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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은 독립할 수 있을까?] 지역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로 차별화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저자와의 대화, 토론회 등으로 단골 모아…대형서점·인터넷서점 영업이익률도 주춤

▎사진 : 전민규 기자
지난 7월 5일 저녁 7시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사람들이 서가의 책만큼이나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은 어디였을까? 서점을 먹여 살린다는 영어 학습서 코너나 정가의 80%로 공급하는 출판사의 효자 인문학 서적 코너, 시대의 화두 힐링 서적을 모아놓은 서가도 아니었다. 교보문고가 2015년 5만년 이상이 된 카우리 소나무로 만든 대형 테이블 근처가 공간 대비 가장 북적였다. 100명이 앉을 수 있다는 이 대형 책상에는 책을 서너권씩 가져다 놓고 노트에 필기까지 하는 직장인들, 엄마 손을 잡고 와서 동화책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책 몇 권을 펴놓고 있는 꼬마들이 가득했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2년 전 선릉역 근처에 연 최인아책방에서는 책을 산 사람들에게 커피와 같은 음료를 20% 할인해준다. 음료를 시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와 서점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최인아 대표는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고 공짜로 읽는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역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에 지난해 문을 연 별마당도서관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아름다운 곡선형 대형 서가를 갖추고 있다. 8만권의 장서가 손이 닿지도 않는 곳까지 아름답게 진열된 이곳은 무료로 책을 읽는 도서관이다. 운영하는 곳은 영풍문고다. 대형서점 영풍문고의 유니폼을 입고 영풍문고에서 본 익숙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인테리어를 제외하면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별마당도서관을 찾은 사람들 수는 개관 1년이 된 지난 5월 기준으로 2100만 명이었다. 주변 상권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기술이든 구매자와 판매자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플랫폼이라고 크게 정의한다면, 별마당도서관은 스타필드 코엑스의 핵심 플랫폼이다. 별마당도서관 플랫폼을 찾은 사람들은 인근 상점들로 이동해 소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별마당도서관은 서점을 하거나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공짜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곳이다.

서점가 고전에도 독립서점 숫자 늘어


지난 6월 27일 찾아간 역사책방은 서촌의 한적한 골목길에 있다. 5월에 문을 열어 두 달이 채 안 된 곳이다. 역사책방 서가 곳곳에는 이 책들이 판매용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었다.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는 “사람들이 책을 그냥 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인터넷서점은 10% 할인을 해주는 데 작은 책방들은 도매상을 끼고 있어 할인을 해주기 어려우니 도서 정가제를 더 강력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현재 서점 시장은 대형서점 위주의 사실상 독과점 체제”라며 유통 다변화를 주장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책방인 독립서점은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어났다. 2018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반서점 숫자는 2050개로 2년 전보다 3.2% 줄어든 1984개였고, 대형서점은 감소세에서 2년 만에 303곳으로 20곳이 더 생겼다. 하지만 동네서점 관련 콘텐트를 만드는 퍼니플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7월 현재 전국에서 운영되는 독립서점은 모두 257개며, 6개월 동안에만 무려 31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국세청의 2016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연간 폐업률은 70%고, 폐업률이 극도로 적은 도매업이 7%를 넘는 수준이다. 퍼니플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2년 동안 폐업한 독립서점이 17개로 폐업률이 6.1%였다. 다만, 터줏대감 격이던 곳이 최근 매물로 나오고, 독립서점이 문을 닫는 과정을 담은 책까지 나오면서 독립서점 생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립서점 중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던 북바이북은 최근 판교지점을 폐쇄하고 나머지 서점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경영난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김진양 북바이북 대표는 기자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공지한 것처럼 지금 정신이 좀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건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통계 업체 스테이티스타에 따르면 미국의 서점 수는 2004년 3만8539개에서 2012년에는 2만8335개로 급감했다. 그러나 독립서점 수는 2009년 1651곳에서 2012년에 1900곳으로로 늘어났고 2017년에는 2321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증가세에도 독립서점 대표들은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경영이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독립서점 측이 경영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도 인터넷서점이 10% 할인을 하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대형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책을 공짜로 보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종의 차선책으로 저자와의 대화나 각종 문화 프로그램, 음료 판매를 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미국에서도 독립서점 붐 일어나


그렇다면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경영현황은 어떨까? 교보문고와 예스24의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보면 서점 자체가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보문고 기업설명회(IR)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 5000억원대에 영업이익률 1~2%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엔 매출 5450억원에 영업이익률 55억원을 기록했다. 한국경제신문의 2015년 6월 기사를 보면 교보문고의 문구 부문 매출이 1200억원대다. 출판사나 도서도매상이 서점에 공급하는 책의 단가는 정가의 20~30% 수준이고, 일부는 반품이 되지 않는다. 문구 부문의 마진이 이보다 적진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형서점에서 책만 팔았다면 적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온라인서점 부동의 1위 예스24가 도서 시장의 이익을 모두 가져가는 걸까? 예스24의 매출액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2015년을 제외하면 줄고 있다. 2014년 매출 4576억원에 영업이익이 34억원이었던 예스24는 2017년 매출 7000억원(예상치)에 영업이익 34억원을 기록했다. 역시 1%대 영업이익률이다. 온라인서점은 책 정가의 10%까지 할인이 가능하다.

독립서점들이 힘든 이유는 ‘동네책방’이어서가 아니라 ‘서점’이기 때문이다. 2014년 개정된 도서정가제에 따라서 인터넷서점 매출이 늘기는 했지만 영업이익은 떨어졌다. 대형서점에서도 주력 상품은 일반적으로 알려졌듯 문구 등 기타 상품이 아니라 도서 판매였다. 서점 자체가 어려운 건 우리나라에서 책은 그다지 인기 있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 관광부가 지난해 말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1년 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인 독서율은 종이책의 경우 성인 65.3%, 학생 94.9%였다. 학생들 독서율이 높은 건 참고서 등 학습서 때문이다. 전자책(e북)의 경우는 성인이 10% 남짓, 학생이 27% 정도였다. 다만 e북은 사실상 무료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성인이 연간 e북 구매에 쓰는 돈은 5000원, 학생이 쓰는 돈은 3000원이었다. 연평균 도서 구매량은 성인과 학생 모두 5권을 넘지 않았다. 성인 독서율은 1994년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종이신문의 구독 급감과는 다르다. 70%대를 유지하다가 2011년, 2015년 60%대로 떨어졌다. 성인들이 동네서점에서 책을 산 비율은 10.6%였다. 대형서점이 38.5%, 인터넷서점이 23.7%이었다. 책은 인기 있는 상품도 아니고, 이익도 박하며, 시장의 이윤을 특정 지배적 사업자가 가지고 갈 수도 없다.

독립서점의 강점은 오히려 이들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한 커뮤니티 기반의 각종 문화활동이다. 저자와의 대화나 토론회 등이 사실은 독립서점의 존재 이유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의 유명했던 독립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기사에서 독립서점의 강점을 지역 커뮤니티에서 찾았다. 신문은 작가이자 독립서점 주인들의 말을 인용해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가 대형서점에서 자신의 저서를 본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독립서점에서 자신의 책을 발견한다면 지역 주민들의 선택에 담긴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진정한 이웃이 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독립서점의 장점으로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네에서 쇼핑하기’ 운동과 같은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단순히 베스트셀러를 추천해주는 게 아니라 책 마니아인 지역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 깊이 있는 책 추천과 같은 큐레이션을 꼽았다. 지난해 번역 출간된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서점 직원이 손님이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서 직접 건네주는 핸드셀링을 독립서점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책을 쥐여주면서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아요. 아마 당신 마음에도 들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핸드셀링이 일어난다. 딱 맞는 책을 고르기보단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서촌에 사는 작가들의 책을 모은 코너를 만든 역사책방의 백영란 대표는 서촌에 사는 단골들이 무슨 책을 사갔고, 어떤 책에 관심이 있더라는 얘기를 했다. 최인아 대표도 두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누면서 500명이 넘는 북클럽 회원들이 오프라인 책 토론모임에 보이는 열정, 책모임에 자주 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얼마나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풀어내는지, 회원들이 저자와 함께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얘기했다. 실제로 독립서점 오너들은 만나면 일단 단골 얘기부터 시작한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이 할인율과 총알배송, 쿠폰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최인아 대표는 독립서점이 책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옷을 사는 데보다 책을 사는 데 돈을 더 많이 쓴다는 이진희 TV조선 기상캐스터는 1주일이면 3번 이상 독립서점을 찾는다. 집 근처 서점을 가기도 하고 연남동 등 독립서점이 모여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책을 사고,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이진희 캐스터는 왜 굳이 비싸고 책 종류도 많지 않은 곳에서 책을 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형서점에 가면 어쩐지 서점에 이끌려서 책을 고르는 느낌을 받는다. 책방주인과의 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독립서점의) 매력이다. 연남동에 있는 자주 가는 서점 리스본에는 이별을 한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한다. 나도 서점 주인인 정현주 작가와 얘기를 하다가 책을 추천 받아 읽고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런 공간이 좋아서 동네책방이라는 공간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자주 간다.”

아마존의 영구 무료 배송 소문

7월 6일 오전 인터넷 커뮤니티들마다 아마존에서 해외직구를 했던 네티즌들의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왔다. 아마존에서 90달러 이상 물건을 구매하니 한국에도 배송을 무료로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2위의 대형서점 보더스를 파산으로 몰고갔던 그 아마존이다.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무료 배송을 할 것이라는 아직까진 근거 없는 추측도 나온다. 국내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 사이에 끼어있다가 이제 아마존의 참전 소식까지 듣게 된 우리 독립서점은 정말 독립할 수 있을까? 책이라는 플랫폼으로 단단히 묶인 지역사회 혹은 마니아들의 공동체에 독립서점의 운명이 달려있다.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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