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시멘트업계 연간 총 2500억원 증세…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세 늘어 ‘환영’
▎정유사 등 석유화학 업체가 몰려 있는 여수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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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기업 팔 비틀기,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 요즘 재계에서는 이런 탄식이 나온다. 여야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지역구 내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추가로 걷기 위해 지방세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다. 석유·시멘트 등을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에 포함하려는 것이다. 지역자원시설세는 지하자원이나 오물처리시설 등 공공시설로 이익을 얻는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이다. 이 세금은 자원보호나 해당 지역 주민을 위해 쓰이므로 지방자치 단체 수입으로 잡는다. 당연히 세금이 늘어날수록 지역 주민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노리고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구 내 기업이나 시설에 지역자원시설세를 물리려는 것이다.여기에 지자체까지 거들고 나섰다. 본격적인 자치분권시대를 준비하려면 지방세 발굴을 통한 세수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역자원시설세는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와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국회의원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하지만 세금 부담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 되레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관련 부처도 이중과세 논란이 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이 최근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을 유치한 후 지역 일자리나 세수를 늘리려는 것과는 정반대”라며 “이미 세워진 기업과 시설에 세금을 더 걷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지역자원시설세 확대를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발의된 것만 20여 건이 넘는다. 대표적인 게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과 김태흠·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으로, 석유·시멘트 등을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석유는 생산량 또는 반출량 1ℓ당 1원, 천연가스는 생산량 1㎥당 1원씩 물어야 한다. 주 의원 측은 “석유화학 산업단지의 사고가 현재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인 발전소보다 빈번하고 피해도 훨씬 크다”며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은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석유화학산업단지에도 지역자원시설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멘트도 생산·운송 때 발생하는 분진 등으로 지역 주민의 피해가 크다며 생산량 1t당 1000원(40㎏ 1포 기준 40원)의 지역자원시설세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율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2013년 시멘트 공장 인근 지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주민 중 진폐증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판정받은 주민 64명에게 총 6억23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근거로 산정했다.
일부 의원·지자체 “석유·시멘트 세금 더 내야”이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당장 정유 업계는 연간 1800억원가량의 세금을 추가로 물어야 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의 2017년 생산량은 1804억 ℓ였다. 1ℓ에 1원의 세금을 매긴다면 단순 계산해도 1804억원으로, 정유 4사의 최근 4년간 정유 부문 연평균 영업이익(2조1100억원)의 8.5%에 이른다. 시멘트는 2017년 시멘트 7사(쌍용·삼표·한일·성신·한라·현대·아세아시멘트)의 생산량 738만 t 기준으로 약 528억원이다. 이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대개 정유·시멘트 기업이 밀집한 보령·서천, 서산·태안, 여수, 동해·삼척 등지가 지역구다. 한국시멘트협회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비상경영을 통해 정상화에 매진해온 업계의 회생의욕을 꺾어버리는 가혹한 조치”라고 말했다.세수를 늘릴 수 있는 해당 지역 지자체는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 국회는 조속히 지방세법 개정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시멘트 공장이 몰려 있는 제천·단양군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지난 50~60년 간 환경 파괴와 분진 등으로 주민 건강은 물론 해당 지역이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장했다. 단양군 의회는 또 “시멘트 40㎏ 1포에 40원을 과세하는 지역자원시설세는 판매 가격에 1%도 되지 않아 (시멘트 업계가) 부담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환경 민원과 주민 건강 피해 등 각종 외부불경제를 유발하고 있는 시멘트산업에 대해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과세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하지만 부담이 가중되는 해당 기업은 물론 정부 부처도 이중과세 논란이 일 수 있다며 석유·시멘트의 지역자원시설세 부과에 신중한 입장이다. 시멘트는 원료인 석회석에 이미 지역자원시설세가 부과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석회석에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연속된 가공공정을 통해 생산한 최종 상품인 시멘트는 석회석 비중이 90%에 이른다”며 “공산품인 시멘트까지 과세하려는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료에 한 번, 완제품에 또 한 번 과세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철규 의원 측은 “석회석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는 천연자원 채광의 대가로 모든 채광 주체에게 부과하는 세금이고, 시멘트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불경제의 대가로 시멘트 제조사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며 “과세 대상도 다르고, 세금 부과의 취지도 달라 유사한 조세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시멘트협회의 의뢰를 받은 법무법인 태평양은 “과세의 취지 및 목적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과세 대상도 동일한 이중과세”라고 해석했다.석유도 마찬가지다. 휘발유 등 석유 제품에 포함된 유류세에는 이미 환경 개선을 위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중과세금지 등 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 입장을 낸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중과세 문제와 지역 간 불형평성 문제, 부처간 이견이 있는 만큼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세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석유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는 전기·가스요금, 유류비 등 물가상승 요인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위원회도 “조세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유소협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안전 명목으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면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기업에 지역자원 시설세를 부과하면 단기적으로는 기업 부담이 늘지만 결국엔 이 부담이 소비자들에 전가돼 이중삼중의 과세부담이 국민에게 지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해당 기업과 정부 부처는 “이중과세” 반박
▎건설 경기 위축 등으로 2019년 시멘트 출하량은 2018년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사진은 삼척시의 한 시멘트공장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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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멘트 등으로 지역자원시설세를 확대하는 것은 지역 안전을 개선한다는 근본적인 명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자원시설세는 특정 자원·부동산 등을 과세 대상으로 하는 만큼 석유 제품이나 시멘트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시멘트 공장이나 천연가스 기지 등이 환경오염이나 안전사고 등을 유발한다는 근거도 없다. 국회가 제시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2013년 결정은 대법원에서 시멘트 업계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최종 판결이 난 사안이다. 산자부는 “천연가스 기지는 환경친화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안전 관리 비용도 한국가스공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업계는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의 경우 이미 감당해야 할 세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2019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연간 230억원)과 질소산화물(NOx) 배출 부과금(연간 650억원)도 내야 한다. 2020년 시행될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300억원)도 시멘트사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특히 NOx는 선택적촉매환원설비(SNCR)을 설치해도 더는 기술적으로 감축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한 대형 시멘트회사 관계자는 “시멘트 업계의 지난 10년 간 연평균 순이익이 400억원 선인데, 매년 500억 원대의 세금을 더 내라는 건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업계의 상황도 썩 좋지 않다.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올해 주요 업체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다. 내년에도 같은 이유로 시멘트 출하량이 올해보다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정유 업계도 마찬가지다. 정유 4사가 3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지만 불과 2014년만 해도 4사의 영업적자는 1조4000억원, 당기순손실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업황에 따라 수익성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추가 세금 부담은 고용 위축 등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세수 확보를 위해 지역경제의 버팀목인 기업을 고사 위기로 내모는 것으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7대 시멘트사만 해도 강원 동해·삼척·강릉·영월, 충북 단양·제천 등지에서 현지 인력 25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공장과 거래 중인 지방협력사 인원도 대략 6000∼7000명으로 추정된다. 시멘트공장이 약 1만여 명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유동인구 유입’ 등의 부수적 효과까지 감안하면 지역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는 그러나 “기업이 힘들어지면 인력 감축은 자명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내년 초 개정안 상정 가능성 커이 같은 논란 등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역자원시설세에 대한 논의를 일단 내년으로 미뤘다. 행정안전부는 개정안에 적극 찬성하고 있으나, 산자부가 업계 부담과 반발 등으로 법 개정 자체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11월 법안소위 측이 내년 3월까지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법안소위 소속 의원 대부분이 산자부에 법 개정 반대 자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내년 3월부터는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법안소위는 내년 3월 행안부와 산자부의 절충안을 심사한 후 법 개정안을 4월 열리는 전체회의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지역자원시설세 확대를 당론으로 정한만큼 지방세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박스기사] 지역자원시설세가 뭐길래 - 세원 늘리려는 지자체와 기업 간 갈등 불씨지역자원시설세 때문에 기업과 정치권·지자체가 갈등을 빚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가 2010년 종전의 지역개발세와 공동시설세를 묶어 지역자원시설세로 통합하기 이전부터 지역 세수를 늘리려는 정치권·지자체와 기업 간 갈등이 적지 않게 벌어졌다. 지역자원개발세 중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지역개발세다. 지역개발세는 소방시설·오물처리시설 등 과세 대상이 부동산인 공공시설세와 달리 지하수 등 각종 자원을 이용하는 특정 기업이 과세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지자체의 실질적 수입원이다보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현재 이 세금은 발전용수(수력발전)와 지하수, 지하자원, 컨테이너(항만 무역), 원자력발전, 화력발전 등 6개 분야 기업인데 수력발전은 1992년, 원자력발전은 2006년, 화력발전은 2011년 등 업종마다 지역개발세 도입 시기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대상이냐 아니냐를 두고 기업과 정치권·지자체가 논란을 벌이다 과세 대상이 된 시기가 제각각인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주시 등 지자체 3곳과 지역개발세 납부 여부를 두고 5년여 간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