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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에 이어 패권 차지하겠다는 야심그러자 재상으로 있던 목이가 깜짝 놀랐다. 목이는 양공에게 세 가지 이유를 들며 패자(霸者,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라고 간언했다. 첫째, 송나라는 제나라보다 땅이 좁고 척박하다. 군사도 훨씬 적고 군량미도 부족하다. 둘째, 제나라에는 훌륭한 원로와 현명한 신하들이 즐비하지만 송나라는 필요한 자리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셋째, 제나라에는 상서로운 조짐들이 이어졌지만 송나라에는 오히려 흉조가 발생했다. 한마디로 송나라는 패권을 노릴 만한 역량이 못되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이다.목이가 이처럼 간곡하게 말렸지만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로 진군했고, 환공으로부터 부탁받은 후계자를 임금으로 세웠다. 만약 양공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양공의 말대로 “어버이를 잃은 사람(환공의 후계자)을 구원해주었으니 인(仁)한 일이고, 다른 사람(환공)과의 약속을 이행했으니 의(義)로운 일이다”라고 평가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양공은 스스로 불세출의 공적을 세웠다고 떠벌렸다. 그리고는 제후들을 소집해 맹주가 되고자 했다. 우스운 것은 이렇게 일을 벌여놓고 큰 나라 제후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큰 나라들의 거부로 체면이 깎일까 두려웠던 양공은 등나라, 증나라, 조나라 등 약소국의 제후들만 불러 모은다.그런데 증나라 군주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양공은 격노한다. “과인이 회맹을 제안한 이때, 증은 작은 나라이면서 감히 이틀이나 늦었소. 그 죄를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어찌 위엄이 서겠소?” 양공은 증나라 군주를 산 제물로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목이는 기겁했다. “제사는 사람을 위해 복을 비는 일인데 어찌 사람을 죽여 복을 빈단 말입니까? 임금께서 제후를 죽이신다면, 다른 제후들도 우리를 배신하지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공은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송나라를 두려워해야 패업을 이룰 수 있다며, 증나라 군주를 삶아 죽여 제사를 지내겠다고 고집했다. 증나라 군주는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난다.양공의 어리석은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조나라가 자신에게 무례하다며 공격했고, 오만한 태도로 제나라 군주의 심기도 건드렸다. 양공에 대한 각 제후국들의 신망은 점점 추락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양공은 초나라의 계략에까지 걸려든다. 초나라는 속국 제후들을 거느리고 송나라가 주관하는 2차 회맹에 참석하겠다고 통보했다. 양공의 패자 지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군사를 매복해 양공을 포로로 잡겠다는 속셈이었다. 송나라를 복종시켜 중원의 제후들에게 초나라의 위엄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목이가 “초나라는 남쪽 오랑캐로 그 마음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신은 주상께서 기만을 당하실까 걱정됩니다”라고 우려했지만, 명실상부 패자가 된다고 들뜬 양공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양공은 “과인이 진실하게 상대를 대하는데, 상대가 어찌 과인을 기만하겠느냐”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목이가 호위 병력을 충분히 데려가라고 청했지만 그마저도 듣지 않았다. 제후들이 화평을 교섭하는 자리이니 군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방심한 양공은 초나라에 결박당하는 신세가 된다.
현명한 신하의 간언 듣지 않아양공이 적국의 포로로 잡히자 송나라에서는 목이가 섭정을 맡았다. 목이는 양공을 구하기 위해 양공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책략을 썼다. 초나라가 “너희 임금이 우리에게 사로잡혔으니 땅을 바치고 항복하라. 그러면 너희 임금의 생명은 보장해주겠다”라고 협박하자, “새로운 주상이 즉위했으니 항복이란 당치도 않다”라고 답했다. 초나라가 다시 “너희 임금을 귀국시켜준다면 무엇으로 보답하겠느냐?”라고 묻자, “전 임금은 포로가 되어 사직을 욕보였으니 돌려보내준다 해도 다시 임금으로 모실 수 없다. 너희 마음대로 해라. 우리는 죽기로 싸울 것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양공이 포로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송나라 임금일 때의 이야기다. 그래야 초나라도 양공을 석방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목이는 송나라에 새로운 군주가 즉위했음을 홍보하고 양공을 사직의 죄인으로 규정해 초나라가 양공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이에 화가 난 초나라 군주가 송나라로 진격했지만 목이가 이를 격퇴했다. 결국 초나라는 쓸모없어진 양공을 석방하게 된다. 풀려난 양공은 풀이 죽어 위나라로 망명했는데 목이가 “신이 섭정에 오른 것은 주상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라며 다시 모셔온다.큰 고난을 겪었으니 이제 양공도 달라졌을까? 아니었던 것 같다. 초나라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지만 복수할 힘이 없었던 양공은 그 분을 정나라에 푼다. 정나라가 앞장서서 초나라를 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는 어이가 없었다. 정나라를 치면 당연히 초나라가 구원병을 보낼 것이 아닌가. 목이는 “실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자”라고 간곡히 만류했지만, 양공은 듣지 않고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양공이 정나라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초나라는 곧바로 대군을 보내 송나라를 쳤다. 양공도 회군해 홍수(泓水)를 사이에 두고 초나라와 대치한다. 이 때 송나라 군대의 사령관 공손고는 “초나라 군대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니 정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초나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초나라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공은 “옛날 환공은 초나라를 정벌한 바 있소. 지금 초나라 군사가 쳐들어왔는데도 싸우지 않는다면 과인이 어찌 환공의 패업을 계승할 수 있겠소”라며 거절한다. 패자가 되겠다는 미망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공손고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무기도 군사도, 모두 초나라보다 약합니다. 송나라 사람은 초나라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도 주상께서는 무엇을 믿고 초나라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양공은 자신에게 답했다. “초나라는 군사력은 강할지 모르나 인의(仁義)가 부족하오. 과인은 군사력은 약해도 인의가 넉넉하오. 옛날 주나라가 3000명의 군사를 가지고 은나라 억만 군사에게 승리한 것도 바로 인의가 있었기 때문이오.” 그러면서 양공은 인의라고 써진 큰 깃발을 내걸게 했다. 물러나온 공손고는 탄식한다. “전쟁은 살육하는 것인데 여기서 무슨 인의를 찾는다는 말인가. 하늘이 주상의 정신을 빼앗아버린 것 같다.”마침내 초나라 대군이 강을 건너 진군해오기 시작했다. 공손고는 초나라 병력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해야 한다고 청했다. 물에서는 전차와 기병이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둑이 강보다 지형이 높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양공은 오히려 화를 냈다. 그는 깃발을 가리키며 “저 ‘인의’라는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가? 싸움은 당당해야 하는 법이다. 어찌 강을 반만 건넌 군사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이냐!”라며 공손고를 꾸짖었다. 초나라 군대가 강을 다 건너왔을 때도 공손고가 “아직 전열을 정비하지 못했으니 이때를 노려 공격하면 적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조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양공은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너는 어찌 승리를 탐하여 인의는 아랑곳하지 않는가? 적의 불리한 상황을 노려 공격하는 것은 인의롭지 못한 짓이다”라고 말한다.일찍이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吳起)는 적을 공격할 때는 적의 허와 실을 노려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적의 병력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와 ‘적의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을 때’, ‘적이 불리한 위치에 있을 때’이다. 오기는 “이러한 적은 신속히 공격해야 하며 지체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다른 병법가들도 공통적으로 강조한, 그야말로 전술의 기본이었다. 양공은 이를 모두 어긴 것이다. 양공이 큰 부상을 입고 송나라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요컨대 양공은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패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회맹’이라는 형식에 집착했다. 오만한 태도로 인심을 잃었고, 신하들의 간언에는 귀를 닫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가 내건 ‘인의(仁義)’였다. 송 양공의 전쟁은 다름 아닌 자신이 일으킨 것이다. 죽고 죽여야 하는 전쟁을 촉발시켜 놓고 인의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더욱이 전쟁이 벌어진 이상 승리가 목적이어야 한다. 인의로 적을 배려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위기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체면 때문에 인의 내세운 군주물론 “군자들 중에는 양공이 칭찬할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중원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예의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나마 양공에게는 양보하는 예의가 있었기 때문이다”(사마천 [사기세가])라는 견해도 있다. 양공이 진정으로 인의로운 사람이었다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고지식하고 어리석을지언정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공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인의로 포장하고, 체면 때문에 인의를 내세운 군주였다. 패자의 위신을 세우겠다며 다른 나라의 제후를 산 제물로 바치려고 한 사람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위선적인 동정을 베푸는 것, 그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것, 송 양공의 인의란 그런 것이었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