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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 조건이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의 함수인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숙명에 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문명의 발달로 활동공간은 늘어났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구 표면의 개념이다. 그리고 추상적 관념인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은 문명과 시대의 특성으로 이어진다. 유사 이래 시간은 늘 존재해왔지만 시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바뀌어왔다.

철학적 사유를 발달시켰던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 측정 기구인 시계와 달력상에 나타나는 시간으로 인간과는 분리된 절대적 양의 개념이다. 이와 달리 카이로스는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상대적 질의 개념이다. 크로노스는 1일, 1개월, 1년처럼 객관적으로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사건별로 진행되며, 천천히 가기도 하고 급속히 흐르기도 하며, 때로는 거꾸로도 흐른다.

‘동물에게는 시간이 없다’. 역사를 절대정신의 구현과 확장으로 이해했던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관점에서 본능으로 움직이는 동물은 단순한 생존만 반복하기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만 시간이 있다는 의미다. 그리스 사람들이 카이로스를 인간의 시간으로 간주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역사에서의 시간 개념도 카이로스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시간에 인간이 참여하고 상호작용으로 만들어가는 사건의 연속과 그 결과물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중에서 수백 년이 단 몇 줄로 요약되기도 하고, 불과 몇 년이 수십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는 경우가 이런 사례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3년의 시간이 특별한 의미가 없이 흘러갈 수 있고, 인생에서 특정한 3일이 전체 삶의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농경시대의 파종과 추수로 이어지는 계절적 시간 개념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공장이 생겨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집으로 오는 농부와 달리 공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작업을 시작하고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증기기관차가 상용화되고 철도산업이 발달하면서 시간은 분초 단위로 측정돼 사용된다. 철도 운행 이전에는 정확한 표준시간을 체계적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철도 운행에서는 10분의 시간 착오 탓에 열차가 충돌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 간에 동일한 표준시간을 맞춰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피터 드러커는 시간을 정확하게 관리하는 철도 분야를 현대 기업경영의 출발점으로 분석한다. 20세기 들어서는 시간이 자원의 개념으로 확장됐다. 특히 기술 개발과 신제품 출시의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시간은 철저히 관리해야 할 중요한 자원으로 떠올랐다.

농경시대 우리나라의 시간 개념도 ‘한 식경’이나 ‘한 나절’ 정도로 나뉘었다. 100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생활한 서양인들이 시간 개념이 부족해 약속시간에 자주 늦는 조선인의 습관을 지칭하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그러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시간의 개념이 달라지게 되고, 1990년대에는 ‘시테크’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당시 일본에서 들어와 유행하던 ‘재테크’를 약간 변용해 시간을 자원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당시 기업의 시간원가를 분석해 임원의 1분은 500원, 과장의 1분은 250원, 대리는 150원으로 산정하고, 10분 커피 마시면서 잡담하는 시간이 곧 손실이고 결국 원가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시테크의 슬로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조직원의 시간 개념이 부족해 애로를 겪던 기업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습관인 ‘아침형 인간’ 이나 시간 관리법 등에도 관심이 커졌다.

이러한 시간 개념의 변화는 혼선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개념도 충돌했다. 자연적 주기와 계절의 순환에 따르는 농경사회의 시간은 호흡이 길지만, 단위 공장에서의 작업 프로세스에 따르는 산업사회의 시간은 짧은 주기로 반복되는 효율성과 자원의 개념이었다. 이어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또한 자원으로 접근하는 시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이동수단, 통신수단이 발달할수록 시간은 더욱 부족해지는 역설도 생겨난다. 이러한 변화에서 삶에서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접근도 주목받게 됐다.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출간한 어른용 동화인 [모모]는 현대사회의 삶에서 시간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소설은 1979년 같은 이름의 영화가 나왔고, 오늘날까지 스테디셀러로 남았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엇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소설의 기본적 구도는 모모와 회색신사 간의 대립이다. 폐허가 된 옛날 원형극장에서 사는 모모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능력으로 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녀다. 하지만 회색신사들이 나타나서 마을사람에게 시간을 아껴 쓰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삭막해졌다.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신사들과 싸워 물리쳤고, 마을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행복한 삶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소설적 구조의 특성상 산업시대를 상징하는 회색신사들은 행복한 삶을 파괴하는 악당으로 설정된다. 각박한 현재와 행복했던 과거를 대비하는 익숙한 플롯으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개인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적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과거 농경시대적 시간 개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확대 해석은 시대착오적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서 시간의 개념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기업은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도 소중한 자원이다. 농경시대의 신분제 사회에 구속돼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평민과 노예의 삶은 단순한 생존의 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인적 노력에 따라 삶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가능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14호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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