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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선물 거래, 그 후] 美 양파 선물 거래 금지 전철 밟을까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현물·선물 매집해 가격 흔들어 양파농장 파산 … 비트코인은 1000명이 전체 채굴량의 40% 보유

“선물 거래에서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노리고 이뤄지는 차익거래는 결국 합리적인 가격을 만들어줄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가 미국의 메이저 선물거래소에서 이뤄진다는 소식에 ‘해외 선물 투자 설명회’를 가지려고 했던 국내 증권사 중 한 곳의 직원이 한 말이다. 선물이 현물 시장에도 안정성을 줄 거라는 건 교과서에 있는 얘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비트코인 선물 거래의 시작이 ‘경제학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당연하게 과열된 비트코인 열풍을 합리적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이론적으론 그렇다. 미래의 가격인 선물과 현재 가격인 현물의 가격차이(베이시스)가 현물과 선물시장에서 거꾸로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차익거래를 일으키는데, 이는 투자자에 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교과서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그러기엔 현재 비트코인 선물 시장엔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의도치 않게 혹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퍼펙트스톰’을 겪을 확률이 있다. 선물시장 자체가 불안정한 비트코인 현물시장보다 더 위험한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파 선물 거래하면 벌금 5000달러

미국의 양파 선물 거래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양파 선물을 거래하면 벌금이 5000달러다. 이 법은 1955년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양파 파동이 있은 후 제정됐다. 그 해 두 선물 트레이더는 양파의 선물과 현물을 최대한 확보했다. 전체 거래량의 98%가 이들 손에 들어오면서 가격은 널뛰기를 거듭했고 시카고 시내엔 현물인 양파를 담은 부대자루가 넘쳐났다. 현물 가격은 10분의 1로 떨어졌고 양파 농장들은 순식간에 파산했다.

이런 일이 비트코인 선물 시장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까지 채굴된 비트코인의 40%가 1000명의 계좌에서 한 번도 거래되지 않고 잠자고 있다. 초기 채굴자의 몫이다. 선물 시장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이제 막 거래를 시작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잠자고 있던 현물 소유주가 이를 담보로 자금을 구하고 선물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원유 선물이나 옥수수 밀 등 여러 선물 상품에서도 종종 투기자본이 가격을 조정해 문제가 되곤 한다.

비트코인 현물 시장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헤징)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비트코인 선물은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12월 10일, 최대 선물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선 18일 거래를 시작했다. CBOE는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의 4시 종가를 기준으로 하며 비트코인 1개(1 BTC)가 1계약이다. CME는 비트코인 거래소 4곳(GDAX·Kraken·ItBit·Bitstamp)의 가격을 종합해 결제가격을 산출하며 5 BTC가 1계약이다. 비트코인 현물가격은 12월 17일 한때 2만 달러에 육박했지만 CME 선물 거래 이후 약세를 보이며 12월 22일 현재 1만6445달러다. 1월물이 거래되는 선물 가격도 처음에는 1만9000달러로 높았지만 12월 22일 현재 1만6000달러로 떨어졌다.

문일수 쿼크투자자문 대표는 비트코인 선물거래 증거금(마진)이 높은 점이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선물거래는 미래에 특정 가격으로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이므로 지금 돈이 오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물의 높은 가격 변동성 탓에 자신의 계좌에 매일 일정 금액의 잔고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코스피200 선물의 증거금은 거래금액의 10%다. CME에서 1월물(1월말 거래할 비트코인 가격) 1계약은 5BTC로 한국거래소 가격 기준으로는 1억원에 육박한다. 10계약을 한다면 10억원이다. 그래서 최소 10%인 1억원을 계좌에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가격의 등락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증거금을 CBOE는 첫 거래시 44%, 매일 40%로 제시했다. CME는 43%로 동일하다. 문일수 대표는 “선물이 의미가 있으려면 현물과 선물의 차익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비트코인 선물은 현물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위험자산에 지나지 않는다”며 “선물 증거금이 높고, 선물시장의 기관 투자자들이 내부 규정으로 비트코인 현물을 직접 매수할 수 없으며, 비트코인 현물을 담보로 한 차입 거래도 안 되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이를 베이시스라고 하는데 이 차이에 따라서 때로는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거나 그 반대의 차익매매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선물 현물 가격차이가 결국 수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현물을 사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선물은 현물 가격과 따로 가게 되고, 이는 비트코인 현물과 같은 롤러코스터 시장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현물과 따로 노는 또 다른 위험자산에 그칠 수도

비트코인 선물 시장이 제대로 작동될지에 대한 우려는 이 외에도 많다. 우선 비트코인 현물을 살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아직 없다. 미 증권거래소는 관련 펀드 조성을 계속 불허하고 있다. 현물과 선물이 활발히 거래되려면 펀드가 있어야 하지만 언제 펀드가 조성될지 정해진 것이 없다. 선물 거래를 허가해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도 비트코인 선물 투자자들에게 암호화폐 거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선물을 살 때 이런 부분을 반드시 따져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 선물 시장에 이상 기운은 없다”고 말했다. “선물이 현물 가격 안정성에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래도 1년은 봐야 한다. 아직은 현물의 변동성도 크다. 개인투자자들이 선물에 매력을 느낄지는 잘 모르겠다.”

선물 거래는 위험을 회피하는 헤지 거래가 가능해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물에서의 손실을 선물시장을 이용해 회피하는 게 헤지 거래다. 비트코인을 1억원어치 보유한 투자자가 현물 가격 하락으로 손실을 보게 될 경우 동등한 액수의 선물을 매도하는 포지션을 취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해 현물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공매도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헤지 거래의 전제조건은 선물과 현물의 그래프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 매체 제로헤지는 선물 시장이 시작될 때 일부 투기세력이 공매도로 이익을 보기 위해 시장에 충격을 주는 거래소 해킹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12월 20일 암호화폐 거래소 유빗이 해킹 피해로 파산했고, 최대 거래소 빗썸의 해킹설이 돌기도 했다. 유진경 유안타증권 부장은 “개인들은 비트코인 선물에 투자하는 게 현물을 사는 것보다 안정적일 수 있지만 가치 측정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권하기는 어렵다”며 “자산을 불리는 것도 좋지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스기사] 선물거래란? - 미래와 현재 가격차 활용

현물은 현재 시세로 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를 하는 것이고, 선물은 현재 시세로 거래계약은 체결하지만 계약의 이행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하기로 약속한 상품이다. 가격 변동이 많은 농산물, 원유 선물이 유명하지만 어떤 상품이나 지수에서도 체결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선물거래는 선물을 매매해놓고 선물 매매시세를 만기일 현물 시세와 비교해서 맞추는 쪽이 돈을 가져가는 ‘제로섬 게임’이다.

선물거래는 그 자체보다는 현물시장과의 괴리, 즉 베이시스를 이용해 위험을 회피하거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12월에 3월물 선물을 계약한다면, 일반적으로 선물가격이 현물보다 높은 게 정상이고 이를 콘탱고라고 한다. 반대인 경우는 백워데이션이라고 한다.

은행 예금에 이자가 붙듯이 미래의 상품 가치는 현재보다 높은 게 정상이다. 일반적으로 선물과 현물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데 이를 ‘차익매매(arbitrage)’라고 한다. 콘탱고 상황에선 현물을 사고 선물을 팔아 이익을 실현하고, 반대인 백워데이션 상황에선 거꾸로 포지션을 가져가 이익을 실현한다.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인 베이시스는 결국 만기일에는 ‘0’이 된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1415호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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