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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가온 차트에 정식 음반으로 집계석 대표가 론칭한 ‘키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이어폰 단자와 연결해 가수의 음악이나 사진, 뮤직비디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음악 앨범이다.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네모 모양의 제품으로 한 쪽에는 이어폰 단자에 꼽는 잭이 있다. 첫인상은 아이돌 그룹이 팬들을 위해 내놓는 굿즈 같은 느낌이었다. 키트 이용법은 무척 간단하다. 먼저 아이폰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폰의 구글 플레이에서 뮤즈 라이브가 내놓은 ‘키노 플레이(Kihno Play)’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앱을 설치한 후에 키트를 이어폰 단자에 끼우면 가수의 음악과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음반 모양의 메뉴가 화면에 뜬다. 메뉴에서 음악과 사진, 뮤직비디오 등을 선택해 감상할 수 있다. 가수의 노래 볼륨을 0으로 하면 MR(보컬이 빠진 녹음된 음원)이 되고, MR을 이용해 녹음을 하면 마치 노래방에서 노래를 녹음하는 기능까지 있다. 음반을 낸 가수와 소통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가수와 직접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키트는 스마트폰 시대의 CD나 DVD나 마찬가지다.그렇다고 키트에 음악이나 뮤직 비디오 등의 데이터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키트는 뮤즈라이브가 운영하는 데이터 서버에 접근해 데이터를 이용하게 하는 온라인 키 역할만 한다. 석 대표는 “스마트폰 시대에 맞는 음반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내놓은 음악 앨범이 키트”라며 “키트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이어폰 잭에 꼽으면 키트에 할당된 암호가 우리의 데이터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NFC나 USB 형식이 아닌 이어폰 잭을 이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CD 같은 앨범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어디엔가 꽂아서 음악을 듣는 게 아날로그적 특성을 살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키트의 또 다른 장점은 하나의 기기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복제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게 불가능하다. 석 대표는 “음반 업계의 고질적인 어려움을 우리의 기술력으로 해결했다”며 웃었다.
유니버설 뮤직과 손잡고 가수 음반 제작 계획석 대표가 아날로그 형태의 음악 앨범을 구상한 것은 그만큼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CD나 DVD 같은 음반시장 규모가 80억 달러(약 9조원)로 전체 음악시장의 50%나 차지한다. 디지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로 음악을 듣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음반을 사서 소장하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키트는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지만 음반은 소장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절묘한 제품이다. 석 대표는 “지금까지 30여 종의 키트 앨범을 발매했는데 모두 ‘완판’됐다”면서 “처음에는 가수당 2000~3000장 정도 만들었지만, 현재는 2만~3만장 정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목표 판매량은 50만장.지난 1월에는 가온과 한터 등의 음반 판매 차트에 키트도 포함됐다. 석 대표는 “음반 판매량은 음원 다운로드보다 가중치가 높다”면서 “키트 판매량이 음반 판매량에 집계가 되기 때문에 음악시장의 이해 관계자들이 키트 출시를 더 이상 꺼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키트가 온·오프라인 앨범 판매 채널에 동시에 배포되는 이유다. 지난해 5월 빅스(VIXX) 앨범을 시작으로 레드벨벳·슈퍼주니어·엑소 등 SM 소속의 전 가수 앨범이 키트로 출시됐다.석 대표가 요즘 집중하는 것은 유니버설 뮤직이다. 스파크랩에 무작정 찾아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스파크랩 데모데이에 참여한 후 석 대표의 바람대로 유니버설 뮤직 관계자와 연결이 됐다. 석 대표는 “콘퍼런스 콜을 몇 차례 했다”면서 “유니버설 뮤직에서는 키트를 보자마자 그동안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매체를 2년이나 찾았다면서 반가워했다”고 자랑했다. 유니버설 뮤직과 손을 잡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방탄소년단과 테일러 스위프트 등의 키트 제작이다. 석 대표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키트와 같은 새로운 앨범을 좋아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석 대표의 행보와 성과는 업계 상황을 아는 이들에게는 놀라움 자체다. 음반뿐만 아니라 영상 같은 콘텐트의 경우 풀기 어려운 게 저작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가수가 곡 하나를 발표하면 기획사·유통사·가수·작곡가 등 다양한 이들이 저작권으로 얽혀 있다. 음반 하나를 제작해 유통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영상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업계에 있는 이들은 “콘텐트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고 말할 정도.이런 어려운 상황을 풀 수 있던 것은 10여 년 넘게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한 후 의류 수입 사업을 하다가 10여 년 전부터 음악 업계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SM과 다날엔터테인먼트 등과 손을 잡고 음악 사업도 했지만 쓴맛을 많이 봤다. 디지털 시대에서 음악으로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직접 느낀 것이다. 그가 처음 키트를 업계에 소개할 때만 해도 냉담 그 자체였다고. 그는 “오랫동안 일을 해서 아는 이들이 많았고 저작권 같은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있었다”면서 “음반시장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음악으로 돈을 벌기 어려웠는데, 키트가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