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채권시장의 강력한 금리 인하 시그널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기대의 작용이 신속한 채권시장은 다른 어느 경제지표보다 선행적으로 경기변동 방향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채권시장에서 무위험 채권과 위험 채권 간의 금리 격차인 리스크 스프레드(risk spread)가 축소되면 경기 확장을, 반대로 리스크 스프레드가 확대되면 경기 위축을 예고한다. 채권 시장 리스크 스프레드 변화는 가계와 기업의 저축과 투자 판단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 방향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경기 위축과 그에 따른 금리 인하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무위험 채권과 위험 채권의 금리 차이인 리스크 스프레드가 미래의 경기를 관측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로를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경기 호전이 예상되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무위험 채권 금리 상승이 예상된다. 동시에 시장에서 낙관론이 고개를 들며 위험자산 선호 분위기가 퍼지는 동시에 시중자금 사정 호전으로 지불불능 위험이 줄어듦에 따라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져 고위험 채권의 금리가 하락한다. 무위험 채권 금리는 상승하는 반면에 위험 채권의 금리는 하락하는 결과 채권시장에서 리스크 스프레드가 축소된다.

이와 달리 경기 위축이 예상되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하락이 예측돼 금리가 하락하는 데다 투자자 사이에 안전 자산 선호 바람이 불어 무위험 채권 금리는 하락한다. 경기 회복기와 반대로 투자자들 사이에 비관론이 퍼져 위험회피 현상이 번지는 데다, 기업 경영 성과 저하로 실제 부도위험도 높아진다. 리스크 프리미엄이 커지고 위험 채권의 금리는 상승한다. 무위험 채권의 금리는 낮아지고 위험 채권의 금리는 상승하는 결과 리스크 스프레드가 확대된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리스크 스프레드 변화 추이와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대표적 무위험 채권인 국고채(3년) 금리는 2% 내외로 적정수준(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인 4.5%의 절반 정도보다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와 달리 다소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이 투자적격등급으로 평가하는 회사채(3년) BBB- 등급 회사채 금리는 9% 내외로 적정 수준보다 2배 정도 높게 형성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위험 채권인 국고채 금리와 위험이 조금 있다고 하지만 투자적격채권인 회사채 BBB- 금리와의 격차는 무려 4배 이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채권시장 리스크 스프레드는 가팔라졌다가 일시적으로 둔화됐지만 2012년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과거 고성장·고물가·고금리 시대에 비해 저성장·저물가로 금리의 절대수준이 크게 낮아진 점을 감안하면, 리스크 스프레드의 상대적 수준은 과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셈이다.

무위험 채권의 금리는 더 낮아지는 반면에 위험 채권의 금리는 더 높아지는 비정상적 상황이 장기간 전개되고 있는 현상은 한국 경제의 무기력 증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위험과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체에 비유하면 한 쪽에는 저혈압 증상이 다른 쪽에는 고혈압 증상이 혼재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채권시장이 그리는 한국 경제의 모습은 다리에는 힘이 빠지고 머리는 어지러워 휘청거리는 셈이다. 장마 끝에 산사태가 나기 직전의 징후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흔들린다’며 경계하라는 기상전문가의 경고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림에서 보듯 확대되는 리스크 스프레드를 고려할 때, 2018년 현재는 한국 경제의 경기상황이 호황으로 반전될 가능성은커녕 오히려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이기도 하며 위험회피 성향이 높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여타 경기 지표를 관찰할 필요도 없이 채권시장 상황만 보더라도, 기준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오히려 내려야 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리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기간 이어져온 리스크 스프레드 확대 추이를 생각할 때, 2017년 11월의 금리 인상도 채권시장이 보내는 경기위축 신호를 도외시한 시책이었다고 판단된다. 시장에서는 당시 한국 경제의 경기흐름을 무시하고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이 그 이후 한국 경제 불황의 그림자를 더 짙어지게 만든 원인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당시 기준금리 인상 명분의 하나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자금 유출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우려와 경고였다. 그러나 막상 미국 정책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져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기는커녕 유입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에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채권시장에 먹을 게 있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 고환율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금리가 낮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투기적 성향의 핫머니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서 걱정이다. 외국인 투기세력에게 채권시장·주식시장·외환시장에서 이리 뺏기고 저리 뜯기다 보니 외환위기 이후 8000억 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누적흑자에도 실질 대외지급능력, 즉 순대외자산(순국제투자포지션)은 2018년 6월 말 현재 약 32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채권시장은 경기변동에 대한 신호를 어느 경제지표보다 신속하게 보내는 기능을 한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같은 거시경제 현상을 반영하는 채권시장의 기대의 작용이 미시경제 현상의 총합을 반영하는 주식시장보다 더 신속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이 효율적일수록 그 예측기능은 보다 정확해진다. 채권시장에서 리스크 스프레드가 축소되면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고, 리스크 스프레드가 확대되면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리스크 스프레드 극대화는 경기가 최저점에서 회복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리스크 스프레드가 극소화되면 앞으로 경기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전환되기 직전의 모습일 수 있다.

효율성이 높은 채권시장에서 나타나는 리스크 스프레드 신호를 관찰하고 실물경기의 변화 방향에 대응해 가계나 기업은 저축과 투자, 소비와 생산에서 합리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목표로 하는 정책금리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실물경기 동향을 어느 지표보다 빨리 예측하는 채권시장의 신호기능(signalling)을 중시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1449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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