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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선 수주는 싹슬이 했지만…이를 단순히 ‘일부 분야 부진’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해양플랜트가 지금껏 조선 업계에서 큰 기대 속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분야여서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해양플랜트는 들어가는 부품마다 특수성이 있어 제각기 다른 설계도로 제조할 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라며 “예컨대 유정(油井)마다 원유 또는 가스의 매장량과 성분이 모두 다르고, 수심이나 지반 종류 등도 달라서 염두에 둘 부분이 수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세계 조선 업황이 급속도로 나빠진 시점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지금껏, 기술력 하나로 버텨야 하는 한국 조선업에 있어 해양플랜트는 ‘고수익 창출 수단’과 ‘세계에 기술력 건재를 알릴, 조선 강국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함께 가졌다.그런데 수주절벽이 이어지면서 기업들로선 그간의 투자가 오히려 전반적인 실적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해양 분야 인건비만 해도 부담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없던 일’처럼 여겨 투자를 최소화하기도 쉽지 않다. 눈앞의 실적을 위해 미래 경쟁력을 포기하면 미래 실적을 저당잡히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해양플랜트 딜레마의 주요 내용이다. 국내 조선 업체들이 최근 해양플랜트 일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경기 침체에 휘청거린 글로벌 발주사들이 투자에 소극적으로 바뀌어서다. 너나할 것 없이 비상경영 중인 가운데 해양플랜트는 단 한 건 계약하더라도 금액 규모가 워낙 크니 이들로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수주 경쟁국들 간 가격 경쟁이 격화된 것도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마찬가지로 일감 확보에 혈안이 된 싱가포르와 중국이 가격 경쟁력으로 발주 기업들을 유혹하면서 해양플랜트에서마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실제로 미국 석유 업체 쉐브론이 발주해 올해 한창 진행됐던 ‘로즈뱅크 프로젝트’엔 국내 빅3가 모두 입찰했지만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이미 고배를 마시고 싱가포르 업체 셈코프 마린과 대우조선해양만 남았다. 2조원 규모 FPSO 수주가 걸린 큰 프로젝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최대한 가격을 낮춰 쓴다고 썼는데도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쉐브론이 이 프로젝트 지분 40%를 노르웨이 석유업체 에퀴노르에 매각하면서 사업자 발표가 미뤄져 대우조선해양도 내년에나 수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셈코프마린은 2017년에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조선 업계에 충격을 안겼던 기업이다. 당초 빅3 중 한 곳의 수주가 유력하다고 봤던, 노르웨이 업체 스타토일이 발주한 ‘요한카스트버그 프로젝트’에서 FPSO 수주를 이 회사에 내줘야 했다. 영국 업체 로열더치셸의 ‘비토 프로젝트’에서도 부유식 해양생산설비인 FPU(Floating Production Unit)를 이 회사가 수주했다. 여기에 2018년 초 발주됐던, 2조원 규모의 FPSO 수주가 걸렸던 ‘토르투 프로젝트’는 프랑스 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손잡은 중국 업체 코스코에 내줘야 했다.문제는 이처럼 일감 고갈 현상이 장기화했을 때 사내 인력의 상당수가 유휴 노동력으로 전락한다는 데 있다. 빅3 하나당 해양플랜트 사업부 인력과 해당 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 기업으로선 이들의 임금은 계속 지급하는데 해당 분야의 수익은 나지 않는,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손실만 입는 상황이 된다. 조선 부문으로 일부 근무를 돌리더라도 이쪽 일감 또한 넉넉하지 않아 한계가 따른다. 최근의 국제 유가 폭락세(두 달 사이 40%가량 급락)도 수주절벽을 부추기는 악재일 수 있다. 계속 수익성이 떨어지면 발주사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버텨 반전을 노리느냐, 사업을 축소하느냐. 조선 업계가 해양플랜트 딜레마에 빠진 배경이다.업계는 일부 구조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숙현 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대표는 지난 8월 임직원 담화문에서 “신규 수주에 필요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상상황 선언이 불가피하다”며 “조직 대폭 축소와 희망퇴직 실시 등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스스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대중공업은 같은 달 해양플랜트 모듈 등을 제작하던 울산의 온산공장 부지 매각도 결정했다. 과거 해양플랜트 일감이 넘쳐나면서 기존 울산공장만으로 소화를 못해 2011년 문을 연 이곳은 한때 1000여 명이 근무할 만큼 북적였지만, 어느덧 유휴 생산 부지로 전락해 고민거리가 됐다. 최근 에쓰오일이 이 부지를 사들이면서 석유화학 사업 확대에 나섰다.반면 3사 중 전체 매출 대비 해양플랜트 분야 의존도가 높은 편인 삼성중공업은 최소 수백 명의 인력 감축이 필요하다는 일부 분석에도 섣불리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해양플랜트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상선 중심으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2017년 순손실은 3407억원. 2018년에는 이 규모가 약 3870억원으로 늘 것으로 추산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성근 부사장이 최근 경기도 시흥 연구·개발(R&D) 센터 개소식에서 “혹독한 구조조정 중에도 미래 경쟁력인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진행은 흔들릴 수 없다”며 해양 플랜트 딜레마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에둘러 표현했다.
구조조정 나선 현대중공업, 여력 강조한 대우조선해양이 회사는 2017년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흑자 전환했고, 해양플랜트 일감도 2020년까지는 확보해(1건의 프로젝트 맡아 진행 중)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로즈뱅크 프로젝트에서 밀리는 등 2019년 상반기까지도 추가 수주에 실패할 경우 2000명가량의 유휴 인력이 발생하게 돼 어려움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우려 반 기대 반’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조선 업체들의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은 해양플랜트와 구조조정에 달렸다”면서도 “드릴십 업황 개선이 지연됐고 저유가 기조로 해양생산설비 수주 기대감이 크지 않아진 상황”이라며 쉽지 않은 2019년을 예상했다. 반면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박사는 “해양플랜트 수주는 2018년보다 2019년에 다소 확대돼 한국의 5조~6조원대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양플랜트 딜레마를 딛고 한국 조선업은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