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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소매 플랫폼으로 떠오른 편의점] 은행·빨래방·택배 삼키는 ‘21세기 만물상’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아마존·알리바바 등 온라인마켓 기업도 진출 활발… 일본 대형 은행은 지점 줄줄이 폐쇄하고 인력 감축

▎일본 편의점들은 세탁이나 우편물 발송, 프린트 등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미래 소매 유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 사진:김유경 기자
최근 편의점 업계 4위 미니스톱 인수를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유력 인수 후보인 롯데는 기존 세븐일레븐에 미니스톱을 더해 CU·GS25와 3강 구도를 형성할 포석이다. 다만 국내 편의점산업 경쟁 환경은 여의치 않다. 이미 전국 점포 수가 2011년 2만개에서 4만개로 늘어나는 등 과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점포 수가 5만6000개로 한국보다 37% 많다. 그러나 일본 인구가 한국보다 2.4배 많고 영토도 4배가량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편의점 밀도는 한국이 훨씬 높은 셈이다. 최근에는 가맹점주의 수익성 악화 등 문제로 편의점 과밀 해소 필요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런 데도 미니스톱의 몸값이 높은 배경은 뭘까.

앞으로 온라인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 확산으로 오프라인 유통 체제는 더욱 흔들릴 전망이다. 그러나 생활 편의시설로써 편의점의 입지는 탄탄해질 수 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이나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네트워크를 구축한 편의점은 현금 인출, 택배, 의약품 판매 등 오프라인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일의 단일 창구 기능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21세기 만물상’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일본 편의점 ATM 수 은행보다 많아


이런 기류는 편의점 왕국인 일본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금융업과의 협업이 가장 활발하다. 일본에 1만3000대의 현금 자동입출금기(ATM)를 가진 대형 편의점 프렌차이즈 로손은 ‘로손은행’을 출범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편의점 ATM을 통해 통장 개설, 예금 등 금융상품 판매와 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편의점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편의점 상품 할인 판매도 검토 중이다.

일본 편의점 업계 1위 세븐일레븐은 2001년 ‘세븐은행’을 설립해 일찌감치 금융업에 진출했다. 세븐은행은 현재 600여 개 금융회사와 제휴를 맺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TM 이용수수료가 전체 수익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이온은행’을 만든 수퍼마켓 업체 이온 역시 6200대의 ATM을 운영하며 신용카드 발급, 주택담보대출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편의점의 영역 확대는 시중은행 영업점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지점 500여 개 중 100여 개를 폐쇄하고 10년간 1만9000명을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도 지난해 9월 9600명을 줄인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편의점 ATM를 이용하면 굳이 은행 영업점을 찾지 않아도 현금을 인출할 수 있어 은행들도 비대면 채널을 확충하고 있다”며 “일부 지점은 지난 10년 간 내방 고객이 20%나 줄어든 곳도 있다”고 전했다.

편의점이 은행 영업점을 대체하는 현상은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 등 국내 6대 은행이 전국 편의점에 설치한 ATM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3만3583대였다. 각 은행 영업점 ATM 3만3260대보다 323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이 개별적으로 설치한 무인화 점포도 줄어드는 추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이 지난 5년 간 없앤 무인자동화기기의 수는 7451개에 달한다.

일본 편의점들은 빨래방과 공유자전거 시스템, 무인택배 등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패밀리마트는 지난해부터 ‘24시간 빨래방(코인 론드리)’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해 2019년까지 500여 개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세븐일레븐은 올해 말까지 1000여 개 매장에 5000여 대의 자전거를 배치해 공유자전거 서비스를 펼치고, 로손은 전자상거래 업체 라쿠텐과 함께 드론을 활용한 택배 배송 사업을 실험 중이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도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카르티에 편의점’을 기간 한정으로 열고, 고급 브랜드의 편의점 판매 가능성을 시험한 바 있다.

중국에서도 편의점산업이 질적·양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편의점 수는 10만개를 돌파했고, 전체 편의점 매출도 1900억 위안(약 3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한국·일본에 비하면 제공되는 상품의 종류나 서비스는 떨어지지만 물류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는 한편, 페이 기반 지급결제 시스템, 소비패턴 분석 등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알리바바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편의점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소비자가 고른 물건을 들고 결제 구간을 지나가면 알리페이를 통해 결제되는 자동 결제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편의점 등 유통 업체의 가장 큰 고민인 인건비 감축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지난해 편의점에서 비처방 약 판매 허용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이런 결제 시스템을 갖춘 무인 편의점 ‘아마존고’(Amazon Go)를 내놨다. 아마존은 올해까지 미국 내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마존 고 매장을 5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2021년까지는 30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편의점들도 NTT 도코모 등 이동통신사들과 손을 잡고 올해부터 종업원 없는 무인 편의점을 확대하는 한편, 캐시리스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다. 각국 정부가 족쇄를 풀어준 점도 편의점산업의 변화를 촉진했다. 중국 정부의 경우 지난해 10월 편의점 발전 방안을 통해 비처방 약 판매를 허용했고, 신선채소와 아침식사 메뉴 등을 판매하는 매장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제공 가능한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의 편의점산업 규모는 2017년 기준 23조원. 한국보다 편의점 수가 37% 많은 일본이 2014년 100조원을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아직 시장 규모는 작은 편이다. 앞으로 매출 신장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에 국내 편의점들도 도시락·커피 등 취급 상품 수를 늘리는 한편 ATM 등 수수료 기반 수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으로써 자리매김에도 나섰다. 대형 편의점 프렌차이즈 관계자는 “최저수익보장 등 편의점주들과의 상생구조를 지키며 안면인식 기술을 통한 출입 통제, 결제 등 시스템 선진화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일부 기술을 순차적으로 매장에 적용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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