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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롱패딩에 희비 엇갈린 의류업체] 한철 장사로 1년 버티는데…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고가 제품 비중 줄이고 중저가 늘려 … “재질이나 충전량, 공법 등에 따라 가격 달라져”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내놓은 구스롱다운점퍼(일명 평창 롱패딩)가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오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지하 1층 평창 팝업스토어 앞에 평창올림픽 기념 롱패딩 선착순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사진:뉴시스
지난 11월 20일 CJ오쇼핑은 ‘씨이앤(Ce&) 롱다운점퍼’를 선보였다. 이 상품은 방송 50분 만에 1만9000여 세트가 판매돼 약 2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상품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오리 솜털 80%, 깃털 20%를 충전재로 사용해 무게가 가벼운데다 보온성까지 갖췄지만 가격이 12만900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에 이날 방송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가 모델로 등장하면서 당초 목표 대비 2.7배 더 팔렸다. 남성용 검은색 110 사이즈는 방송 30분 만에 매진되는 등 주요 사이즈 제품이 매진을 기록했다.

이처럼 최근 ‘가성비’ 좋은 10만원대 중저가 패딩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패딩은 비싸야 잘 팔린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가볍고 따뜻하다는 구스 다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00만~200만원에 달하는 캐나다 구스, 몽클레어 패딩은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경기 불황으로 트렌드와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중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디다스 콘디보16 롱패딩 50% 할인

중저가 롱패딩 인기의 시작은 국내 의류 업체인 신성통상이 내놓은 구스롱다운점퍼(일명 평창 롱패딩)에서 시작됐다. 신성통상은 롯데백화점과 협업해 올림픽을 기념해 평창 롱패딩을 내놨다. 이 롱패딩은 거위 솜털(80%)과 깃털(20%)로 제작했는데도 가격은 14만9000원으로 책정했다. 10월 30일 롯데백화점이 3만장에 한해 제작한 평창 롱패딩은 지금까지 2만4000장이 팔렸다.

지난 11월 22일에는 7000장을 더 판다는 소식에 이날 새벽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영등포점, 김포공항점, 평촌점에는 시민들이 롱패딩을 사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밤새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평창 롱패딩의 인기에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다. 이들이 판매하고 있는 거위털 패딩은 30만~50만원대로 평창 롱패딩보다 두 세배 비싸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평창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영원아웃도어도 올림픽을 기념해서 롱패딩을 내놨다. 평창동계올림픽 리미티드 에디션 등 다양한 상품를 내놓고 가격도 20만~30만원대로 판매했지만 생각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중저가 브랜드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캐주얼 브랜드 흄(HUM)의 롱패딩 제품은 전년(5만장) 대비 판매량이 2배 이상, 매출은 46% 증가했다. 특히 올해 출시한 ‘에어범퍼 롱 패딩’은 19만9000원에서 10만원 할인된 9만9000원에 판매하면서 가성비 높은 오리털 롱패딩으로 입소문났다. 지난해 남성용만 출시한 유니클로의 ‘심리스 다운 롱 코트’는 올해에는 여성용도 추가로 선보였다.

남성용 19만9000원, 여성용 16만9000원이다. 신성통상이 운영하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탑텐의 ‘폴라리스 롱패딩’도 평창 롱패딩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입소문 나면서 최근 판매량이 급증했다. 가격도 12만9900원으로 평창 롱패딩보다 약 2만원 저렴하다.

고가 브랜드도 가격을 낮추고 있다. K2는 올 겨울 50만원 이상의 구스다운 비중을 전체 30%로 작년보다 10% 낮췄다. 대신 30만~40만원대 비중을 70%로 늘렸다. 코오롱스포츠도 35만원 이하의 중저가 다운 비중을 지난해 32%에서 올해 39%로 확대했다. 7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 비중은 20%에서 16%로 줄였다. 할인 행사 이벤트를 벌이는 곳도 있다. 아디다스는 39만8000원짜리 롱패딩 ‘콘디보 16’을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살 경우 판매가격보다 50% 할인된 19만9000원에 팔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기업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매출 40% 이상은 겨울 패딩제품이 담당한다. 그만큼 겨울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저마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마케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중고가 브랜드 한 관계자는 “패딩은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겨울 한철 장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해 매출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수익성 갈수록 악화

더 고민스러운 건 가격 차이로 인한 거품 논란이다. 평창 롱패딩은 거위털 충전재를 사용한 구스 다운임에도 다른 브랜드 유사 상품보다 절반 가격에 판매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사실 제품마다 거위털의 재질이나 충전량, 공법 등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은 가격만 보고 비교하기 때문에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서는 평창 롱패딩이 롯데백화점 기획상품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백화점은 입주 업체에 시설과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통상 판매 수수료 30~40%를 받는다. 평창 롱패딩처럼 백화점 자체 기획상품일 경우 판매수수료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3만벌 한정 제품이면서 유통채널인 롯데백화점이 판매하고 있어 재고 부담이 적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 속에 경쟁 브랜드의 난립으로 수익성이 줄고 있는 아웃도어 업체들로선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블랙야크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225억원, 34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9.3%, 18.9% 줄었다. 노스페이스를 유통하는 영원아웃도어의 매출은 39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72억원으로 전년보다 43% 감소했다.

아웃도어시장도 소비 감소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아웃도어시장 규모는 2015년 6조8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6조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5조5000억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가성비가 높은 제품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아웃도어시장은 정체기인 만큼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영업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411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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