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18개 은행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2012년 5월에 설립한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상임이사로 부임했다. 재단 설립 초기 몇 가지 인연으로 청년의 창업을 도와주는 의미있는 일을 맡게 된 것은 인생 일대의 또 다른 과업이 아닐까 한다.독자들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란 이름이 낯설지 모르겠다. 재단의 또 다른 이름인 ‘디캠프’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디캠프는 이른바 창업 생태계 또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누군가는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역사는 ‘디캠프’ 전과 후로 나뉘어진다고도 말할 정도다.그렇다면 은행권은 왜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고, 좀 더 확실한 홍보 효과를 낼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라 ‘청년 창업 지원’을 목적으로 재단을 세웠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재 수익의 일부를 작게는 미래의 기업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의 지속가능성 증대를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은행권청년창업재단 일을 맡은 후 예전보다 좀 더 눈여겨본 단어가 있다. 창업 현장에서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를 벤처라는 말보다 훨씬 많이 쓰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면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1300만건이, ‘벤처’는 1400만건이 검색된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쓰였다. 벤처라는 단어가 외환위기 직후부터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타트업이 압도적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두 단어는 많은 유사성에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또 벤처라는 단어는 정부 조직에서부터 지원 법률까지 활용되고 있다.창업 현장을 스타트업이라고 하든 벤처라고 하든 최근의 창업은 기존의 창업 패러다임과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까지의 자산 위주 경제(Asset Based Economy)에서의 창업은 자본·임금·토지 중 하나만이라도 기존 업체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창업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이와 달리 현재 국내외에서 활발한 ‘창업(Startup)’은 기존 산업계에 눈여겨보지 않은 비효율성과 불합리성을 개인의 아이디어로 개선해 새로운 시장의 토대로 삼거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상품·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연속적 과정으로 지식 위주 경제(Knowledge based Economy)로의 전환으로 볼 수 있다.스타트업은 단순히 젊은 청년이 창업해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한 새로운 문화로,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창업자와 종업원이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성을 일에서도 확인하는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국내에서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에서도 스타트업 문화를 도입해 관료화된 내부경영 환경을 개선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존 산업계는 개별 구성원보다 조직이라는 시스템,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적 단일성, 토론보다는 상사의 경험에 의존하는 의사결정으로 성공을 일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기업도 기업에 취업하려는 청년들도 이런 주도적 삶을 가꾸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스타트업 현장에는 자기 책상이 따로 없다. 같이 일한다. 심지어 다른 회사와도 칸막이 없이 일한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바꾸고 싶다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협업하는 현장으로 좀 더 많은 청년이 오길 바란다. 돌멩이가 없어서 신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본·자산만 있다고 새로운 세상이 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