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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0) | 명재상이자 책략가 오자서] 복수에 눈 멀어 천하의 간신 감싸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백비 활용해 원한 갚았지만 자신의 목숨 잃고 나라도 백척간두에

▎사진:일러스트 김회룡
예나 지금이나 ‘복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악인에 의해 몰락하는 집안,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온갖 시련을 겪는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절치부심해 원한을 갚는 과정은 많은 흥미를 준다. 복수에 얽힌 충성·의리·가족애·사랑·우정 등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지만 복수가 늘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복수심에 불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본인이 파멸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번에 소개할 오자서(伍子胥)다.

오자서는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평왕의 손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간신 비무극의 부추김을 받은 평왕은 아들인 세자 건(建)의 정혼자를 빼앗았는데, 그 참에 세자를 끌어내리고 세자의 후견인 오사 일가도 제거하려 한 것이다. 평왕의 마수를 눈치 챈 오자서는 홀로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며 국경을 넘는다. 이 때 그가 도착한 곳이 오나라. 이곳에서 오자서는 왕위를 노리고 있던 공자(公子) 광(光)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와 형의 억울한 죽음

공자 광은 한 눈에 오자서의 능력을 알아봤다. 그는 원수를 갚도록 도와주겠다며 대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오자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갖은 책략을 동원해 권력 찬탈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광이 보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합려다.

그런데 이즈음 또 한 명이 초나라로부터 망명해온다. 초나라의 대신 백극완의 아들 백비다. 백비 역시 비무극의 농간으로 아버지가 처형됐기 때문에 오자서와 같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오자서는 백비를 따듯하게 맞이해주었고 임금에게 추천해 높은 벼슬까지 받게 한다.

하지만 백비를 탐탁지 않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오자서의 은인으로 관상을 매우 잘 보았던 피이(被離)는 오자서에게 이렇게 물었다. “공께서는 무엇을 보고 백비를 믿으시오?” 오자서가 대답했다. “나의 원한이 백비의 원한과 같지 않소?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가엽게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이 있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어야 한다고 하였소. 뭘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시오?”(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안타까워하고 서로 의지한다는 뜻의 ‘동병상련’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자 피이가 말한다. “공께서는 그 사람의 겉만 보고 속은 보지 않으시는구려. 내가 백비의 관상을 보니 새 매의 눈에 호랑이의 걸음을 가졌소. 이런 자는 성격이 탐욕스럽고 아첨에 능하여 혼자서 공로를 차지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일 것이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되오. 만약 중용하면 반드시 공께 해를 가져다 줄 것이오.”

백비는 믿을 수 없는 자이니 곁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자서는 피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손자병법]의 저자로 오나라의 총사령관을 지낸 손무(孫武) 역시 “백비는 공로만 믿고 제멋대로 설치는 사람이오. 나중에 틀림없이 오나라의 우환거리가 될 것이니 목숨을 거두시오”라고 권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더욱 백비를 아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비는 오자서 다음 가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대체 오자서는 왜 백비를 감싼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복수 때문이었다. 합려가 오자서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오나라의 대다수 신하들은 오자서가 사적인 복수를 위해 국력을 낭비하려 든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오자서는 자신의 복수를 도와 줄 세력을 키우기 위해 백비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에게는 백비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같은 원한을 가졌다는 것만 눈에 보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오자서의 의도는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백비는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내몰았다. 덕분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에 수백 번 채찍질을 가해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백비가 점점 탐욕스러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백비는 합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부차가 허영심이 많고 오만하다는 것을 이용, 아첨으로 권세를 도모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나라에 피해를 준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다. 월나라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부차의 할아버지 합려는 월나라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는데, 부차는 섶에 누워 잠을 청하며 복수를 다짐했다(와신상담 중 ‘와신’). 그리고 마침내 월나라의 항복을 받아낸다. 평소 오자서는 월나라가 오나라의 심복지환(心腹之患, 가슴이나 배에 생겨 고치기 힘든 병)이니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부차 역시 월나라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백비가 월나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뀐다. 백비는 감언이설로 월나라 왕 구천을 변호해주었고 부차도 백비의 설득에 넘어가버렸다. 오자서의 결사반대에도 포로로 잡았던 구천을 풀어주기까지 했다.

더구나 백비는 오자서까지 숙청하려 들었다. 자꾸만 자신을 저지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데다가 오자서만 없으면 자신이 오 나라의 모든 권력과 이익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비는 부차에게 오자서를 계속 참소하며 모함했고, 결국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린다. 월나라 왕 구천이 쓸개를 핥으며 원한을 갚겠다고 칼을 갈고 있던 그때(와신상담 중 ‘상담’) 백비는 오나라의 버팀목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죽음을 맞이한 오자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열국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하늘이여! 하늘이여! 지난날 선왕께서 부차를 후계자로 세우지 말자고 하셨으나 내가 힘껏 간쟁하여 그를 임금으로 만들었다. 나는 부차를 위해 초나라와 월나라를 깨뜨렸고 제후들에게 오나라의 위엄을 과시했다. 그런데도 부차는 간사한 신하의 말만 듣고 나를 죽이려하는구나.’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 오자서는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나의 눈을 빼내 도성 동문 위에 걸어두라.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똑똑히 보리라.’”

만약 오자서가 백비의 진면목을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은혜를 원수로 갚고 나라에도 큰 해악을 끼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면 어땠을까? 그가 진즉에 피이와 손무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본인뿐 아니라 오나라의 운명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명재상이자 당대의 책략가로 평가받는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비를 계속 끼고돈 것은 마음속에 가득했던 복수심이 판단을 흐렸기 때문이다. 원수 갚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백비의 사람됨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분노로 평정심 잃어

무릇 분노는 올바름을 잃게 만든다. 감정에 얽매여 마음의 평정심을 찾지 못하면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옳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사람을 보는 안목 또한 마찬가지다. 선입관이나 편견, 치우친 감정 등이 존재하면 그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에게 큰 해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오자서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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