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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형마트, 그들의 생존법은] 온라인 쇼핑 강화하고 매장 통·폐합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부진한 매장 줄이고 특색 있는 사업 강화

▎성장의 벽에 부딪힌 국내 대형마트 3사가 사업 전환과 구조조정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2002년 일본의 유통 업계 1위 다이에의 몰락으로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다이에는 1960~70년대 소매 유통 체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고, 80~90년대 대형마트 출점 공세를 펼친 일본 1위 유통 기업이었다. ‘가격 파괴’ ‘다양한 소비자 욕구 충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새로운 방식의 조달·영업 방식도 개척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와 유통 업체 간 치열한 매장 확장 경쟁 속에 막대한 적자에 시달렸다. 부채 규모는 2조엔에 달했다. 다이에는 사업 구조조정에 실패하며 결국 채권단의 수술대에 올라 그룹이 해체되고 말았다. 일본 유통 공룡의 침몰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소비자 기호의 다양화 등 일본의 경제 환경 변화와 사회의 성숙 등 구조적 원인이 중첩돼 벌어진 결과다. 제 아무리 최고 기업이라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법이다.

한국 유통산업도 일본과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온라인마켓의 가파른 성장 속에 오프라인 매장은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영업을 펼치는 대형마켓은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 성향에 대처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생활필수품은 저렴한 것을 구매하지만 심리적 만족감이 높은 기호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 풍조도 대형마트로서는 달갑지 않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형마트의 최근 동향을 보면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국내 3대 대형마트의 매장 수는 2017년 424개로, 2013년에 비해 28개 늘었다. 2014년 8개, 2015년 10개, 2016년 6개, 2017년 4개로 증가하는 매장 수는 줄고 있지만,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대형마트 수는 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 3사의 총 매출은 2013년 26조원에서 지난해 25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조 4000억원에서 9000억원 수준으로 크게 꺾였다. 점포당 매출은 2013년 658억원에서 2017년에는 590억원으로 감소했다. 몸집은 커졌지만 체질은 약해진 셈이다.

이마트, 삐에로쑈핑·일렉트로마트 등 열어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 점에 6월 문을 연 삐에로쑈핑.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다. / 사진:이마트
이에 국내 대형마트 3사 모두 체질 개선에 돌입하고 있다. 이마트가 변화에 가장 선도적이다. 소비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색 있는 매장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마트는 6월 28일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 점에 ‘삐에로쑈핑’의 문을 열었다. 2513㎡ 규모다. 개점 11일 만에 누적 방문객 11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펀 & 크레이지(재미와 미친 가격)’를 표방하는 만물상으로, 신선식품부터 가전·명품까지 4만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B급 감성’으로 무장했다는 점이다. 매장 곳곳에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즐비하며, 성인용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대를 별도로 설치했다. 또 통로가 좁고 눈과 손이 닿는 곳마다 제품을 빼곡히 채워놓는 압축진열 방식을 도입했다. 깔끔하고 잘 정돈된 기존 매장의 구성 대신 상품을 복잡하게 배치함으로써 소비자가 보물찾기를 하듯 예상치 못한 제품과 재미를 찾는 방식을 추구한다. 제품을 두루 둘러보게 해서 소비심리를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직원 옷에도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소비자가 묻지 않고 매대를 일일이 찾아보게 했다.

가격도 저렴하다. 유통기한이 가까워졌거나, 부도 회사의 제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급소가격’, 제품군 중 인기가 있거나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에는 ‘갑오브갑’, 단독 판매 상품에는 ‘광대가격’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이런 제품에는 면세점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명품도 포함돼 있다. 삐에로쑈핑의 이런 운영 방식은 일본 ‘돈키호테’를 참고했다. 돈키호테는 장난감부터 가전제품·식자재·명품 등 5만여 종의 제품을 판매한다. 통로는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복잡하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반드시 찾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성장했다. 돈키호테는 다양한 제품과 쇼핑의 재미를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어 매출·영업이익이 28년 연속 늘고 있다. 지난해는 8조4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돈키호테를 방문한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이마트는 삐에로쑈핑을 연내 3호점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는 2015년에는 가전 양판점 ‘일렉트로마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기존 국내 가전매장들이 단지 제품 판매에 주력했던 데 비해 일렉트로마트는 ‘가전 제품으로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단지 TV·게임기·오디오 판매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취미에 초점을 맞춰 제품 판매 전략을 세웠다. 일렉트로맨이라는 캐릭터도 제작해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일렉트로마트는 남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호평을 받으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6.9% 성장했다. 올 상반기도 전년 동기 대비 79.3% 늘었다. 이마트는 일렉트로마트의 점포 수를 올해 안에 32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는 이 밖에도 가구 등 5000여 가지 생활용품을 파는 ‘더 라이프’와 이마트 자체 브랜드(PB) 식품 매장인 ‘피코크 키친’ 등도 운영하고 있다. 일렉트로마트와 마찬가지로 제품이 아니라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이마트 내점 고객을 늘릴 수 있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12월 은평점 토이저러스 매장 안에 아케이드 게임장 ‘놀랜드’를 오픈하며 고객의 발길을 잡고 있다. 아동용 게임은 물론 ‘보글보글’ ‘스트리트 파이터’ 등 1990년대 레트로 게임을 설치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홈플러스, 매장 안에 창고형 매장 열어


홈플러스는 샵인샵 개념의 매장을 도입해 고객의 다양한 소비 패턴을 소화하며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매장 안에 창고형 매장을 설치하는 ‘홈플러스 스페셜’이다. 낱개 상품과 대용량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홈플러스로서는 창고형 매장의 신규 출점 없이 이마트·롯데마트 등과 경쟁을 벌일 수 있다. 또 매장에 지역밀착형 커뮤니티몰 ‘코너스’도 도입했다. 풋살파크나 청년창업 지원센터, 싱글맘 쉼터, 공예 체험관, 어린이 도서관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모임터로 자리잡는 것이 목표다. 또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길어진 여가 시간을 휴식·놀이 등으로 공략해 쇼핑으로 연결시키는 이른바 ‘쇼퍼테인먼트’ 전략이기도 하다. 아울러 TV나 휴대폰처럼 모든 신선식품의 품질을 사후 보장하는 ‘신선 품질 혁신 제도’도 도입했다. 온라인 쇼핑이 세를 불리고 있지만 신선식품은 여전히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적립 포인트도 업계 평균의 20배로 높여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를 강화하고, 가정간편식(HMR) 상품을 ‘올어바웃푸드’로 일원화 하는 선택과 집중에 나서기도 했다.

롯데마트, 중국 사업 정리하고 온라인몰 강화

체질 개선의 일환으로 온라인 쇼핑을 강화하는 한편 매출이 줄어든 오프라인 매장도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패션 부문의 온라인 유통 채널 ‘엘롯데’를 중심으로 롯데마트몰·롯데하이마트몰·롯데아이몰·롯데닷컴·롯데슈퍼몰 등 6개 브랜드의 시스템 통합 작업을 나섰다. 주문·배송·결제 시스템 등을 일원화해 비용을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3조원을 투자해 온라인몰 사업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마트 역시 신세계 그룹 온라인 유통 플랫폼 SSG닷컴을 주축으로 신세계백화점과 통합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대형 점포의 성장은 주춤한 데 비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온라인 쇼핑은 급성장 하고 있다”며 “고객 니즈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유통 방식을 발 빠르게 도입할 필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부진한 사업의 과감한 정리와 함께 상장 등의 비전통적 운영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매장 정리에 나선 이마트는 학성점을 시작으로 부평·시지·덕이점을 잇따라 매각했다. 매장을 짓기 위해 사뒀던 하남·평택 부지도 정리했다. 대신 온라인몰과 함께 창고형 할인매장인 트레이더스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26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중국 점포의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 리췬 그룹 등 현지 유통 업체들과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르면 8월 중 매각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는 지속해 중국 내 대형마트 99개와 슈퍼마켓 13개 등 총 112개의 점포망을 갖고 있었다. 지분 매각이 마무리 되면 2007년 네덜란드계 대형마트 ‘마크로’를 인수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지 11년만에 철수하게 된다. 롯데마트는 대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러시아를 신규 사업지로 꼽고 현지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홈플러스는 최대주주인 MBK가 100% 지분을 보유한 매장을 기초 자산으로 부동산투자리스회사를 설립해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감정가를 기준으로 상장 가격은 2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점포 리뉴얼과 운영자금,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할 전망이다.

1446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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