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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커피머신 판매 1위 동구 박원찬 회장] 프리미엄 제품으로 유럽 명품에 도전장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8년 간 커피머신만 제조...최근엔 프리미엄 브랜드 베누스타 출시

▎사진:전민규 기자
가끔 회사 이름보다 제품이 더 많이 알려진 기업을 만난다. 일상에서 흔히 보고 사용해온 제품인데, 누가 만드는지조차 모르던 경우다. 국내 커피머신 판매 1위 기업 동구가 그렇다. 이 회사 제품을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음식점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한 다음 출입구 옆을 보면 ‘티타임’이란 커피머신을 곧잘 볼 수 있다. 제품 하단을 보면 동구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김밥천국부터 대형 갈비집까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선 지금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티타임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다.

동구는 1989년 박원찬 회장이 설립한 강소기업이다. 지난 28년 간 커피머신 제조 외길을 걸어왔다. 식당·사무실·가정용 소형 커피머신을 만든다. 최근엔 유럽산이 장악해온 프리미엄 제품도 출시했다. 스스로를 ‘공돌이’라 부르는 박 회장은 창업 초기 당시 상황을 묻자 “매일 맨땅에 헤딩이었지”라며 웃었다. 그는 “제가 공대 출신이라 앞뒤 못 가리고 좋다는 기술은 다 더해서 기계를 만들었다”며 “가격 경쟁력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만든 무모한 제품이었는데 다행히 삼성·LG 같은 대기업에서 높게 평가해준 덕에 활로가 생겼다”고 말했다.

동구는 사업 초기인 1993년 커피머신 업체 중 처음으로 액정화면(LCD)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커피·설탕·크림의 배합 비율을 조절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혁신 제품이었다. 사용자가 작동 현황을 화면으로 볼 수 있고, 1회용 컵 대신 일반 커피잔을 쓸 수도 있었다. 직원 5명과 밤을 새워 만든 제품을 봉고차에 싣고 무작정 팔러 나갔다. 직원들에겐 “물건 다 팔기 전엔 돌아오지 않겠다”며 회사를 나서곤 했다. 수없이 문전 박대를 당하던 중 흥미를 보인 업체들이 나왔다. 그중 한 곳이 삼성이었다.

삼성에 납품하며 시장에서 인정받아


▎동구 티타임은 국내 음식점에 가장 많이 보급된 커피머신이다.
당시 동구는 매출 15억원에 불과한 4년차 중소기업이었다. 제품을 보고 연락을 했지만, 삼성전자 협력사로 삼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매출이 일정치 않아 재무제표가 부실했다. 여기에 방 한칸 규모의 작은 공방에서 만드는 제품에 삼성 로고를 달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판매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회장은 회사가 너무 영세하다는 삼성 직원의 이야기에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사장이 돈이 없지, 직원들 실력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며 큰소리 쳤죠. 제품이 우수하니 일단 진행해보자고 하더군요.”

1990년대 삼성은 다양한 소형 가전을 OEM 방식으로 내놨다. 국내 시장에서 인정받고 수출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동구는 기술력만으로 자격을 얻었다. 삼성전자 OEM 업체 중 매출이 가장 낮은 업체가 동구였다. 그러나 삼성이 OEM 가전 사업을 축소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오래 남아 거래한 곳도 동구였다. 비결은 기술력에 있다. 한국 커피머신 분야에선 동구 외에는 대안이 없을 정도로 앞서 있었다.

창업 초기부터 박 회장은 기술을 중시하며 회사를 이끌었다. 국내 최초로 전자동 커피머신을 개발했고, 페이퍼 필터 제품과 전자동 원두 커피머신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자 기술과 틈새시장이 필요하다. 박 회장이 커피머신이란 품목만 바라보고, 기술 개발에 매달린 덕에 살아남은 것이다.

삼성에 납품을 시작하자 동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후 LG·동서식품·네슬레·대상·웅진·교원 등에도 제품을 공급했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커피와 관련된 기업에는 모두 우리 제품이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유통망이 넓어지며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초기 동구 제품의 판매 대상은 기업 사무실이었다. 손님이 오면 차나 커피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주로 여직원에게 이를 시켰는데, 동구 홍보 문안이 인상적이다. ‘남녀평등 시대다.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 말고 직접 뽑아 마셔라’는 내용이었다. 90년 대 들어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대중 음식점이다. 식후 커피 한잔 문화가 퍼지자 식사를 마친 고객에게 서비스로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식당이 늘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나오는 커피머신은 바로 음식점이 원하던 아이템이었다.

수출에도 일찌감치 눈을 돌려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1995년 엔 러시아에 처음으로 국산 커피머신을 수출한 이후 29개국에서 제품을 판매 중이다. 베이징 국제공항, 태국 이민국, 인도네시아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 케냐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있는 커피머신도 동구 제품이다. 2007년 백만불 수출탑, 2013년 3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지난해 동구 매출은 280억원이다. 박 회장은 차세대 성장동력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가 찾은 답은 프리미엄 커피머신이다. 동구 제품은 중국산 저가품과 유럽산 고급품 사이에 끼어 있다. 전형적인 한국 제조품의 위치다. 그는 중국산 제품과 가격 경쟁으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구 제품은 100% ‘메이드 인 코리아’다. 한국에서만 만든다. 이게 아시아에선 먹힌다. 한국산 제품의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다.

프리미엄 시장은 자체가 매력적이다. 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기계들이 자리했다. 시장은 세코·유라·넥타 등 소수의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박 회장은 “유럽산 최고급 제품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내일이 있다”며 “지난 8년 간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매달렸는데 이젠 정말 좋은 기계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의 베누스타 렘 D9이 좋은 예다. 동구는 8년 전 원두커피 시장에 주목했다.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프리미엄 제품이 필요했다. 베누스타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렘 D9은 동구가 8년 간 연구에 매달려 개발한 프리미엄 제품이다. 최근 동구 프리미엄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자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국내 유통되는 유럽산 프리미엄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제조업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라며 “부품 국산화에 더욱 속도를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커피머신 수준 웬만한 바리스타 못지 않아

그는 커피 만드는 원리를 들어 프리미엄 제품을 설명했다. 커피 원두를 용기에 담고 위에서 눌러주는 동작을 탭핑이라고 한다. 압력에 따라 물의 흐름이 달라지며 맛에 영향을 미친다. 물을 내리는 시간과 온도, 그리고 세기도 중요하다. 원두의 종류와 원하는 커피 형태에 따라 섬세한 조절이 필요하다. 실력있는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는 풍부한 맛과 향을 머금고 있다. 기술 발달 덕에 지금은 자동 커피머신 수준도 만만치 않다. 박 회장은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은 모두 기계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18년엔 프리미엄 제품을 들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도 처음으로 참석할 계획이다. “고급 자동차 하면 벤츠가 떠오르는 것처럼 프리미엄 커피 하면 동구 베누스타가 생각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산 프리미엄 커피머신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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