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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美 증시, 횡보 후 박스권 가능성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무역전쟁 등 이벤트보다 경기·실적 영향 커질 듯… 국내 증시 저가 메리트 사라져

▎미국 뉴욕의 월가에 자리한 뉴욕증권거래소. / 사진:© gettyimagesbank
해가 바뀌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미국 S&P500지수가 지난해 2510으로 끝난 이후 10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우리 시장 역시 2000을 위협받던 단계를 지나 2100을 바라보는 상황이 됐다. 시장에서는 주가 상승 이유로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 약화와 미·중 무역분쟁 해결 가능성을 꼽고 있다.

연준이 정책 강도를 낮출지 모른다는 기대는 지난해 말부터 있었다. 지난해 12월 금리 인상 전에 미국 행정부가 무리하게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런 견해가 나름 지지를 얻기도 했다. 경제 상황도 이런 견해에 힘을 실어줬다. 실업률이 3%대 중반으로 떨어졌지만 아직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덕분에 물가상승률이 연준이 목표로 하는 2%를 벗어나지 않아 전통적 시각으로 보면 굳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금융시장도 가세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주가 하락이 멈추지 않더니 연말에는 최고점 대비 20% 가까운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미 미국 주식시장이 조정을 넘어 침체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때문인지 연준이 12월에 금리를 올리면서 올해 인상 횟수를 3회에서 2회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다.

금리 인상 조절 효과도 제한적

올해 연준이 금리를 두 번 인상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미국의 전미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54.1로 11월에 기록했던 59.3은 물론 시장의 예상치 57.9를 크게 밑돌았다. 2016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월간 하락폭 5.2 역시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의 9.0 이후 최대치다. 과거에도 설문조사 지표의 방향이 바뀌고 나서 실물지표의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둔화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수하기 힘들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면 주가가 상승할까? 최근에 시장이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미 미국 시장의 초점이 금리에서 경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줄이겠다고 얘기했음에도 주가 하락이 멈추지 않았다. 미국 경제가 당초 얘기했던 3번의 금리 인상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나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따른 효과는 한계가 있다.

이런 반응은 이미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7%로 하락했다. 지난해 중반에는 3.1%에 근접했었다.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시장은 추가 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주가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금리 인상이 수차례 이어져 경기가 꺾이기 시작하는 즈음에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시장은 경기와 기업 실적 둔화에 시달렸는데 그 영향 때문에 금리가 오르지 않더라도 주가가 하락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4분기 주가 하락으로 10년에 걸친 미국의 대세 상승이 타격을 받았다. 대세 상승 와중에 20% 가까운 하락이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락으로 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주가 시나리오는 두 개다. 하나는 대세 하락으로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 폭 하락한 후 횡보하는 형태다. 2000년이 앞의 경우였다면 과거 많은 미국의 주가 하락은 뒤의 경우였다. 이번에도 일정 폭 하락 후 박스권을 만드는 형태가 될 걸로 전망된다. 2000년에 비해 마지막 주가 상승이 약했고 과거보다 기업 실적 등 펀더멘털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분기 주가 하락에도 대세 하락이 시작된 것 같지는 않다. 당분간 반등이 진행될 걸로 보이는데 그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90일 간 휴전에 합의한 이후 무역분쟁의 성격이 일방적 악재에서 보통 재료로 변했다. 1차 협상 과정에 주가가 오르는 등 호재로서 역할도 일부 하고 있다. 앞으로 재료로서 무역분쟁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해질 것이다.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관계없다. 협상이 잘 되더라도 지난해 12월 이후 주가 상승 과정에 타협 가능성의 상당 부분이 반영됐기 때문에 며칠을 제외하고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타협에 실패하더라도 10월 이전 논쟁 과정에서 최악의 제재 방안이 거론됐기 때문에 더 영향을 받을 부분이 없다. 결렬 이후 파국이 오기보다 추가 협상이 진행되면서 사안이 장기화되는 것도 영향력을 줄이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주가는 변화를 미리 반영해 움직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재료가 주가에 미치는 효과는 영향력이 정점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무역분쟁도 그런 예가 될 걸로 전망된다.

현재 예상으로 무역분쟁은 결렬보다 타협점을 찾을 걸로 생각된다. 지금 중국 경제의 위상은 1980년대 일본과 다르다. 당시 일본은 경제 규모만 미국보다 작을 뿐 여러 면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분쟁의 직접 발화점인 무역이 그랬고 1988년에 세계 시가총액 50위 기업 중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는 점이나 일본이 인구가 5000만 명을 넘는 나라 중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국가라는 점도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부분이었다. 지금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이 미국 기업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던 반면 중국은 값싼 소비재 공급을 통해 미국 가계의 소비를 돕고 있다. 생산하는 물건 중 미국 제품을 보완해 주는 게 대부분이고 경쟁 관계에 있는 건 거의 없다. 중국과 무역분쟁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도 편할 수만은 없으므로 분쟁보다 타협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 일방적 악재에서 보통 재료로 변해

주가는 무역분쟁이나 금리 인하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경기와 기업 실적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 부분이 좋지 않다. 올해 미국 기업의 이익이 6.8% 증가할 걸로 전망되고 있다. 10월 예상치 10.2%보다 낮아졌다. 이 숫자조차 지켜질지 의문이다. 최근 애플을 비롯한 미국 대표 기업의 이익이 계속 둔화되고 있다. IT기업도 비슷한데 올해 3분기까지 이익이 정체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걸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시장이 경기와 기업 실적이란 기초요인에 걸려 힘을 쓰지 못할 경우 우리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두 달 간 우리 시장은 뛰어난 지수 방어력을 보였다. 미국 시장이 13% 넘게 하락하는 와중에도 2000선을 지켜냈다. 주가가 먼저 하락한 영향이 큰 데, 최근 주가 상승으로 저가 메리트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자체 힘으로 상승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 약화를 감안할 때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낮은 가격이 하락을 막지만 펀더멘털로 인해 상승이 제어되고 있는 상황이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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