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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8) ‘죠스’ 백상아리의 장수 비결] 예민한 탐지력, 민첩한 움직임, 탁월한 순발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4억년 넘게 지구상에서 생존…350종 이상으로 분화하며 진화

▎사진© gettyimagesbank
언론 매체에 근무하는 기자들에게 세상은 둘로 나뉜다. 뉴스가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흔히 말하듯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대체로 ‘꺼리’가 아니다. 치명적일 수 있지만 으레 있는 일이라 희소가치가 없다.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물면? 이건 뉴스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해수욕장 근처에 범고래들이 나타나는 건 어떨까? 약간의 호기심 어린 반응이 있겠지만 아마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덩치와 식성을 가졌는데도 그것이 백상아리라면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백상아리처럼 말이다. 사실 그 녀석은 길이가 6m가 넘는 성체에 비하면 거의 새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1m43㎝에 불과했는데도 거의 모든 언론에 등장할 만큼 ‘가치’를 인정 받았다. 범고래와 비슷한 덩치와 식성을 가졌는데 반응이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영화 '죠스'로 세계적 화제


▎지난 7월 14일 오전 5시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백상아리.
주요한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범고래는 고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육식고래이지만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편인데, 상어 중에서 가장 큰 백상아리는 사람을 공격해 먹이로 삼는다. 당연히 요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이제는 전설이 될 정도로 오래된 영화 [죠스(jaws)]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 영화는 1975년 여름을 앞두고 개봉되었는데 줄거리는 간단했다.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에 식인 상어 백상아리가 나타나 마을과 피서객들을 공포로 몰아넣자, 사람들이 이 백상아리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영향력은 그렇지 않았다. 식인 상어가 해안 마을을 공포로 휩쓸었듯 영화는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다.

당시 사람들은 상어라는 존재는 알았지만, 상어 중에서도 가장 큰 백상아리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 줄 몰랐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거대하고 우악스러운 상어의 입은 공포 그 자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한 입에 모든 걸 끝내 버리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것에 더 큰 공포를 느낀다!). 여기에 괴기스러운 음악이 그렇지 않아도 졸아들고 있는 관객들의 간을 한껏 졸였다.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딴, 딴, 딴, 딴’ 하는 음이 평화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울려 퍼지면 그건 바다 밑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 공포스러운 존재가 언제 어디서 솟구쳐 나올 지 모른다는 암시였다. 그렇게 가슴을 졸이다 이번에는 아닌가 보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난데없이 “캭~” 하는 비명이 울려 퍼지면 객석 또한 비명으로 가득 차기 일쑤였다. 덕분에 이 영화는 개봉 첫 주에만 700만 달러를 기록, 제작사인 유니버설 픽처스가 제작비 900만 달러를 개봉 2주 만에 회수했을 정도였고(총 수입 4억7000만 달러) 당시 전 세계 해수욕장이 상당히 한산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건 당시 27살의 스필버그가 이 모든 걸 의도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500만부 이상이 팔린 소설을 영화화하다 보니 제작비가 턱 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원인은 주인공의 ‘출연료’. 식인상어 역할을 하던 세 마리의 ‘기계 상어’가 바닷물에 부식돼 툭하면 고장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이 대본을 수정해 상어가 등장해야 하는 장면 거의 대부분을 언제 불쑥 솟구쳐 나올지 모르는 암시와 그러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음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대박을 만들어냈다.

후일 전해진 일화에 따르면, 당시 스필버그는 음악을 담당한 존 윌리엄스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핵심 선율을 피아노로 들려주자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한다. 손가락 두 개로 저음부 건반을 반복해서 누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스는 이 영화 음악으로 1976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사람을 자주 공격하지는 않아

어쨌든 주인공 백상아리의 ‘열연’ 덕분에 스필버그와 제작사는 돈방석에 앉았지만, 주인공 백상아리는 실제로 출연하지도 않았는데도 엄청난 누명을 뒤집어썼다. 백상아리는 실제로 그렇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백상아리=죽음의 공포=무조건 피해야 할 존재’라는 등식을 선명하게 새겼다. 영화가 개봉된 지 40년이 훨씬 지나고, 새끼라고 할만한 작은 녀석이 나타났는데도 온 매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말이다.

분명한 건 백상아리가 생각만큼 사람을 많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식인 상어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은 지금까지 총 6건이다. ‘매년’이 아니고 ‘지금까지 전부’ 합해서이다. 상어는 350종 이상이 전 세계 바다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이런 상어에게 공격 받은 건수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많아야 50건 안팎이고, 사망자는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대체로 10명이 안 될 때가 많다. 여기서 ‘불과하다’라고 한 건 사건과 사망자가 다른 사건에 비해 엄청나게 적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년 해파리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필리핀에서만 평균 40명이 넘고, 벼락에 맞아 사망하는 사람은 미국에서만 매년 40여 명쯤 된다. 개에게 물려 치명상을 입은 사람이나 자동차 사망 사고를 감안하면 비교도 안 된다. 350종이 넘는 상어 중 사람을 공격하는 상어도 3~4종뿐이다. 이들도 수면 아래쪽에서 볼 때 수면에 떠 있는 사람이 자기네들의 주요 사냥감인 물개나 바다표범과 흡사할 때 공격하는 편이다. 물론 피를 흘릴 때는 가능성이 커지긴 한다. 위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실상에 비해 엄청나게 과장돼 있다.

사실 우리가 이 ‘죠스’ 백상아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무서워하기보다는 연구할 만한 ‘충분하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특히 장수 기업을 꿈꾸는 조직이라면 녀석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일단, 녀석들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장수 생명체다. 상어의 족보는 무려 4억년 이상으로 올라 간다. 우리 인간의 조상이 길어야 600만년인 걸 감안하면 생존에 관한 한 어마어마한 선배다. 그동안 지구는 수많은 일을 겪었고, 그중에는 생명체 대부분을 몰살시킨 대멸종이 5번이나 있었으며 중소 규모 멸종은 수십 번 이상 있었는데 녀석들은 그럴 때마다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만약 중국인들이 샥스핀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면 ‘건재’라는 표현 대신 ‘번성’이라는 단어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이 요리를 위해 매년 수많은 상어가 등 지느러미가 잘려진 채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상어의 입장에서 볼 때 우악스럽고 공포스러운 건 인간인 셈이다.

어쨌든 백상아리를 포함한 상어의 장수 비결은 충분히 연구할 만하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생명체 중 99%가 사라졌는데 4억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보통 생존력이 아니다. 더구나 백상아리는 3t이나 되는 덩치를 갖고 있다. 녀석들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뭐니뭐니 해도 동급 최강의 경쟁력 하나는 있어야 한다. 특히 그 큰 덩치를 유지하려면 동급 최강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생태계 최강의 ‘무기’가 필요하다. 녀석들은 그런 무기를 갖고 있다. 무시무시한 턱이다. 영화 [죠스]가 잘 알려주었듯이 녀석들의 턱은 가공할 위력을 자랑한다. 역사도 유구하지만 가치 또한 높다. 이미 4억년 전 가장 완성된 형태의 턱을 거의 최초로 개발해 장착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절대 ‘올드(old)’하지 않다. 지금도 위력적이다.

3t의 무게에도 시속 40㎞로 움직여

이유는 탁월한 기능에 있다. 녀석들은 윗턱과 아래턱을 분리할 수 있어 다물고 있을 때는 유선형 모양을 유지,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당연히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는 동시에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또 먹이를 먹을 때는 최대한 크게 벌릴 수 있어서 웬만큼 큰 먹이도 단번에 삼켜 버릴 수 있다. 더구나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빨은 부러져도 계속 자란다. 한두 번 나고 마는 게 아니다. 이빨 하나가 최대 300개까지 날 정도여서, 녀석들은 평생 수천 개의 이빨을 소비할 수 있다. 그러니 뭐든 꽉 물어도 된다. 이런 이빨을 한두 겹도 아니고 6~8겹으로 촘촘하게 배열하고 있으니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아마 대멸종 시기 같은 어려운 시절에는 한 번의 기회가 전부일 수 있는 까닭에 기회가 왔을 때 기필코 그걸 잡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덩치가 크면 둔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평소에는 마치 뒷짐 지고 산책 하듯 유유히 헤엄쳐 다니다가 기회가 왔다 싶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물을 덥석 물어 순식간에 꿀꺽 해버린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고 ‘한 턱’ 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바다의 최강자다. 턱만 민첩한 게 아니다. 3t이 넘어가는 몸무게에 6m가 넘는 덩치를 갖고 있는데도 시속 40㎞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수면 위로 3m나 뛰어오를 수 있다. 이 정도면 항공모함이 300m쯤 점프하는 수준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녀석들은 항공모함과 닮기도 했다. 넓은 바다 위를 누비며 강대국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은 그 거대함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레이더를 비롯, 주변 상황을 예민하고 예리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 백상아리도 마찬가지다. 녀석들은 오랜 시간 개발해온 다양한 장치로 그 누구보다 탁월한 기회 포착 감각을 가동하고 있다.

우선 4억년 동안 갈고 닦아온 후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서울 여의도 만한 곳에 피 한 방울만 떨어져도 그걸 포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능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녀석들은 이를 위해 뇌의 3분의 1을 후각에 배치하고 있다. 그만큼 필요한 능력이라는 의미다. 바닷속은 흐려서 시야가 좋지 않을 때가 많기에 개발한 능력일 텐데, 그렇다고 시각을 포기한 건 아니다. 고양이들이 그렇듯이 망막 뒤의 반사판을 통해 조그마한 빛이라도 최대로 이용, 어둠 속 시력을 고양이보다 두 배나 좋게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각 능력도 탁월하고, 몸 옆을 지나는 측선을 통해 물결로 전해지는 주변 상황을 탐지하기까지 한다.

보통 웬만한 생명체라면 이 정도에 그치겠지만, 녀석들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능력을 하나 더 개발했다. 험한 세상에서는 더 많은 능력을 가질수록 좋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코와 입 주변을 보면 아주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는데, 녀석들은 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물을 피부 밑에 있는 세포로 세밀하게 검색, 반경 25m 이내에 있는 상황을 마치 CCTV 보듯 파악한다. 이걸 로렌치니 기관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앞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나 흙탕물에서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또 물고기들이 모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바닥의 모래 속에 숨어도 감지해 낼 수 있다. 물고기의 심장이 내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350종 이상으로 분화한 상어 중에는 아예 이런 바닥 생태계를 자기 영역으로 포지셔닝한 녀석들이 있는데 귀상어라는 녀석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곳에 전문화하기 위해 로렌치니 기관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눈을 특화했다. 보통 상어들은 물고기들이 그렇듯이 눈이 전면부 양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 녀석들은 마치 이마에 직사각형 판자를 가로로 길게 댄 것처럼 머리 양쪽을 늘려 그 끝에 눈을 두었다. 두 눈 사이가 아이들이 양팔을 활짝 편 길이만큼 떨어져 있다. 우리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이 눈은 바닥의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먹잇감을 찾는 데는 최고다. ‘발본색원’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손전등을 전선 한 개로 연결할 때 흐르는 아주 미세한 전류까지 탐지할 수 있다. 모래 속에 몸을 숨긴 채 죽은 듯이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먹잇감들까지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녀석들이 가진 세상을 살아가는 힘

핵심 능력만 이 정도이니 녀석들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세밀하고 예민하게 탐지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왔을 때 민첩하게 움직이는 능력, 그리고 순발력 있게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녀석들에게만 필요할까? 그 어느 때보다 더운 여름, 굳이 백상아리가 나오는 바다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녀석들이 가진 세상을 살아가는 힘만큼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녀석들이 가진 장수 생존의 비결과 그 원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니 말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45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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