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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가 최대의 불확실성가도가도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인도의 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나무 위에는 원숭이가 뛰어 놀고 그 아래에서는 사슴이 서로 모여 있는, 너무나 평화로운 장면이 그것이다. 두 녀석이 유난히 친한 듯한데, 왜 그럴까? 나름 이유가 있다. 모여 있을수록 언제 어디서 난데없이 나타날지 모르는 호랑이를 좀 더 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슴의 청력과 경계심은 대단히 예민하다. 아주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데다,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바람처럼 달리고 본다. 녀석들의 유전적 사촌인 노루가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 십리를 도망간다’고 하듯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그 이상한 소리가 지나가는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일단 도망부터 치는 게 좋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실수는 다시 해도 괜찮지만 하나뿐인 목숨에는 ‘다시’란 없지 않은가. 우연과 행운은 어디서든 기대할수록, 또 믿을수록 위험하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 있으니 멀리 볼 수 있다. 이들이 모여 다양한 촉을 가동하면 웬만한 이상 징후는 모두 포착할 수 있다. 이 숲 속에서도 친분은 생존의 이득에서 시작된다.평화로울수록 평화를 깨는 시도가 가까이 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슴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 녀석은 항상 주변을 살핀다. 그 와중에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 이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날카로운 경계음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동시에 모든 눈과 귀가 모든 방향을 면밀하게 스캔하기 시작하고 이상하다 싶으면 공습경보를 내린다. 순간 온 숲이 왁자지껄 해지며 멋쩍은 듯 어색해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아, 이렇게 모여 있어서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혼자 있으면 닥쳐오는 위기를 혼자 맞을 수밖에 없지만 다같이 있으면 내가 타깃이 될 확률이 그만큼(1/n로) 줄어든다. 위험분산 효과다.좀 더 위험한 환경이라면 대응책도 그러해야 한다. 남아프리카의 미어캣은 아예 그날의 보초를 지정해 높은 곳에 올라가 망을 보도록 한다. 이들의 서식지는 대체로 드넓은 평원이라 이들을 노리는 매는 어디서든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이들은 숨을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은폐, 엄폐물이 있는 숲 속보다 좀 더 일찍 위기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부지불식 간에 닥쳐오는 불확실성에 대한 자연의 제 1법칙은 바로 가능한 빨리 발견하는 것이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도 거대한 빙산을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더라면 그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면 이걸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여름만 되면 나타나서 우리에게 이걸 알려주지만 우리는 그저 귀찮아 하다 못해 어떻게든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드는 녀석이 있다. 앵앵거리며 끊임없이 귀찮게 하지만 웬만해서는 잡히지 않는 녀석들, 파리다. 이 녀석들은 왜 잡히지 않을까? 흔히 파리의 최고 경쟁력은 오랜 시간 진화한 정교한 비행장치라고 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이 세상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에 대비하는 ‘삶의 태도’다. 연구에 따르면 파리는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평균 0.1초 만에, 그러니까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그 ‘다가오는 낌새’와 다른 방향으로 잽싸게 피한다. 비결은 하나다. 언제든, 어느 방향으로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덕분이다. 이러니 잡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당연히 여름마다 당하는 우리의 괴로움도 ‘아주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능한 빨리 위험 감지해야 생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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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는 ‘느닷없는 기습’으로 대응해야이런 나름의 대응전략을 갖고 있으니 이들을 목표로 하는 사냥꾼의 삶이 쉬울 수 없다. 우리 눈에는 쫓아가고 싶을 때 그렇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또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생각만큼 사냥은 쉽지 않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다가오는 위기를 최대한 빨리 발견해 상대에게 불확실성을 더 많이 선사하는 게 쫓기는 쪽의 관건이라면 쫓는 사냥꾼은 정확히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상대가 주는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그 안에 있는 확실성, 그러니까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내 적절한 ‘때(타이밍)’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 역으로 상대에게 ‘느닷없는 기습’ 같은 최대의 불확실성을 선물할수록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움직이는 목표를 확보해야 할 때 이 패턴파악 능력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필수다.문제는 이 숨은 패턴이 한눈에 척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끈질기게 관찰하고 면밀하게 주시해야 어렴풋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보아야 할 걸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그야말로 뚫어지게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럴까? 호랑이·사자 같은 내로라하는 사냥꾼일수록 쏘아 보는 눈이 무섭다.그런데 이런 눈을 가지지 않았는데도 이 능력을 아주 뛰어나게 가진 존재가 있다.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사피엔스는 어떻게 사냥꾼의 최대 숙원인 이 능력을, 그것도 탁월하게 가질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최고의 경쟁력이랄 수 있는 이 능력을 의도적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얻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수백만 년 전 갈수록 줄어드는 숲에서 나온 인류가 새로운 터전인 초원으로 갔을 때 그곳은 이미 빠르고 강한 맹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처럼 될 수도 없었고 코끼리처럼 덩치를 키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인류는 남다른 방식을 창조해냈다. 직립보행을 통해 ‘손’을 확보해 도구 사용능력을 높였고 혼자가 아닌 긴밀한 협력을 하는 집단으로 살아가는 모델을 개발했던 것이다.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은 부가소득이 생겼다. 직립보행으로 후두가 이동하면서 다양한 소리, 더 나아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더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사냥 성공률이 높아져 고단백 고기를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불로 익힌 고기를 먹다 보니 턱뼈가 줄어들면서 뇌가 커졌다. 커진 뇌는 패턴파악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웠고 덕분에 뇌는 더 커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생명체보다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타개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패턴능력 압도하는 인공지능그런데 그동안 최고를 자랑하던 인간의 이 패턴파악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가 나타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요즘 시대의 화두로 부상한 인공지능(AI)이 그것이다. AI는 우리 인간이 가장 잘 해왔던 패턴파악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잘한다. 우리는 꿈도 못 꾸는 빅데이터 속 숨은 패턴을 척척 읽어낸다. 생사를 다루는 병원에서조차 AI가 엑스레이 사진을 읽고 그에 적합한 수술법을 환자에게 권한다. 인간 환자들은 권위 있는 인간 의사보다 AI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선호한다. 새로운 고성능 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새로운 뇌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뭘 해야 할까? 나아가 AI는 비즈니스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분명 이 새로운 뇌는 소수에게는 미래를 확보하는 확실성을 가져다 주겠지만 그 외에게는 엄청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텐데.새로운 시대는 항상 혼돈과 혼란 속에서 태어난다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겐 이런 변화는 앞이 캄캄해지는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새벽녘마다 불현듯 잠에서 깬다는 이들이 많다.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 것 같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리더란 조직의 맨 앞에서 시대의 가치를 쫓는 존재인데 그들은 무엇에 쫓기고 있을까?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세상은 리더들의 가슴에 턱 얹혀진, 갈수록 압박감을 주는 묵직한 바위가 되어가고 있다.
[박스기사] 워런 버핏의 힘은 무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