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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한 경제(11) 사립유치원·어린이집 비리와 공공성 논란] 헌재 “국가 재정 지원 어린이집 처벌·간섭 정당” 

 

함승민 기자
2016년 어린이집 제재 관련 결정…비리 사립유치원 사태에서도 참고할 만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무실 / 사진:연합뉴스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후폭풍이 거세다. 박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추가로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약 5년 9개월 동안 1만6122건(382억원)의 비리가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은 “감사 결과로 드러난 문제점은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돈을 일부 원장 등이 사적으로 사용한 부정행위, 속되게 말해서 ‘삥땅’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일부 유치원의 교비 전용 의혹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전국의 상당수 사립유치원에서 정부 지원금과 학부모가 낸 돈이 원장 쌈짓돈처럼 쓰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만만찮다.

박 의원은 조사 결과와 관련해 “감사를 통해서 적발된 내용보다 지도점검을 통해 적발된 내용이 더 큰 문제”라며 “아예 작정을 하고 정부를 속여서 국민 세금을 훔쳐가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지도점검 자료는 각 시도교육청 유아교육과나 유아교육팀에서 유치원 현장에 출동해 비리 등을 적발한 내용이다. 조사에 따르면 감사는 2325개 유치원에서 6908건, 316억618만원이 적발됐다. 지도점검에서는 5351개 유치원에서 9214건, 65억8037만원이 적발됐다. 지도점검 결과 일부 유치원은 원아 수를 허위로 보고하고 교사 경력을 허위로 작성, 부당하게 원비를 인상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부정하게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빼돌린 지원금 명품백·성인용품 결제에 사용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10월 31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립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 마련 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리 사립유치원들이 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학부모와 시민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은 유치원 돈으로 노래방·숙박업소에서 결제하는가 하면 명품백이나 성인용품까지 산 것으로 나타났다. 원장 소유의 아파트 관리비, 주유비, 휴대전화 요금, 심지어 과속으로 발생한 과태료까지도 유치원 회계에서 지급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유치원 돈은 설립자나 원장 개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흘러갔다. 원장이나 설립자가 자신의 가족을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심한 경우엔 가짜 서류를 꾸며 입금해주기도 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유치원이 계약을 하는 방식 등으로 지원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 같은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원장 아들에 대한 부당 급여 지급 등 최근 불거진 회계부정 외에도 아동 출석 일수를 조작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부정수령 하는 등 행위가 있었다. 사립유치원뿐만이 아니다. 전국 4만여 어린이집에서도 툭하면 비리가 터진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어린이집 원장들의 부정한 보조금 수령에 대한 사건을 다룬 적이 있다. 어린이집 원장 이상우(가명)씨는 2012년 인천 연수구청으로부터 기본보육료·보조금 반환, 원장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장애아 전담교사를 두지 않고도 관련 보조금을 받고, 교사-아동 비율을 지키지 않은 채 기본보육료를 받은 것이 적발돼서다. 2013년 여수시의 신정아(가명)씨도 비슷한 징계를 받았다. 신씨는 A유치원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B어린이집의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여수시는 신씨가 실제로는 A어린이집이 아닌 B유치원에서 일을 했고 여기서도 교사-아동 비율도 지키지 않은 채 보조금을 받았다며 보조금 반환과 어린이집 폐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공익이 어린이집 사익 침해보다 중요”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회의. /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처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자체를 상대로 각각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했다. 이와 함께 영유아보육법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법에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은 경우’에 어린이집의 보조금 반환, 자격 정지, 시설 폐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와 신씨는 “이 법이 정당하게 받은 보조금도 반환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어린이집 폐쇄나 원장 자격 정지 같은 극단적 조치까지 할 수 있게 해 재산권과 직업(사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2016년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해당 조항들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들에 대한 제재가 적법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헌재의 논리는 간단했다.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건전성과 보조금의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선 보조금 반환, 자격 정지, 시설 폐쇄 등이 정당하고 적당한 수준의 조치라는 것이다. 헌재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받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설의 운영을 정지 또는 폐쇄하거나 그 운영 자격을 정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어린이집 설립자의 일부 사익이 침해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공익에 비하여 결코 무겁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또 하나 쟁점이 됐던 게 있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씨와 신씨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이라는 말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디까지가 ‘부정한 방법’인지 애매하기 때문에 행정적 착오나 단순 과실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과도한 처벌을 하는 게 부당하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지금 사립유치원 단체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재 사립유치원 측은 이번 감사 결과에서도 단지 회계규정을 잘 몰라 발생한 경미한 사례가 많다며 대다수 조치는 관련 제도의 미비 탓에 발생한 오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당시 이에 대해 헌재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헌재는 “‘그 밖의 부정한 방법’은 다소 일반적이고 추상적 개념”이라면서도 “해당 조항의 입법 목적과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봤을 때 이 말은 ‘적극적 속임수 이외에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올바르지 않은 행위’라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어 법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지금 사립유치원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도 적극적 속임수 외의 통념상 부정한 행위를 지적한다. 설령 악의적으로 회계조작을 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도 위반했거나, 간과했거나, 감사·점검 이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 착오나 단순 과실도 책임져야


▎10월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편, 비리 유치원 사태는 사립유치원의 공공성과 사유재산 논쟁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당정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놓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 개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재산권과 이익 추구를 보장해줘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어서다. 한유총은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은 사유재산으로 사립유치원의 땅과 건물을 일구고 수십년 간 유아교육에 헌신했던 설립자들과 원장들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한유총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만 걱정하는 것 같다. 교육자인지 장사꾼인지 모르겠다”(박용진 의원)며 비판하고 있다.

1981년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 수립 후 정부는 유치원 취학률 제고에 노력했다. 이에 사립학교법상 법인 전환이 필요 없는 유치원 사업에 개인이 뛰어들었다. 사립유치원은 국공립과 달리 설립자, 보통은 원장의 개인 돈으로 세워진다. 대신 국가는 이들의 자영업식 이윤 추구를 눈감아 줬다. 그러다 2012년 정부가 누리과정(만3~5세 유아에게 모두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사립에도 국가 지원금이 들어왔다. 학부모 부담 경감을 위해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아동 1인당 보육료 22만원에 방과후 과정비 7만원, 교원 인건비 및 각종 지원금을 투입하고 있다. 갑자기 공적 지원을 받게 된 사립유치원은 회계 감사란 책임도 떠안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문제되지 않았던 사립유치원의 비용 처리가 회계부정으로 적발됐다. 또 회계규칙은 유치원 설립자가 건물에 투자한 수십억원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립유치원의 법적 지위는 ‘사립학교’이고, 이는 영리를 추구해선 안 되는 비영리 기관이라서다. 그러자 사립유치원 단체에서는 정부의 회계 투명성 요구는 헌법적 권리의 침해니 위헌소송 대상이라고 강변한다. 자신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개인사업 vs 공공재’ 논쟁 거세져

이 논의에서 참고할 만한 결정도 2016년 헌재에서 나온 적이 있다. 국가가 민간 어린이집의 교비 책정에 간섭할 수 있느냐를 두고 헌법소원에 제기된 것이다. 물론 민간 어린이집과 지금 문제가 되는 사립유치원은 법적 지위나 적용되는 법률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공공재적 성격을 띠면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민간의 자본이 투입된 공공재에 대해서도 국가나 지자체가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양측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앞서 보조금 부정수급 사건의 청구인인 이씨가 재등장한다. 그는 어린이집 2세반 영유아 148명에 대하여 특별활동을 실시하면서 학부모로부터 필요 경비를 받았다. 그러나 인천 연수구청은 해당 경비가 법정 수납한도액을 넘었다며 초과 수납한 부모부담금 6540만원의 환불 명령을 내렸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은 지자체가 정한 수납한도액 범위 안에서만 학부모부터 필요경비를 받을 수 있다. 이씨는 “어린이집과 학부모는 대등한 계약 당사자인데도 이 법 때문에 특별활동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학부모한테 초과 수납분을 돌려줘야 하는 건 부당하다”며 “이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위배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헌재는 재판관 전월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어린이집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데서 오는 문제보다 이들의 이윤 추구로 혹시나 잃을 수 있는 공익이 더 크다고 봤다.

헌재는 “국공립보육시설이 한정되어 있어 대다수의 영유아가 민간보육시설에서 보육을 받는 상황에서, 필요경비의 결정을 시장원리에만 맡겨둔다면 어린이집의 이윤 추구로 말미암아 필요경비의 액수가 지나치게 커질 위험이 있다”며 “어린이집 이용비용이 영유아의 보호자에게 주는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은 점, 필요경비가 어린이집 이용비용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요경비 액수에 대하여 규제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1458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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