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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상담 중년 남성의 우울증 극복] 인생의 의미를 다시 점검하라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

▎사진:© gettyimagesbank
그는 지난 연말 기획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5년 전 기획실장을 맡아 1년 간 신나게 일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사업부서에서 근무했는데, 4년 만에 다시 컴백한 것이다. 기획실장 직위는 보수도 제일 높고, 인사에 대한 영향력도 가장 세다. 누구나 선망하는 ‘꽃보직’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무기력하다. 30년 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그였기에 업무는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그러나 기획실장은 회사를 역동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업무 방향을 진취적으로 설정하고, 직원과 조직의 활력을 최대치로 견인해야 하는데, 정작 본인은 열정이 없다. 능력을 인정받아 요직까지 맡았는데, 지금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잠을 많이 자는데도 몸은 나른하고 피곤하다. 머리도 멍하고 잘 안 돌아간다. 오후가 되면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고, 퇴근 후 직원들과 술 한 잔 하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업무는 대충대충 하고, 저녁 술자리만 생각하고 산다. 휴일엔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 지낸다. 아내는 회사일이 힘들어 그렇겠지 하며 편히 쉬라고 하는데, 가족에게 미안하다. 벌써 반년 넘게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예전 모든 게 신났던 시절이 그립다.

뭔가 해야 하는데…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일반인의 10%가 겪는다. 발병률은 남자보다 여자가 3배 높다. 우울증은 강도와 기간으로 구분한다. 2주 이상 우울감이 지속돼야 한다. 의욕이 없고, 밥맛이 없고, 머리가 멍하다. 흥미·재미·의미를 잃고, 무기력·죄의식·공허감에 시달린다. 중년은 40~65세다. 생(生)의 중간에서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의 통합된 삶을 꿈꾸는 시기다. 한국의 중년 남자는 우울하다. 위 세대를 책임지고 아래 세대에 도전받는 ‘가운데 낀 우울한 세대’다.

우울증은 스트레스와 상처에서 온다. 스트레스와 상처는 다르다. 스트레스는 진행 중인 부정감정이고, 상처는 굳혀진 부정감정이다. 스트레스와 상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극복하면 성취감이 생기고, 상처는 승화하면 행복감이 생긴다. 힘든 만큼 성장하고, 아픈 만큼 성숙한다. 우울증은 에너지 소진(Burnout)에서 온다. 힘든 스트레스가 오래 가면, 모든 에너지가 바닥난다. 우울증은 에너지 울혈(Depression)에서 온다. 아픈 상처가 오래 가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모든 외부 자극을 차단한다.

감성적인 남자는 우울증에 취약하다. 이성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통제하려 한다. 감정보다 기분을 중시한다. 기분전환을 잘 한다. 과거 부정감정과 연결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상처가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해결되면 부정감정은 사라진다. 스트레스 통제에 실패하면, 불안증이나 강박증에 빠진다. 감성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이해하려 한다. 기분보다 감정을 중시한다. 감정이입을 잘 한다. 과거 부정감정과 연결한다. 스트레스는 상처가 된다. 상처가 치료되면 긍정감정이 생긴다. 상처 치료에 실패하면, 우울증에 빠진다.

수용적인 남자는 우울증에 취약하다. 공격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제거하려 한다.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투르다. 작은 스트레스도 못 견디고 쉽게 폭발한다. 남 탓으로 돌린다. 죽을 것 같다가도 해소되는 순간 좋아진다. 스트레스 제거에 실패하면, 불안증이나 공황증에 빠진다. 수용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들인다.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 스트레스를 상처로 바꾸어, 오랜 스트레스에도 잘 견딘다. 내 탓으로 돌린다.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계속 쌓이면,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은 가치혼란과 의미상실에서 온다.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회적 성공이다.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는 성공이다. 잇단 실패는 학습된 무기력에 떨어진다. 연이은 성공도 또 다른 목표가 없으면 공허감에 빠진다. “의미 없는 가치추구는 공허하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정의 행복이다. 의미는 시대에 무관하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의미에 집중하면 우울감에 빠진다. 우울감은 연민감과 자비심의 원천이다. “가치 없는 의미추구는 허망하다.”

자, 그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가치를 점검하자. 유명한 외과의사가 정년퇴직을 하게 됐다. 제자들이 잔치를 마련했다. 끝날 즈음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제자들이 왜 우는지 물었다. “나는 어려서 서커스 단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의사로 성공했다.” 그동안 내가 추구한 가치는 무엇인가? 앞으로 내가 추구할 가치는 무엇인가?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성공하는 것보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실패하는 것이 낫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참 나(Self)를 찾는 것이다. “생로병사, 모든 게 다 공(空)이다.”

술·성(性)·도박·마약·게임 중독에 유의해야

둘째, 중독을 조심하자. 한 사람이 낭떠러지에 미끄러져, 넝쿨을 잡고 겨우 살았다. 그런데 넝쿨을 흰쥐와 검정 쥐가 쏠고 있었다. 마침 바로 위에 벌통이 있어 꿀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달콤한 꿀에 빠져, 그만 모든 것을 다 잊었다. 현대는 중독의 시대다. 중독은 살맛나는 상태다. 스트레스와 상처로 힘들 때 중독으로 도망가기 쉽다. 우울증으로 힘들 때 중독으로 회피하기 쉽다. 도처에 중독으로 유혹하는 대상이 많다. 술·성(性)·도박·마약·게임 등에 중독된다. 운동·일·여행·취미·종교 등 건전한 중독도 있다.

셋째, 의미를 점검하자. 프랭클은 의미치료의 창시자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날마다, 정신과의사가 되어 환자를 열정적으로 돌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딘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앞으로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인생은 채우러 온 것도 아니고, 비우러 온 것도 아니고, 배우러 온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희노애락, 모든 게 다 고(苦)다.”

※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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