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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건설 막 오르나]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H’자 놓일까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개발비 4조~86조원 제각각 관측 제각각 … 해외 철도 강자의 ‘놀이터’ 될 수도

▎동해선 철도 제진역. 함경남도 안변과 강원도 양양을 잇던 동해선 철도는 한국전쟁으로 모든 역의 운행이 중단됐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으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제진과 감호역만 새로 연결됐지만 단 한번의 시험운행 이후 운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제진역 철도는 남북으로 끊겨 있다.
“철도는 경제의 선행관이다. 북남 철도 협력 사업은 견인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은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철도 건설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26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철도 분야 분과회의에서다. 이 회의를 시작으로 남북은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 조사에 착수했다. 남북 철도 건설의 막이 오른 셈이다. 철도는 4·27 판문점 선언에서 경제협력 이슈 중 유일하게 언급된 분야다. 남북 모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철도가 있어야 원자재를 나르고 사람·물류가 오가기 쉬워서다. 남북은 경협과 관계 개선을 위해선 철도망 확충이 선결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철도의 필요성을 경제 문제의 화두로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6월 러시아 국빈 방문 때 철도·가스·전기로 남·북·러 3각축 구성 사업을 빠르게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평화 무드가 깨질 새라 부랴부랴 사업 착수에 나섰다.

동해선·경의선 철도 현대화 작업부터


일단 동해선·경의선 철도부터 현대화한다. 이를 위해 공동연구조사단이 7월 24일부터 경의선 북측 구간(개성~신의주)을 공동 조사한다. 동해선 북측 구간(금강산~두만강) 조사도 곧바로 이어서 한다. 정부 구상은 크게 동해선과 서해선으로 남북을 잇고,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단철도를 놓아 한반도에 ‘H’ 형태의 철도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해선의 경우 부산에서 시작해 강릉을 거쳐 북한 원산~김책~나진을 지나는 노선으로 남북 간 원자재 운송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동해선은 2006년 제진~금강산 구간이 완공된 상태다. 여기에 2020년 완공되는 포항~삼척 구간과 강릉~속초~고성 구간을 이어 붙일 것으로 보인다. 서쪽에 들어서는 경의선은 서울에서 시작해 문산~개성~평양~신의주로 이어져 남북의 수도권을 연결하는 핵심 철도망이 된다. 경의선은 2003년 문산~개성 간 구간이 복원돼 이미 노선이 개통돼 있다. 한반도를 동서로 잇는 경원선(서울~원산) 철도복원 사업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원산은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관광 등 개방체제를 실험할 지역으로 꼽힌다.

정부는 나아가 남북 간 철도를 시베리아·중국·만주·몽골 등 4개 대륙횡단철도와 연결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경의선은 중국으로, 동해선은 러시아 방면으로 뻗는다. 원자재 수급을 원활히 하는 한편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한반도 철도를 유라시아 대륙 철도와 이으면 물류 종착지로 자리잡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첫 국제행사였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에서 “고대시대 실크로드가 열려 동서가 연결되고 시장이 열리고 문화를 나누었는데 아시아 대륙 극동 쪽 종착역에 한반도가 있다”며 “남북이 철도로 연결되면 새로운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완전한 완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구상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는 물류 중심지로 부상한다. 2030년 경의선은 연간 1억9321만t, 동해선은 1억1146만t의 철도수송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현재 평택항의 연간 처리 물류가 1억t 수준이다. 이상준 국토연구원 부원장은 보고서에서 “대부분 물류가 북한을 통해 들어오는 중국·러시아 물류로 포항·인천·부산을 통해 해상으로 빠져나간다”며 “정치·경제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물류 사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로벌 물류 허브 부상 기대감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 종착지로써 부상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사업 규모도 거대하다. 연구기관에 따라 추산치에 차이가 있지만 최소 4조원에서 최고 80조원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국토연구원은 북한 철도 현대화와 남북 연결의 총 사업비가 19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원장은 적게는 4조원, 많게는 37조6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소 비용은 북한이 인력과 기자재를 공급한 경우고, 최대 비용은 정부 지원 없이 온전히 민간 자금으로 짓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내놓은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773억 달러(약 86조원)가 철도 건설 비용으로 쓰일 것으로 봤다. 이는 북한 인프라 개발비 1392억 달러(약 155조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로, 도로(374억 달러)의 2배 이상 수준이다. 씨티그룹은 남북 간 28개의 철도 사업에 241억 달러(약 27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공식 추산 비용은 공동연구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통해 나오게 된다. 재원은 우선 13조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하고, 공적개발원조(ODA) 및 국채 발행 등 정부 자금 출연, 국내외 민간투자, 아시아개발은행(AD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자금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상 단계이기 때문에 결정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본격 시동을 걸면 국내 건설·철도 회사들도 수혜를 입을 수 있다. 대우건설 등 과거 남북 철도 사업에 참여했던 국내 건설사들도 일찌감치 북방사업지원팀을 설치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국내 철도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대로템도 일찌감치 수혜주로 평가받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철도 사업 예산 중 10%만 차량 구입비로 책정해도 수조원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다.

사업이 성사될 경우 막대한 부가가치가 생긴다는 희망적인 관측은 많다. 다만 세계 기업들도 남북 철도 건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은 별개로 봐야 할 문제다. 북한은 남한만의 오아시스는 아니다. 신흥국 투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마크 모비우스 모비우스캐피털파트너스 설립자는 CNBC에 출연해“(북한의 개방은) 시장이 더욱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한반도 철도가 중국·러시아로 연결되는 점”이라며 “엄청난 기회(tremendous opportunity)”라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누릴 수는 있지만 롬바르디아(캐나다)·히타치(일본)·제너럴일렉트릭(미국)·알스톰-지멘스(독일)·철도차량회사(CRRC, 중국) 등 쟁쟁한 글로벌 철도 강자들도 한반도를 주목하고 한다.

최근 글로벌 철도시장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쟁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중국은 최장 1만6000km 길이의 고속철도망 사업 ‘4종4횡’을 추진하고 있고, 인도는 전국적으로 150조원 규모의 신규 철도 사업을 펼치는 중이다.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도 경제 성장에 발맞춰 철도망 확장에 나서고 있다. 철도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알스톰과 지멘스가 합병하는 등 규모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남북 철도도 이런 흐름 속에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될 수도 있다.

현대로템은 세계 7위 수준이지만, 고속철도의 경우 해외 수주 실적이 전무해 글로벌 경쟁에서 한발 밀리고 있다. 이에 비해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사업을 펼치는 CRRC와 히타치는 2010년부터 인도네시아·태국·미국·인도 등지에서 20조~30조원 규모의 고속철을 각각 수주했다. 한반도 사업에 국내 기업이 입찰 서류를 내지도 못한 사례도 있다. 2011년 10월 개통한 나진(북한)~하산(러시아) 간 철도 공사의 경우다. 남한 기업의 참여가 논의됐지만 당시 남북관계 경색과 해외 기업의 공격적인 영업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이익 창출능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오를 것이란 기대감은 많지만, 이를 계량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일본의 견제도 있을 수 있다. 중국은 물류비 감축과 경제권역 확장을 위해 충칭에서 독일 뒤스부르크를 잇는 유라시아 철도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 역시 대륙철도를 자국으로 잇는 구상안을 준비 중이다. 모두 한국과 같은 종착지 전략이다. 특히 남북 철도를 대륙철도에 붙이는 안은 중국의 허락이 필요한 등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대북 제재 해제 과정부터 주도권을 둘러싼 주변국들 간에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된다.

경제성 입증되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

근본적으로 남북 철도의 경제성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남북 화해·협력, 북한 경제 개발이란 명분에 가려 계산기를 제대로 두드려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자금 조달 방식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다. 회수 가능성이 없어 비용 처리되는 사업이 있는가 하면, 운용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투자 성격의 자금으로 나뉜다. 또 철도운송은 항공운송에 비해서는 운임이, 선박에 비해서는 운송 시간이 절반 수준이다. 특히 철도 물류는 실시간 운행 현황과 화물 관리 등을 일체화 시킨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철도 운송 수요는 매년 5%씩 증가하고 있다. 다만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선박보다 철도가 비용과 시간을 감축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박은경 동양대 철도전기융합학과 교수는 “막대한 자금을 쏟는 남북 철도 운송이 선박보다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는 검토해봐야 할 일”이라며 “출발지와 도착지, 화물의 종류의 물동량 등에 따라 경제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철로 등 제반 시설이 워낙 오래되고 낙후돼 당초 예상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 북한은 철로를 목재나 중국·러시아제 중고품을 쓰는 경우가 많아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대륙횡단철도로 연결하려면 고속철 운행이 가능한 철로를 깔아야 하기 때문에 철로를 전면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전기도 한국은 교류 2만5000V를 쓰지만 북한은 직류 3000V를 쓰기 때문에 전기 공급 방식을 통일시키거나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하는 실정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탈선과 교량 붕괴 등 안전사고에 대비해 열차가 저속 운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철로보다 전기 공사를 먼저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며, 조사 결과가 나와야 비용 추산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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