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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초읽기에 몰릴 상황을 경계하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수읽기 못해 좋은 수 못봐 … 업무·일상에서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야

▎일본바둑의 전설 조치훈 명인은 ‘목숨을 걸고 둔다’는 살벌한 좌우명을 내세울 만큼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래서 늘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곤 한다.
초읽기는 매스컴의 사회면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새 노조 설립 초읽기’ ‘미·중 보복 초읽기’와 같이 마감박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 말은 바둑에서 왔다. 바둑시합에서 제한시간을 쓰고 난 후에 초읽기를 한다. 초읽기로 인해 좋은 바둑을 역전당하기도 하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지막 초읽기에 몰렸을 때의 다급한 기분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바둑의 초읽기: 초읽기는 바둑에서 생긴 독특한 제도다. 경기를 축구나 농구처럼 정해진 시간에 끝낼 수 있으면 깔끔하다. 그러나 바둑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어떤 바둑은 200수 이전에 끝나기도 하고 어떤 바둑은 300수를 넘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한시간에 경기를 끝내려면 심판이 판정을 해야 한다. 실제로 아마추어 시합의 경우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경기를 끝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심판이 승부에 대한 판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바둑의 판정은 쉽지 않다. 바둑경기의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승부를 결정짓기가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읽기라는 제도가 개발됐다. 공식적인 바둑시합에서는 보통 제한시간을 준 후 그것을 다 쓰면 초읽기를 한다. 한 판에 각자 제한시간이 1시간인 경우 1시간을 다 쓰고 나면 1분이나 30초 내에 한 수씩 두어야 한다. 제한시간 10분 전에 초읽기를 하고 10번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한 수를 1분 내에 두지 않으면 1분씩 없어진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1분마저 써 버리면 시간 초과 패배가 된다. 그러니까 마지막 1분이나 30초를 읽을 때는 반드시 시간 내에 두어야 한다.


초읽기를 할 때는 누구나 긴장을 하게 된다. 방송에서 두는 바둑에서 프로기사들이 “마지막 10초 하나 둘…” 하고 부를 때 아홉에 착점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런 장면을 보면 시청자도 조바심이 난다. 계시원이 “열” 하고 불러버리면 그것으로 타임아웃이기 때문이다. 바둑팬 중에는 왜 프로들은 “아홉” 할 때 두느냐고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유 있게 일곱을 부를 때쯤 두면 좋지 않으냐는 것이다. 어떤 계시원은 차마 “열”을 부르지 못해 “아홉”을 길게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상대편 기사로부터 항의를 받는 일도 있다. 대국용 시계를 놓고 둘 때는 시계가 초를 부르기 때문에 이렇게 봐주는 일이 없다.

초읽기의 신, 조치훈: 바둑 분야에서 초읽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일본바둑의 전설 조치훈 명인이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조치훈 9단은 ‘목숨을 걸고 둔다’는 살벌한 좌우명을 내세울 만큼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곤 한다. 조치훈 9단은 초읽기에 단련이 되어 있어서인지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많은 수를 별 착오없이 두어 치운다.

하지만 이런 조치훈 9단도 초읽기에 몰려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1초에 몰려 황급히 둔 수가 실수로 판명되기도 한다. 또한 초읽기를 넘겨 시간패를 당하는 적도 있다. 수년 전 한국바둑의 전설 대결에서 조훈현 9단과 특별시합을 할 때 초읽기를 넘겨 시간패를 당했다. 팬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또한 재작년에 한국바둑을 빛낸 5인방의 대결 결승에서 유창혁 9단과 둘 때도 조치훈 9단은 시간패를 당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사이버오로의 기사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대국자 모두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조치훈이 둘 차례. 1분의 여유가 있었다. 돌연 조치훈의 머리에서 땀이 주르륵 바둑판 위로 떨어졌고 조치훈은 황급히 자신의 손수건으로 땀이 묻은 바둑돌이며 바둑판을 닦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간은 어느덧 50초를 지나가고 계시원은 마지막 10초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둘·셋… 그리고… 아홉이 됐는데도 조치훈은 돌을 집지 않았다. 유창혁은 당황해 계시원을 쳐다봤다. 계시원은 열을 불렀다. 조치훈의 시간패였다.

[1도]는 당시 유창혁 9단과 둔 바둑이다. 백을 쥔 조치훈 9단은 특유의 실리전법을 펼쳤고 유창혁 9단은 상변과 하변에 폭넓은 진을 펼쳤다. 이 흑진들이 얼마만큼 현금화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양상이다. [2도] 좌변의 접전이 끝난 후 조치훈 9단은 백1로 잽싸게 상변 흑진에 뛰어들었다. 흑2로 공격할 때 백 3에서 5까지 아예 자리를 잡았다. 이후 146까지 둔 바둑에서 조치훈 9단이 약간 유리한 형세였다. 그러나 초읽기 착각으로 인해 중요한 바둑을 지고 말았다.

초읽기에 몰리지 마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초읽기에 몰리는 경우가 있다. 마감이 임박해 빨리 마무리를 해야 할 입장에 서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런 경우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하게 되면 뭔가 날림으로 처리하기 쉽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부실공사가 되기 쉬운 것이다. 특히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면 수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좋은 수가 있어도 보지 못한다.

가능하다면 회사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초읽기에 몰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초읽기에 몰리면 우선 마음이 초조해져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기 힘들다. 또한 긴장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게 된다. 이런 점을 피해 바둑에서 시간을 안배하며 두는 기사도 있다.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시간을 물쓰듯 써 버리면 나중에 초읽기에 몰려 고생하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초읽기에 몰리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리 예측을 하고 스케줄을 세워 일을 처리해 나가면 초읽기에 쫓겨 실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필자는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52호 (201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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