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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강화되나] 정부·정치권 “배상액 늘리고 대상 확대”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o.co.kr
BMW 차량 화재 사태로 다시 도마에...“부작용 크다” 신중론도

▎2016년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사 제품의 결함에도 BMW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이미 정부에서 관련 검토를 시작했고, 정치권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관건은 이미 부분적으로 도입된 징벌적 손해제도의 범위와 배상액 상한 수준이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기업의 비도덕적 행위를 방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토부,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검토


▎8월 2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영동고속도로 강릉방면 104㎞ 지점에서 리콜(시정명령) 조치에 들어간 차종과 같은 모델인 BMW 520d 승용차에서 또 불이 나 소방대원 등이 진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확대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차량 화재 발생에도 해당 업체인 BMW가 리콜을 결정하기 전까지 정부의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등 리콜 제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계기가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종합적인 리콜 제도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으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하고 국무조정실 등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여야 정치권도 박자를 맞추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 7일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제조물책임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규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자유한국당 소속인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도 “자동차의 결함에 대해 제작사가 신속한 원인 규명과 사후 조치를 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제도 도입 추진 방침을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국토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법령의 제약이 있더라도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 동시에 법령의 미비는 차제에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 등이 고의적·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예컨대 피해자가 실제로는 1억원의 재산상 피해를 입었어도, 법원이 재량으로 3억원의 배상액을 판결할 수 있다. 이 제도의 기대 효과는 실질적 피해 보전과 예방이다. 피해자가 실제 피해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배상을 받는 현실을 보완하고, 기업은 큰 배상금을 물지 않기 위해 소비자 보호에 사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이 아니라 ‘확대’다. 이 제도는 이미 개별법을 통해 국내 사법체계에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것은 2011년 하도급법에서다. 원사업자가 기술유용 행위를 해 수급사업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갈취하거나 유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만든 조항이다. 이후 ‘기간제근로법’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등 개별 법률에서 사안별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됐다.

다만 최근까지 제조물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 배상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15년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태 때부터다. 폴크스바겐은 당시 미국에서 17조2000억원(153억3300만 달러)을 배상했다. 미국에서 폴크스바겐 차량을 소유한 이들은 차량 환불이나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1인당 약 590만∼1100만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는 100만원짜리 쿠폰에 만족해야 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근본 원인으로 양국의 배상액 규모 차이가 지목되면서 국내에서도 더 높은 배상액을 판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듬해엔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으로 국민의 분노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옥시 피해자 한 사람이 받는 피해 기금 액수는 40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유사한 사건의 판결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2월 22일 미국 미주리주법원은 존슨앤존슨 땀띠용 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질적 손해에 대한 배상(1000만 달러) 이외에 징벌적 손해배상(6200만 달러)을 인정하는 배심원 평결이 내려졌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폭넓게 적용돼 있다. 620억원과 4000만원의 차이는 앞서 폴크스바겐 사태에 이어 제조물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불을 붙였다.

이처럼 연이은 대형 소비자 피해 사태에 기업의 부도덕한 영업행태를 바로잡고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합당한 배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조물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은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고, 올해 4월부터 시행됐다.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이 법은 시행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이번 BMW 화재 사태를 계기로 다시 전기를 맞게 됐다. 사실 제조물책임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애초부터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배상액 규모가 피해액의 최대 3배로 제한돼 있는 데다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BMW 화재처럼 재산상 손해만 발생한 경우에는 아예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정치권이 검토 중인 내용도 배상액 상한을 5~8배로 올리고, 신체상 피해 외에 재산상 피해에도 이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법·민사소송법 특례로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한도를 배상금의 2배로 정하되 고의나 중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무제한의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제조물에 징벌적 손해배상 더욱 강화될 듯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2년 한국법제연구원이 내놓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관한 입법평가’에 따르면 대다수 전문가들은 현행법과의 조화 및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도입의 필요성이 시급한 분야부터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지난해 법 개정 당시에도 손해배상 한도를 최대 12배까지 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런 점을 수용해 배상 한도를 3배로 정했다. 지금의 확대 방안은 당시 판단을 시행 반년 만에 뒤엎는 셈이 된다.

제도의 정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손해배상 수준이 현실과 맞지 않게 지나치게 낮은 건 분명한 문제지만, 이는 법원이 적정한 수준의 배상액을 내도록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라며 “배상액 판단 기준은 후진적인 채로 이슈에 따라 배상액만 불리는 건 과도한 예방비용 부담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파악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은 거의 없다”며 “법만 들여놓고 어떻게 시행되는지는 관심 없이 땜질 처방만 하는 건 문제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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