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21세기형 교양의 조건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디지털 기술을 매개체로 기존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기존 지식도 경계를 넘어 활발하게 교류된다. 경제학과 물리학이 만나고 생물학과 경영학이 접점을 찾으며 역사에서 리더십을 탐구하는 식이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순식간에 필요한 지식에 접근하는 시대에 지식 자체보다는 지식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와 관점을 만드는 능력이 핵심이다.

개미 연구와 통신 네트워크 기술 개발,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가 만나서 이룬 혁신의 사례를 알아보자. 1990년대 초 프랑스텔레콤의 엔지니어 에릭 보나보는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세미나에서 곤충 생태학자와 대화하던 도중에 통신 속도를 개선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개미 집단은 먹이나 목표물을 찾을 때 ‘탐색 전문’ 개미를 보내고, 가장 빠른 길을 찾은 탐색 개미는 강한 페로몬을 분비해 냄새로 다른 개미를 불러 모은다.

보나보는 ‘가상의 개미’가 통신 네트워크의 분기점이나 경로 장치에 ‘가상 페로몬(신호)’을 보내면 통신 데이터를 보내는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나보의 아이디어를 영국 통신사인 브리티시텔레콤이 발 빠르게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경영학계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와 지식이 결합해 혁신이 일어나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지였던 메디치 가문이 여러 방면의 예술가를 모았는데,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면서 르네상스라는 큰 물결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이 인간의 문명도 그 자체로 나름대로의 문제를 내포하고 발생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온 것이 문명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이었다. 인문학도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인문학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과거로부터 던져진 화석이 되어 오히려 현재를 구속하는 기제가 된다.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인문적 소양도 미래적 관점에서 흡수해야 한다.

과학 발전도 단편적 지식의 집적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상호관계에서 진행된다.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과 발전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조선시대 지식인의 필수지식을 담은 [논어] [맹자] 등 고전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지만 그 의미와 해석은 완연히 다르다. 오래 전에 성립된 고전적 콘텐트가 과거의 해석에 매몰되면 그야말로 화석이 되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따라서 인문적 소양도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지식은 회의에서 출발한다. 인문학도 지식인 이상 기존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회의하고 질문하는 과정을 거쳐야 체화가 된다. 또한 새로운 지식과 관점에 대해 열려있어야 오류를 수정하고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개방성이 부족하면 기존의 지식과 프레임으로 세계를 반복적으로 해석하는 협소함에 갇히게 된다. 또한 기본 소양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수백 년 전의 최첨단 지식이 지금은 미신으로 치부될 수 있고, 과거의 중요한 가치가 지금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축적한 지식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에 실질적 가치를 가진다. 어떤 시대이든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지식체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게 공리공론에 흐르고 막연한 관념의 세계만을 추구하다 보면, 논리는 정연하고 토론은 세련되었으나 실제로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보지 못해 기본질서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극단적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는 역사에 비일비재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알면서 새로운 것을 익힌다는 의미는 인문학에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창조되는 것이다. 새로움을 잉태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지식의 습득(學)과 의미의 깨달음(覺)은 비슷하나 다르다. 배울 학(學)은 스승을 통한 기존 지식의 습득(子)을 의미하고, 깨달을 각(覺)은 스승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자신의 눈으로 보는(見) 차원이다.

지식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깨달아서 새로움을 만들어 내야 가치가 있다. 특히 변화가 빨라지고 나날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요즘 세상에 인문학이란 분주함 속의 고요함을 주는 휴식처가 됨과 동시에 기존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로 2015년 82세로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 박사는 별세 직전 뉴욕타임스에 인생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저는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왔으며,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Above all, I have been a sentient being, a thinking animal, on this beautiful planet, and that in itself has been an enormous privilege and adventure).’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능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탐구하고 인식을 넓히려는 능력은 고유의 역량이자 특권이다.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인문학, 사회와 집단에 대해 생각하는 사회과학, 자연법칙을 규명하는 자연과학 모두 인류의 지능과 문명의 산물이다. 현재 사회생활을 하는 세대들은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기근과 전염병에서 해방된 20세기 후반에 일정한 경제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고 성인이 됐다. 과거 최상위 지식인이나 접할 수 있었던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지식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일반인으로서 교양과 취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15호 (2018.01.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