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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커지는 ‘디지털 디톡스’] 인정욕·경쟁욕 부추기는 SNS와 결별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디지털 피로감 커지며 피처폰 시장 급성장 … 이발사·양조자 등 반수공업 직업도 주목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독서 등 휴식으로 심신을 다스리는 ‘디지털 디톡스’ 수요가 늘고 있다. 경기도 파주 ‘지혜의 숲’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대부분 상거래와 인간관계, 통신, 정보가 전자기기 및 전자 신호로 이어지는 디지털 세상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밤 사이 있었던 일과 시간을 확인하고, 회사의 대부분 업무를 PC로 처리하며,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주고받는다. 인공지능(AI)이 내 스케줄을 관리하거나 정보를 분류해주고, 음성으로 가전제품을 작동하며, 암호화폐로 물건값을 지불하는 세상도 머지 않았다. 원활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복잡, 난해한 전산 기술을 이해해야 하며, 디지털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평소 정보통신기술(ICT)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디지털은 현대인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여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 역시 많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성인남녀 38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8.8%가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아예 끊거나 줄인 경험이 있으며, 응답자의 32.4%는 ‘향후 디지털 단식을 시도 혹은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에 최근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주목 받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란 몸에서 노폐물을 빼듯 디지털로 쌓인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스마트폰·PC·TV 등 디지털 기기와 디지털과 인간 간에 연결을 끊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가장 벗어나고 싶어하는 디지털 분야는 SNS다. 인간관계를 디지털에 담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피로도가 적지 않다. 일본에서 400만부가 팔린 [바보의 벽]의 작가 요로 타케시(養老孟司)는 최근 동양경제와의 인터뷰에서 “SNS는 인정욕구와 경쟁욕, 자아실현, 자기애 등의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네트워크를 구조화해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 이 세계에 빠진 사람은 묻혀서 빠져 나오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美 도심 부근 숲의 ‘겟어웨이 하우스’ 인기


디지털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는 아날로그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다음소프트는 웹상에서 아날로그와 관련된 언급량이 2015년부터 매년 약 10만건 이상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관련한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들이 2015년 설립한 스타트업 ‘겟어웨이’는 ‘언플러그드’ 여행 상품을 앞세우고 있다. 보스턴 등 미국 도심에서 멀지 않은 숲에 ‘겟어웨이 하우스’라는 오두막을 지어 손님을 맞고 있다. 스마트폰 통신이 닿지 않는 곳으로, SNS에 이곳 사진이 올라오지 않도록 고객에게도 정확한 주소도 알려주지 않는다. 안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을 맡겨야 한다. 대신 카드·주사위 등 아날로그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디지털 독을 빼려는 숙박객이 몰리며 올 말까지 주말 예약은 모두 다찬 상태다. 이런 류의 여행 상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여성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인 ‘블리스 아웃 캠프 아웃’은 1박에 400달러로 비싸지만 매번 매진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피츠버그 르네상스 호텔 등 기존 호텔들도 체크인할 때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는 ‘디지털 디톡스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려는 분위기는 SNS 사용 빈도로도 확인할 수 있다. KT그룹의 디지털 미디어렙 나스미디어의 ‘2018 인터넷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SNS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81.6%로 전년 대비 2.3%포인트 감소했다. 이승문 나스미디어 트렌드전략팀장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던 SNS 이용률이 꺾인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며 “불특정 다수로 관계가 퍼지고 24시간 남과 이어지는 SNS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이 늘어나는 추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디톡스 현상은 디지털 확산의 진원지인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본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한물 간 피처폰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피처폰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38% 성장했다. 인도 등 저성장 국가에서 휴대전화 보급이 늘어난 가운데 가볍고 튼튼하며, 가격이 싼 피처폰의 판매가 크게 늘었다. 임수정 카운터포인트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노년층이나 스마트폰의 방해에서 벗어나고 싶은 수험생, 초등학생 등을 중심으로 피처폰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몰락한 노키아도 부활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핀란드 스타트업 HMD글로벌은 노키아폰 브랜드 라이선스를 인수하고 지난해 700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이런 기류에 애플·구글 등 세계적인 ICT 기업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 개발사들은 스마트폰 접촉 빈도와 사용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속속 선보이며 사용자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 사용자의 휴대폰을 보는 횟수와 애플리케이션 사용 시간 등을 알려주고 다른 사용자 평균과 비교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스크린타임’을 선보였다. 구글 역시 휴대폰 사용 시간을 분석하는 한편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스마트폰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는 식의 ‘디지털 웰빙 이니셔티브’를 내놓았다. 스마트폰 중독을 자가진단하거나 차단하는 앱도 많이 출시된다. 가족끼리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공유하는 ‘넌 얼마나 쓰니’, 자주 사용하는 앱의 사용을 제한하는 ‘세번만’, 스마트폰을 방치하면 포인트가 오르는 ‘방치타임’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구글도 위기감, 탈 스마트폰 서비스

직업 선택에서도 탈 디지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맥주 양조자, 책 제본가, 가구 제작자, 생선 장수 등 전통적 일자리의 소득 수준은 미국의 중위소득 3만 달러에 못 미치지만 그 숫자가 늘고 있다”며 “바텐더와 이발사의 수는 2024년 2014년보다 10% 늘고 정육점 주인은 같은 기간 5% 늘어날 것”이라는 미국 노동부의 전망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리처드 오제코 뉴욕시립대(CUNY) 대학원 교수(사회학)는 지난해 내놓은 책 [장인: 새로운 도시 경제의 옛 직업(Masters of Craft: Old Jobs in the New Urban Economy)]에서 “저평가받던 반(半) 수공업 직업이 멋진 일자리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가 덧없다고 느낀 밀레니얼 세대의 반작용이 영향을 줬다. 자신만의 기술과 지식을 공연하는 것처럼 고객에게 보여주며 긴밀하게 소통하는 직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들에게 돋보이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좋은 아날로그 직업에 젊은층의 관심이 커진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친구와 함께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하는 김진용(32)씨는 “자전거 기어를 고치거나 바퀴를 교체할 때 고객들로부터 받는 칭찬에 기분이 좋고 보람도 느낀다. 더 능숙하게 일 하기 위해 평소 연습도 한다”고 말했다.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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