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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호의 직장인 밥값론(3) 자존감 지키기]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장중호 경영컨설턴트
세상의 잣대 아닌 자기만의 인생 기준 세워야 ... 과정을 즐겨야 좋은 성과 따라와

나는 결코 인사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으로서 정말 부끄럽지 않은 밥값을 하고 싶고, 또 인정받고 싶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내 직원들이 밥값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고 싶다.


▎사진:© gettyimagesbank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도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외모나 성격, 혹은 학교 성적이나 집안 형편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괜히 놀림감이 되거나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다 보면 마음에는 점차 ‘열등감’이라는 씨앗이 뿌리 내리기 시작한다. 열등감이라는 것은 결코 남보다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잘생기고,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지위가 높아도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확인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등감 지수가 가장 높은 집단이 대학 교수라고 한다. 남이 보기엔 가장 잘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대학 교수일 텐데, 열등감을 가장 많이 느낀다니 아이러니하다. 워낙 잘난 사람이 모이다 보니, 그 안에서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면 오히려 더 민감해지고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지나 보다.

열등감 많을수록 다른 사람 무시해

열등감의 반대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우월감’이나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 ‘자신감’ 등이다. 우월감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므로 자신이 늘 유지할 수는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보다 잘난, 우월한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므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감은 매우 중요하다. 열등감이 자신이 늘 열등하다고 생각해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리 나보다 잘난 사람이고, 또 그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므로 나 나름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이 열려 있다. 결코 내가 더 잘나서 느끼는 승자의 배려가 아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존중받으므로 상대방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결코 자신이 그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벽을 치고 선제 공격을 하는 것이다. 벽 뒤에 숨어 그가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관찰하면서 내가 무시받기 전에 먼저 무시해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좀 더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를 무시하지도, 무시할 생각도 없다. 단지 참으로 성격 이상한,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여길 뿐이다.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공감이 가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제목도 공감이 갔지만, 강한 어투로 선언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는 34년 간 28만 명에 가까운 사람의 심리 상담을 했는데, 특히 상처받아 괴로워하는 사람의 심리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불어넣어 주는 데 힘썼다고 한다.

상처받는 사람은 매우 아프지만 사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냥 상처받는 사람이 혼자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고 안 받고는 상처받는 사람의 선택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상처받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상처 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더 분노하며 스스로 상처를 더 크게 키운다. 이와 달리 난 결코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나의 자존감을 건드릴 수 없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나의 삶의 자세로 선택한다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책의 내용 중에 좋은 조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상처를 준 사람에게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어쩌면 상처받은 사람은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일 수도 있으나 상처를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상처 준 사람에게 몰랐던 사실을 인지시키고 그 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막을 수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이 악의를 갖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라면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어쩌면 한번의 진솔한 대화로 많은 상황이 해결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 주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상처를 주지만 때로는 동료끼리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오히려 부하에게 상처를 받는 상사도 있다. 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의 일이다. 내가 일하던 부서에는 10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었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직원도 있고 최근에 발령받은 직원도 있다. 좀 더 친근하게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같이 오래 근무했는데도 낯설고 어색한 친구도 있다. 그중에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한 직원이 있었다. 5년 넘게 같이 일하며 알아온 직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와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나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와 격의없이 지낸다고 생각해서 가끔 농담으로 “이제는 짬밥도 됐는데 일 좀 해야지?”라고 놀렸는데, 그것을 내 진심으로 받아들여 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일을 못하고 별로 달가운 직원도 아니었다면 그런 농담조차 하지 않는 사이로 지낼 것이다. 그런데 나름대로는 일 잘한다는 칭찬을 약간 반어법으로 표현해 말한 것이 그를 괴롭힌 상처가 됐다고 생각하니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경험상 직장 내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고민과 불안만으로 벅차서 남에게 시간을 할애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단지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소소한 짜증, 혹은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농담이 대부분이다. 물론 가끔은 정색하며 항의하는 일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심각한 생각과 고민을 거쳐 내뱉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 자리, 그 상황에서 별 생각없이 머리에서 나오는 말을 그저 입을 통해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이나 행동 탓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앞에서 말한 내 사례 역시 그 직원에 대해 크게 생각한 뒤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벼운 농담을 한 것일 뿐이다. 상사나 동료의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물론 업무 지시나 진중한 충고는 신중하게 받아들여야겠지만 말이다.

상처받고 고민하는 사람만 손해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등을 지은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상처받아 괴로워하는 사람의 심리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불어넣어 주는 데 힘썼다. / 사진:독일 제1공영방송 화면 캡쳐
어떠한 경우든 상처를 받고 고민하는 사람만 손해다. 직장에서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당장 이 자리에서 “사장이든, 상무든, 팀장이든 어느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는 상처를 받지 않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선언을 하자. ‘나에게 상처를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 저 상사만 없어진다면, 저 동료만 사라진다면 내 직장생활이 훨씬 나아질 텐데’라고 생각하고,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아예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또다시 상처를 주는 상사나 동료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어느 직장, 어느 부서라고 성숙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만 모인 집단이 있겠는가? 오히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자신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밥값을 하는 직장인은 상처받지 않는 직장인이다. 그리고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직장인이다. 직장이라는 곳은 열등감을 갖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곳이다. 자기보다 학벌 좋은 사람이 많고, 같은 신입사원으로 출발한 동기 중 나보다 먼저 승진하고 앞서가는 사람도 많다. 해마다 다가오는 인사고과철에는 나보다 좋은 고과를 받는 사람이 태반이고, 나보다 집안 좋고 배경 좋은 사람이 내 옆자리에 같이 근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경을 쓰고 열등감을 갖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만의 인생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나보다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잘나가는 것은 바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몰입하다 보면 나를 잃어 버릴 수 있다.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돈이나 지위, 학벌과 같은 결과물이 아닌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의 과정에 기준을 설정하고 노력하는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한다면 나는 나에 대해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모른다. 자존감 문제도 마찬가지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안정된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게서 얻은 좋은 평판”이라고 말했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평가 결과가 아니라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혜택이다. 내가 객관적으로 잘났든 못났든 상관 없다. 설사 나의 처지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그것은 나의 직업이나 위치일 뿐 나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존중받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 가져야

하지만 직장이나 세상에서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 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휘둘려 살다 보면 이러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실한 자존감의 장치가 필요하다.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는 장치 말이다. 많은 사람은 종교에서 자존감을 찾는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주 소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종교 외에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밥값하는, 성공하는, 그리고 행복한 직장인에게 주어진 과제다.

직장생활의 과정을 즐겨보자. 과정이 즐거워지면 반드시 좋은 성과와 평가가 돌아온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여전히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나약한 직장인일 뿐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28만 명의 심리를 치유했다는 유명한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확신에 차서 베스트셀러 책까지 쓰며 그렇다고 하니 나도 한번 굳게 믿고 따라보려 한다.


※ 장중호 - 인공지능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경영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어 많은 기업의 사업전략 및 마케팅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이마트와 GS홈쇼핑의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일하면서 유통 업계의 마케팅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터가 알아야할 21가지 이야기] [나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가 있다.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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