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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자연류 바둑처럼 물 흐르듯 경영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고 여유·합리성 중시...한방에 도산할 가능성 작아

기업은 대부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둑에서도 생사를 건 처절한 싸움이 흔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경쟁에서 물이 흘러가듯 순리적으로 경영을 하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 엉뚱하고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물이 흘러가듯 자연류의 바둑을 구사하는 다카가와 9단 같은 기사도 있다. 다카가와의 자연류를 통해 순리적인 기업 경영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자연류의 바둑: 영토전쟁의 게임인 바둑에서는 수익성과 전투력을 숭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익을 많이 올리기 위해 상대보다 좋은 곳을 빨리 차지하려고 하고 전투력으로 적을 제압하려고 한다. 그래서 바둑판에서는 이익을 탐하는 욕망과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패권주의가 횡행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한편으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챙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처럼 살벌한 바둑판 위에서 자연류(自然流)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다카가와 가쿠 9단이다. 다카가와 9단은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는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다카가와는 이 말처럼 자연스럽게 두어가는 바둑을 구사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주류’라는 매력적인 바둑으로 유명한 다케미야 9단도 자신의 바둑을 ‘자연류’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는 점이다. 우주에서 별들의 호쾌한 전쟁을 펼친 다케미야가 자연류를 지향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하지만 다케미야는 우주류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강해 팬들이 자연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자연류라고 하면 역시 다카가와가 적격이라고 본 것이다.

자연류는 경쟁이나 전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물이 흐르듯 유연하게 두어 나간다면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는가. 기업을 경영할 때 유유자적하듯 여유를 부린다면 자칫 도산을 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카가와의 바둑을 보면 그렇지 않다. 다카가와는 유수부쟁선의 바둑을 두면서도 훌륭한 성적을 냈다. 일본의 전통적인 타이틀 본인방전을 9기나 연속 제패했다. 또한 50대의 나이에 젊은 최강자 린하이펑 9단에게 도전해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맞보기의 사고: 자연류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여유와 합리성을 위주로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크고 좋은 곳이 있으면 남에게 빼앗길세라 잽싸게 덤벼드는 것이 상식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서 호재가 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 그러나 다카가와의 바둑에서는 그런 식으로 서두르는 수를 두지 않는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유유하게 두어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여기에는 ‘맞보기’라고 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다. 맞보기란 좋은 곳이 A와 B의 두 곳이 있다고 할 때 둘 중 어느 하나를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군데 중 하나는 내 차지가 되니 굳이 서둘러서 어느 한 곳을 차지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보자.


[1도] 공식대국에서 현금과 같은 실리를 좋아하는 기타니 미노루 9단과 둔 바둑이다. 다카가와는 흑1에 뛰어 자신의 약한 돌을 안정시킨다. 백4까지 된 다음 흑은 두고 싶은 곳이 A와 B 그리고 C의 세 군데가 있다. 욕심 같아서는 이 세 곳을 모두 차지하고 싶다. 그러나 혼자서 모두 차지할 수는 없는 법. 따라서 흑은 이 중 가장 좋은 곳을 두고 나머지는 맞보기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2도]에서 다카가와 9단은 흑1의 큰 곳을 점령하고 상변과 하변을 맞보기로 삼았다. 백2로 하변을 차지하자 흑3으로 상변을 차지한다. 만일 백2로 상변을 차지했다면 흑은 하변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곳을 맞보기로 삼으면 황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3도]에서 기타니 9단이 백 1에 벌려 실리를 벌어들이자 다카가와 9단은 느긋하게 흑2로 지킨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흑2로 A에 침입해 백진을 부수는 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다카가와는 그런 침입을 급하게 결행하지 않는다. 백3으로 흑진에 들어온 백돌을 공격하며 서서히 기회를 본다.

이처럼 지킬 곳을 지켜가며 맞보기로 여유있게 두어가는 것이 다카가와 스타일이다. 맞보기는 평범한 기법이지만 눈앞에 먹을 것이 보이면 즉각 덤벼드는 사람은 쓰기가 어려운 기법이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이 있다는 느긋한 생각이 있어야 맞보기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대안을 한 가지만 생각하지 않고 복수로 만들어야 맞보기로 할 수 있다. ‘꿩 대신 닭’이란 말처럼 이것을 갖지 못하면 다른 것을 갖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연류의 경영: 다카가와 9단은 자신의 스타일, 즉 자연류의 강점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일본 전통의 기전인 본인방 타이틀을 9기 연속 차지한 것이다. 같은 타이틀을 아홉 번 연속으로 차지한다는 것은 실력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카가와 9단의 이런 좋은 성적은 자연류의 경영이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카가와의 바둑은 무엇보다도 크게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이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운영을 하기 때문에 무리한 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무리한 수나 과수를 두지 않으니 그만큼 리스크가 적다. 한 방에 도산할 위험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또한 지킬 곳을 지켜두기 때문에 돌의 무리가 엷어지는 일도 없다. 흔히 말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원리가 깨어지는 상황이 잘 나오지 않는다.

기업이나 개인의 삶에서도 할 수만 있다면 다카가와처럼 자연류의 경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개인의 인생에서 여유를 갖고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업 역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며 도박하듯 무모한 경영을 하지 않고 물이 흘러가는 경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느긋하게만 운영하기는 어렵겠지만 근본적으로 자연류의 경영을 추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직원들을 몰아붙이고 억지를 쓰듯 판매고를 올리려는 방법으로는 회사생활이 너무 고달플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질려 사기업에 들어갔다가 그만 두는 사원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경영자들은 기본적으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순리적인 경영을 생각해 봄직하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10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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