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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파로스의 승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많은 희생이나 비용의 대가를 치른 승리...경제·경영 분야의 ‘승자의 저주’와 닮은꼴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완전히 이해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은.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중년이 되어서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소설이다. 청년에게 결혼은 사랑의 종착역이지만 중년이 되고 보면 결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랑의 열정이 식은 자리는 지루한 일상이 꿰찬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은 나날이 무거워진다. 때로 로맨스를 꿈꾸지만 자칫 불륜으로 불릴까 두렵다. 그 경계는 무엇일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마침내 사랑을 고백한다.

강렬한 사랑에도 각자의 가정 지킨 두 사람

킨케이드는 쉰둘의 사진작가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속해 있다. 무덥고 건조했던 1965년 8월, 그는 해리라 불리는 낡은 초록색 픽업트럭을 몰고 아이오와주 시골인 매디슨카운티로 떠난다. 지붕 덮인 일곱개의 다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마지막 남은 다리는 로즈먼다리. 길을 묻기 위해 하얀집을 들른다. 그곳에서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마흔다섯, 농부의 주부다. 두 사람은 첫눈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때마침 프란체스카의 가족들은 금요일까지 집을 비웠다.

로즈먼다리까지 동행한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를 집으로 초청한다. 아이스티와 맥주, 야채스튜가 있는 저녁. 짧은 산책 후 다시 커피와 브랜디를 마신 두 사람은 헤어진다. 이튿날 프란체스카는 로즈먼다리에 한 장의 메모를 남긴다. ‘흰 나방들이 날개짓 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면 오늘 밤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두 사람은 3일 간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시골에서 꿈을 잃고 지루하게 살아온 프란체스카에게 관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마지막 카우보이 킨케이드는 딴세계에서 온 마법사다. 더는 주변 사람의 눈도 두렵지 않다. 마지막 목요일,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끝내 킨케이드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다.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는 헤어진 후 단 한 번도 다시 만나지 않는다. 킨케이드가 1965년 9월 단 한 차례 사진을 담은 편지를 보낸 것이 끝이다.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만들어 목에 맨다. 프란체스카는 [내셔널지오그라피]를 구독하며 잡지 속에서 킨케이드를 마주한다. 1979년 남편이 죽자 프란체스카는 비로소 킨케이드를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지 14년 만이다.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가족에 대한 ‘지독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충격을 받을 남편과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열일곱, 열여섯의 두 남매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은 행복하겠지만 그 대가로 가족들이 겪을 아픔은 너무 커 보였다. 가족에 대한 큰 죄책감은 그녀에게도 온전한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프란체스카에게 이혼은 ‘파로스의 승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파로스의 승리란 이기긴 했지만 의미가 없는 승리를 말한다. ‘상처뿐인 영광’ ‘사실상 패전’ 등으로 보면 된다. 고대 그리스 에피로스의 왕 파로스는 로마와 두 번에 걸쳐 전쟁을 치러 모두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두 전투에서 너무 많은 장수들을 잃었고,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패한다. 이후부터 많은 희생이나 비용의 대가를 치른 승리를 ‘파로스의 승리’라 부르고 있다.

파로스의 승리를 경영·경제용어로 바꾸자면 ‘승자의 저주’가 된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바람에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는 승리가 자충수가 되어 최종적으로는 패자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클랩·캠벨 등 3명의 엔지니어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들은 1950년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권 공개 입찰에 참여했던 미국 석유기업의 예를 들었다. 당시 입찰자가 몰리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2000만 달러를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따냈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 이런 상황이 ‘승자의 저주’라고 이들은 정의 내렸다. 이 용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92년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발간하면서다. 세일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승자의 저주는 인수·합병(M&A)나 법원 경매의 공개입찰에서 종종 일어난다. 국내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려다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6조원을 써내 승리했다. 이 중 3조5000억원은 재무적투자자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재무적투자자들에게 2009년 12월이 되면 대우건설의 주식을 주당 3만4000원 가격에 되사주겠다며 풋백옵션을 걸었다. 하지만 곧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대우건설 주식이 주당 1만원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 주식들을 되사기 위한 5조~6조원의 자금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없었다. 재계 8위이던 그룹은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금호생명(현 KDB생명)과 대한통운은 매각됐다. 금호타이어도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2008년 한화그룹도 승자의 저주에 걸려 그룹이 백척간두에 섰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포스코·현대중공업 등과 맞붙었다. 6조3000억원을 써내 우선협상자로 선정이 됐지만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한화는 대우조선 지분 일부만 인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고, 계약은 결국 파기됐다. 한화는 당시 산업은행에 냈던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 중 일부라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건 상태다. 내년 1월께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만약 억지로 인수를 했더라면 한화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철을 밟았을지 모른다.

대우건설 무리하게 인수했다 탈 난 금호아시아나

22년이 지난 1987년. 67번째 생일을 맞는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를 회상한다. 그와 함께 앉았던 낡은 식탁에 앉아 브랜디를 마시며 그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는다. 그의 손길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다. 프란체스카를 그리워하며 남은 여생을 홀로 산 킨케이드는 1982년에 사망한다. 프란체스카는 남편이 사망한 후에야 킨케이드를 찾지만 끝내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철저히 연락을 끊고 산 탓이다.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가 지키려 했던 가정을 존중했다. 그 역시도 무리한 고집은 ‘파로스의 승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매우 감성적이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았다.

기업 경영에서 감정이 개입됐을 때 ‘파로스의 승리’ 혹은 ‘승자의 저주’가 잘 일어난다.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착과 절대 질 수 없다는 자존심은 종종 합리적 판단을 가로 막는다. 승리가 가져다 준 도취감이 사라진 후 뒷감당이 벅차다면 선택은 현명했던 것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지만, 그래서 또 인간이기도 하다.

1421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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