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집값 불안 요인 사전 조치…사업 재개 돼도 사업성 없을 수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를 통째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여의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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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하긴 하겠죠. 여의도가 개발된 지 5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하지만 언제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 다르니 손님들한테 설명하기도 쉽지 않네요.” 여의도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7월 한 달 간 쉴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좀 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시장이 여의도와 용산 개발을 골자로 한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꺼낸 지 보름도 안돼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 때문이다. 시장 분위기가 보름여 만에 완전히 딴 판이라는 게 지역 부동산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확 올랐던 아파트값이 뚝 떨어진 건 아니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여의도 부동산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특히 ‘그래도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집값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정부가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 시장 말 한마디에 아파트값 급등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이 7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가운데)과 대화하고 있다. 김 장관은 전날 국회 국토교통위 현안질의에서 박 시장이 발표한 서울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방안에 대해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를 나타내며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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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은 7월 10일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난데없이 여의도 개발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공원과 커뮤니티 공간을 보장하면서 건물 높이를 상향할 계획”이라며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 중인 여의도를 신도시에 버금가게 만들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여의도와 용산 일대 재개발 계획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큰 틀은 여의도를 새로운 업무와 주거지로 바꾸고, 용산역은 서울역까지 지하화해 MICE(회의·관광·전시·이벤트) 단지와 쇼핑센터, 각종 광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소규모의 ‘재생’ 위주 정책을 강조하던 박 시장이 직접, 그것도 파격적인 수준의 ‘통개발’을 언급하자 여의도·용산 부동산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매도 호가(부르는 값)를 확 높인 것이다. 삼부 아파트 135㎡(이하 전용면적)형은 상반기 14억~15억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18억원을 호가한다. 광장 아파트 102㎡형도 7월에만 호가가 1억원 이상 올라 지금은 14억5000만~15억원 선이다.박원순표 여의도 마스터플랜에서 촉발된 아파트값 상승세는 여의도·용산을 넘어 인근 마포로까지 확산했다.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 84㎡형은 7월 말 13억3000만원(7층)에 팔렸는데, 6월 같은 주택형이 12억7000만원에 실거래된 것에 비해 6000만원 오른 것이다. 마포구 공덕동의 다음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인천이나 부산 등지에서도 매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워낙 매수세가 강해 (계약을) 망설이기라도 하면 매물이 빠지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국토부에 따르며 7월 마포구 아파트값은 6월보다 0.56% 상승했다. 이 기간 서울 강북권에서는 최고 상승률이다. 마포구의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마포는 교통 여건이 좋아서 워낙 수요가 많고 가격도 꾸준히 오름세를 보였다”며 “여기에 최근 여의도·용산 개발 얘기가 나오자 상승폭이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이처럼 여의도·용산을 넘어 주변 지역까지 들썩이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다급히 진화에 나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7월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해도 정부와 협의해야 현실성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중앙정부의 동의 없이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시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 시장은 며칠 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여의도 도시계획은 전적으로 서울시장의 권한”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국토부는 8월 2일 ‘8·2 대책 기반 위에 주택시장 안정에 역점’이라는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협력을 강화해 주택시장 불안 요인을 사전에 조기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하려면 도시정비법 등 관련법이나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며 “여의도는 특히 (아파트 재건축을 위해서는)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지자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정부의 협조 없이는 여의도 마스터플랜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국토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도시재생뉴딜사업도 집값 과열 지역에 대해서는 선정을 배제하거나 선정 이후 사업시기를 연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집값이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를 보이는 곳은 사실상 개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인데, 집값 안정에 대한 정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집값 불안을 불러올 수 있는 서울시의 여의도 마스터플랜 발표가 늦춰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시는 당초 이르면 8월 안에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아직 구체적인 발표 시기를 정하지 않았다”며 “국토부와 협의를 해나갈 방침”이라고만 밝혔다.
발표도 안 된 마스터플랜에 맞추라니…정부 제동에 박원순표 여의도 개발이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여의도는 혼란만 쌓이고 있다. 특히 개별적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여의도 시범·공작 아파트 주민과 용산 왕궁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들 단지는 최근 열린 서울시의 8,9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재건축 정비계획이 보류됐는데, 서울시는 박 시장이 제시한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맞춰 정비계획을 다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발표도 안 된 마스터플랜과 맞추라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최고 층수 등에 따라 재건축 사업성이 결정되는데, 정부가 집값 불안을 이유로 개발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발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성이 없어 사업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여의도를 통째로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기부채납 비율을 높여 사업성이 낮았다”며 “이 때문에 주민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무산됐는데 이번에도 그러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