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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기록을 남겨 콘텐트를 만든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일본 바둑계, 17세기 초반 전문가 시스템 도입 후 고수의 바둑 기록

▎공식대국에서 무패의 성적을 기록한 슈사쿠 기성의 필적. 그는 주옥 같은 기보 외에도 ‘슈사쿠류 포석’ 등을 남겼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졌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이 딥러닝을 할 수 있고 그 결과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보면 개인들이 남기는 기록은 중요한 자원이자 자산인 셈이다.

일본의 바둑기록 - 17세기 초반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한 일본 바둑계에서는 고수들이 둔 바둑을 기록했다. 바둑경기 한 수순(手順)을 종이에 기록한 것이다. 이것을 ‘기보(棋譜)’라고 한다. 기보는 축구나 골프 같은 스포츠경기에 비유하면 경기의 진행상황을 기록한 것과 같다. 이 기보가 후대에 전해지면서 재미있는 바둑이야기와 바둑기술서의 자료로 활용됐다. 일본인들은 유명 기사들의 기보를 해설해 셰익스피어 전집과 같은 책을 냈다. 그중에서 명국을 뽑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삼았다. 역사적인 명국 중에는 상대방의 귀를 빨갛게 만들었다는 ‘이적(耳赤)의 묘수’, 스승을 대신해 싸우다 패하여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난 일화가 담긴 ‘토혈지국’ 등이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바둑팬 중에는 이런 명국을 음미하며 일본의 화려했던 바둑문화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당대 최고수를 ‘명인(名人)’이라고 불렀다. 바둑계 최고의 지위인 명인기소에 오른 기사가 명인이다. 명인들 중에서 특별히 뛰어난 업적을 남긴 기사를 ‘기성(棋聖)’이라고 칭했다. 일본에서 역사상 기성으로 불린 기사는 도사쿠, 슈사쿠, 우칭위안 세 사람이다. 세 사람 모두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어 당대 무적이었다. 도사쿠와 슈사쿠 기성은 17세기와 18세기의 명인들이다. 20세기에 중국인으로 일본에 건너가 공적을 쌓은 우칭위안 9단은 ‘현대의 기성’으로 불린다. 이들 기성은 칭호에 걸맞게 바둑사에 특별한 업적을 남겼다. 도사쿠 기성은 전쟁의 기예로 인식돼온 바둑에 ‘돌의 능률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수나누기’라는 바둑수분석 기법을 남겼다. 우칭위안 9단은 새로운 수와 현대적인 정석을 많이 개발했다.

슈사쿠의 업적 - 제2대 기성인 슈사쿠는 혼인보가의 후계자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 흑을 쥐었을 때 현금을 저축하듯 견실하게 두는 플레이로 공식대국에서 무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바둑시합이 끝난 후 결과를 물어보면 슈사쿠가 “흑번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슈사쿠는 자신이 둔 바둑의 기보를 약식 해설과 함께 적어 부친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슈사쿠는 주옥 같은 기보 외에도 바둑 분야에 몇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 ‘슈사쿠류 포석’이 유명하다.

[1도] 흑1에서 5까지 세 귀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으로 차지하는 것이 슈사쿠류 포석이다. 이 포석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포진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슈사쿠는 흑을 쥐고 둘 때면 거의 이 포석을 써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오늘날에도 이 포석은 종종 두어진다. [2도] 포석에서 흑1에 두는 수를 슈사쿠는 매우 좋아했다. 이 수는 ‘마늘모’ 또는 ‘입구자’라고 불린다. 이 수에 대해 슈사쿠는 “바둑의 규칙이 변하지 않는 한 영원불멸의 호수”라는 어록을 남겼다. 이 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는 함축성 있는 수로 A와 B의 협공 등을 보고 있다. [3도] 마늘모를 두지 않고 그냥 흑1에 두면 백2로 눌러서 흑의 형태가 ‘중복형’이라는 초라한 모양이 된다. 돌을 투자한 것에 비해 소득이 적은 형태인 것이다. 슈사쿠는 이런 중복형을 피하기 위해 마늘모수를 애호하게 된 것 같다. 기성 슈사쿠가 애용하던 이러한 기법은 그의 기보와 함께 전승되고 있다.

아쉽게도 불세출의 기재인 슈사쿠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다. 바둑팬들은 슈사쿠가 더 오래 살았다면 바둑기술이 달라졌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다. 슈사쿠는 몇 년 전에 크게 히트한 만화영화 [고스트 바둑왕]에도 나왔다. 바둑팬들은 일본에 가면 슈사쿠의 생가를 방문하기도 한다.

기록을 남겨라 일본 바둑의 흥행사를 돌아보면 기록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둑경기의 수순을 기록해 그 자료로부터 세계의 바둑팬을 감동시킨 책과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에 널리 보급해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바둑의 역사를 남기고 있지만 아쉽게도 옛날의 기보가 하나도 없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 일본의 슈에이 명인과 둔 접바둑 기보가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된 한국의 기보다. 기보가 없다 보니 외국에 소개할 역사적 내용이 빈약하다.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이나 문화콘텐트로 만들 자료가 부족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 한국이 바둑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바둑을 기록으로 남기는 관습이 생겼다.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인터넷바둑 사이트에서 기보를 감상할 수 있게 서비스한다. 그리고 유명한 고수들의 바둑을 해설한 콘텐트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기록문화는 크게 발달되지 않고 있다. 굉장히 많은 기보가 생산되었지만, 1900년대의 기보를 찾을라치면 어디 있는지 쉽지가 않다. 과거의 기록물이 가치 있다는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행은 바둑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이해 개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물론 회사나 기관의 기록을 남긴다면 스토리텔링 등 색다른 문화콘텐트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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