말 그대로 마음속 장부다. 마음속 장부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있다. 이를 테면 보험 만기 상환금을 탔을 때 ‘기타계정’ 대신 ‘유예금계정’에 넣어보자. 기타계정의 돈은 공돈이라고 생각해 흐지부지 써버리지만 유예금계정의 돈은 소비를 연기하게 된다. 그렇게 3~4개월 기다리다 보면 공돈이 소중한 재산으로 바뀌게 된다.

신성불가침 영역인 ‘심적 노후계정’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노후계정은 소비보다는 장기 저축이란 인식이 강해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에서 일부 인출이 일어나지만 그 규모가 얼마 되지 않고, 또 인출한다 하더라도 몇 년 안에 상환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심적 노후계정의 소비억제력을 짐작할 수 있다. 투자의 경우 자신이 단기 투자자인지 장기 투자자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심적회계 기간을 정해 주기적으로 손익을 제대로 평가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398호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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