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안돼 공화국’의 ‘그 나물에 그 밥’ 정책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야당으로부터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라는 비판을 받지만 결이 다른 인물이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김 부총리는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정통 경제관료다. 장 위원장은 게임을 개발해 성공한 스타 벤처기업가다. 두 사람이 최근 어지간해서 움직이지 않는 속성이 있는 관료사회를 흔들 만한 ‘폭탄 발언’을 했다. 김 부총리는 11월 28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빗대 대한민국을 ‘안돼 공화국’이라고 칭했다. 이틀 후 장병규 위원장은 범정부적인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을 놓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평했다.

김 부총리의 현실 인식은 정확하다. 그가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제시한 대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1위, 무역 순위는 7~8위인데 규제 순위는 95위다.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를 선언하며 규제완화 논의를 시작한 이래 20년이 지났지만, 산업계는 여전히 숱한 진입장벽과 불합리한 덩어리 규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스타트업) 수로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이 108개, 중국 58개인 데 비해 한국은 쿠팡과 엘로우모바일 등 단 두 개에 불과하다. ‘그 나물에 그 밥’ 발언은 혁신성장 전략회의 연장선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21개 부처가 마련한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산업혁명 대응 계획’ 발표 현장에서 나왔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을 산업 전반에 확산하고,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자는 게 요지였다. 전반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중장기 과제와 대책을 종합하고 재정리하는 수준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시장 중심’을 내세웠고,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할까. 발표에 나선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스스로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도 말이 되면 계승·발전시키는 게 맞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날 발표 직후 뒷말이 있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가 장 위원장에게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정책 심의를 맡은 곳이니 (정책 세부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게 아니라고 했다는 게다. 장 위원장이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답변한 것을 두고 위원회는 정책집행 부서가 아니므로 월권하지 말라며 견제한 것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다. 위원장은 총리급이다. 하지만 명색이 그럴 뿐 위원회에서 함께 일할 민간위원 60여 명 중 한 명도 직접 지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원장은 임기 1년의 임시직이다. 과학기술부 관계자의 발언에서 보듯 관료들이 대하는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총리급 상관이 아닌 일개 민간인이었다. 이런 위원회가 과연 21개 부처가 관련된 4차산업혁명 대책을 조정하며 혁신성장으로 가는 길을 컨트롤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부총리도 취임 초기 ‘패싱(건너뛰기)’ 논란이 있었다. 초우량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 및 초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집권 여당에 밀렸다. 부동산보유세 인상 문제를 놓고도 여당 대표와 불협화음을 빚었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 믿고 맡겨 줬으면 한다”고 토로했을까. 그 이후 김 부총리는 나름 경제팀 컨트롤타워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LG그룹 방문을 시작으로 기업인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혁신성장 등 정부 정책을 기업에 설명하고 재계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르는 문제점을 지적한 경영자 총협회에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고 나무랐던 청와대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두 컨트롤타워가 토로한 것처럼 ‘그 나물에 그 밥’ 정책으론 ‘안돼 공화국’을 탈피할 수 없다. 과감한 규제혁파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집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 문 대통령도 “혁신성장은 속도이며, 속도는 성과이고 체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과감하고 담대한 정책 추진과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말이나 구호의 성찬에 그쳐서도 안 된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의 방향과 주요 과제를 ‘캥거루 출발법’에 빗댔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 육상 100m 결승에서 미국 선수 토머스 버크가 웅크려 출발하는 크라우치 스타트(crouch start)로 금메달을 딴 것과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을 통해 발표된 사업들을 보자. ‘AI 기반 신약 개발’ ‘지속 가능한 스마트시티 구현’ ‘지능형 협동로봇 개발’ ‘고속도로 자율주행차 상용화’ ‘산업용 드론 육성’ ‘간병·간호 지원 로봇 도입’ ‘자율운항 선박 도입’ ‘스마트 항만 구축’ ‘핀테크 활성화’ 등 신산업을 망라하고, 최신 트렌드와 좋은 표현은 죄다 집합시켰다. 문제는 이 중 어느 것을 하려 해도 이런저런 규제가 걸림돌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주요 규제·제도 개선 일정 계획을 보면 빨라야 내년, 어지간한 규제는 2019~20년, 현 정부 임기 이후인 2022년으로 잡힌 것도 있다.

정부로선 올해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3년 만의 3%대 성장과 무역규모 1조 달러’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월간 취업자 증가 수는 10월, 11월 두 달 연속 30만 명에 못 미쳤고 11월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다. 이런 ‘고용 없는 성장’으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J노믹스’가 성공하기도,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김 부총리는 현 정부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인물이다. 장 위원장은 4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 시각에서 정부 정책을 들여다본다. 두 사람이 외롭지 않아야 한다. 닳디 닳은 관료들로부터 따돌림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자리에 걸맞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두 사람을 수시로 만나 돌아가는 상황을 듣고 애로사항을 해결해줘야 할 것이다. 두 컨트롤타워가 겉도는 것은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음이다. 두 사람에게 당장 없애야 할 규제 목록을 내놓게 하고, 필요하면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역설적으로 보면 ‘캠코더’와 거리가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잘 한 인사다. 내년 지방선거나 2020년 총선에 차출이 거론될 만한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과오가 없다면 정권 임기와 함께 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혁신성장도, 소득주도 성장도 가능하고 J노믹스가 전반적으로 성과를 낼 것이다. 국민은 그 나물과 그 밥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계속 ‘안돼 공화국’에 머무는 꼴을 보려고 그 추운 날씨에 촛불을 들지 않았다.

1414호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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