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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우버의 동남아 사업권 인수그랩은 현재 기업가치 6조원을 넘는 동남아 최대 유니콘(유니콘은 10억 달러 이상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우버가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에어비앤비와 함께 공유경제 시장을 창출한 우버의 기업 가치는 현재 70조원이 넘는다. 우버는 미국에서의 성공과 막강한 자금력, 앞선 기술력 등을 발판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랩에 밀려서 결국 동남아 사업을 포기했다.그랩은 어떻게 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강자인 우버로부터 아시아 시장을 지켜냈을까? 우선 ‘혁신’이라는 화두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지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 피터 드러커는 기존의 자원이 부(富)를 창출하도록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이 ‘혁신’이라고 정의했다. 클레이 크리스텐슨은 한 발 더 나아가 파괴적 혁신을 주창했다. 우버가 가장 선진화된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하는 혁신을 선보였다면, 그랩은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에서 소비자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생활밀착형 혁신을 가져왔다. 그랩의 전신인 마이택시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동창생인 앤쏘니 탄과 후이링 탄은 교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택시 호출서비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2012년 마이택시를 말레이시아에서 출시했다. 말레이시아의 택시는 노후 차량, 불친절한 서비스, 바가지 요금으로 세계 최악의 택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런 불편함을 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마트폰을 소유한 소비자가 늘면서 통화보다는 앱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이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비스 론칭과 동시에 해외 진출에 나섰다. 2013년에 싱가포르와 필리핀, 태국에 진출했고, 2014년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입했다. 이용자나 운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150만건의 예약이 이뤄졌고, 94만건의 앱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며 ‘그랩’으로 브랜드를 통합했다. 그랩택시, 그랩카, 그랩바이크, 그랩익스프레스와 그랩히치, 그랩풀링을 하나의 앱 안으로 담아 냈다. 2015년 중반부터 그랩카는 매달 평균 35%, 그랩바이크는 75%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생활밀착형 혁신은 비단 말레이시아에서만 통한 것이 아니었다. 동남아 지역의 대도시들은 대체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대중교통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량공유 서비스의 수요가 컸다. 특히 6억5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고려하면 수요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두 번째는 지불·결제방식이다. 동남아 인구의 60%가 신용카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은행계좌가 없는 이들도 많다. 초기에는 은행들이 결제를 허용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보유자들도 앱에 등록해서 쓰는 점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그랩은 현금결제와 카드결제를 모두 채택했다. 신용카드 결제를 고수하던 우버는 현금 결제는 도입했으나,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그랩은 2016년 그랩페이를 출시했다. 절대강자가 없는 동남아 지급결제 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았다. 매일 수 백만 명의 인구가 그랩을 이용하고 있기에 당연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8개국 180개 도시에서 서비스2017년 전체 호출예약 10억건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미얀마와 캄보디아 시장에 진입하며, 8개국 180개 도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900만 이상 모바일 기기에 다운로드 됐고, 등록된 운전자가 270만 명을 넘어섰다. 동남아 시장의 77%를 점유하는 그랩은 명실상부 아시아의 대표적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혔다.그랩의 밍 마 대표는 중국의 디디와 얀덱스가 각각 우버의 중국 사업과 러시아 사업 인수를 보며 하이퍼-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랩이 우버 동남아 사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그의 신념과 전략적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최근 동남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은 그랩의 사례를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스기사] 밍 마 그랩 대표 | 경영진도 고객센터에서 전화 받아
※ 고영경 교수는 - 연세대 사회학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대학원과 고려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말레이시아 UNITAR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