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애플·도요타가 배터리 개발에 힘 쏟는 까닭은] 초연결사회 대비 독자 기술 필요성 커져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합작사 세우고 배타적 협력 강화 움직임… 배터리 원자재 조달 능력도 핵심 경쟁력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무선충전 도로 위에서 충전하는 전기차 프로젝트를 시험하고 있다. / 사진:르노자동차 제공
글로벌 전자·자동차 회사들이 배터리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의 구축과 차세대 스마트 디바이스 보급이 늘면서 전용 배터리 기술의 필요성이 커져서다. 그간 배터리 전문 제조사로부터 맞춤형 제품을 납품 받았으나, 통신 환경과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독자 기술을 내재화하려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애플은 삼성SDI 안순호 전무를 배터리 개발 부문 책임자로 지난해 12월 임명했다. 안 전 전무는 2015년부터 삼성SDI에서 근무했으며, 이전에는 LG화학 배터리연구소 연구위원(상무)으로 일한 배터리 분야 권위자다. 삼성SDI 재직 당시 리튬 배터리팩 개발과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아이폰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의 고위 임원을 영입한 것은 차세대 배터리 연구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는 “제조사마다 스마트폰의 기술과 기능의 차별성이 비슷비슷해졌다”며 “배터리 수명·성능 같은 차별화 포인트가 중요해졌으며, 애플은 이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가져가려 한다”고 분석했다.

통신과 디바이스의 변화에 맞춘 기술 필요


세계 자동차 판매 선두권인 일본 도요타도 배터리 분야 1위 파나소닉과 손잡고 내년 중에 배터리 합작사를 세우며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다. 지분 비율은 도요타 51%, 파나소닉 49%다. 파나소닉이 테슬라와 합작 운영하는 미국 공장을 제외한 일본·중국 공장 5개 모두 합작사 소속으로 바뀐다. 두 회사는 현재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실리는 배터리의 50배 용량인 순수전기차(EV) 배터리를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합작사는 도요타는 물론 마쓰다·다이하쓰·스바루 등 완성차 제조사의 배터리 공급을 도맡을 전망이다. 두 회사는 차세대 배터리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이처럼 전자·자동차 분야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배터리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기술 트렌드의 변화 때문이다. 초연결사회의 미래상은 사람이 네트워크에 접속해 다른 사람이나 스마트 디바이스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상을 그린다. 아침에 일어나 인공지능(AI)이 고른 뉴스를 접하고 자율주행차로 출근하며, 증강현실(AR)에 접속해 업무를 보는 식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인간과 스마트 디바이스 간에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며 최초 아이폰의 홈버튼을 없애려 한 바 있다.

이런 초연결사회가 유지되려면 수많은 스마트 디바이스와 통신 중계기, 서버 등이 항상 온라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꺼지지 않는 전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스마트 디바이스의 이동성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무선 충전 등 배터리 부문의 기술 혁신도 필요하다. 배터리가 용량을 늘리고, 크기는 더욱 작아져야 하며, 교체가 필요 없게 수명도 길어야 한다. 디바이스의 발열량과 적정 전압 등이 다르기 때문에 기기마다 맞춤형 배터리를 생산해야 한다. 배터리는 과거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 요구를 받고 있으며, 이를 생산하기 위한 독자 기술 개발의 필요성도 커진 셈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재는 배터리의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용량과 충전 속도를 높이는 데 기술 개발의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앞으로는 통신과 디바이스의 변화에 맞춘 기술이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모바일 월드콩그레스(MWC)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5G 스마트폰을 공개할 예정인데, 발열을 줄이면서 배터리 용량을 4000mAh로 늘린 점을 강조하고 있다.

5G 통신망을 사용한 무선 충전 등 새로운 충전 기술도 주목 받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에 많이 사용되는 무선 충전 기술은 충전 패드에 전류를 흘려 스마트폰 코일에 유도 전류가 발생해 충전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외부로부터 발생한 특정 진동의 진폭 에너지를 사용해 원거리 무선 충전을 하는 자기공명식 무선 충전 기술도 주목 받고 있다. 5G 주파수를 이용해 여러 대의 스마트 디바이스가 무선 충전을 할 수 있어서다. 커피숍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망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충전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미 BMW는 주차장의 여러 대 전기차가 무선 충전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마친 상태다. 정부도 소형 전기차 주차 중 무선 충전이 가능하도록 5G 주파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미국·이스라엘·프랑스 등은 전기차가 달리는 동안 스스로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무선 충전 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차량 간 전기를 나눠 쓸 수 있는 기술도 포함돼 있다. 무선 충전 기술과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앞으로 배터리 기술은 축적할 수 있는 양보다는 충전 속도와 수명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기공명식 무선 충전 방식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유해성 논란은 넘어야 할 과제다.

이런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상용화 되면 제품의 부가가치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기차에 쓰이는 배터리 등 전장 부품 부가가치 비중은 자동차 가격의 70%가 넘는다. 배터리 부문에서의 기술 진보는 전기차는 물론 스마트폰·VR 등 스마트 디바이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자·자동차 회사들이 부가가치를 나누기 위해 배터리 제조사와 협력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배터리 제조사로서는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특히 중국의 전기차 회사 및 배터리 제조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이를 견제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도요타와 파나소닉의 합작사 설립처럼 삼성SDI·LG화학·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도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완성차 회사와 협력 강화가 나타날 수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폴크스바겐과 기가팩토리 합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애플이 배터리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부품 외부 의존도를 줄여가기 시작한 것도 기술 장벽을 높이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배터리 관련 제품 부가가치 커질 전망

배터리 기술의 발전은 연관 사물인터넷(IoT) 기기의 기술 발전과 보급을 확산할 것으로도 보인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0년 이후 리튬에어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가 부각될 가능성이 큰데,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과 더불어 늘어나는 배터리 수요에 발맞춰 원자재를 얼마 만큼 잘 조달하느냐도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배터리팩의 핵심 원료인 코발트를 일부 광산 업체로부터 직접 구입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원자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성동원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앞으로 정보의 전달과 물리적 구현에 맞는 핵심 부품에 대한 광물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핵심 광물자원의 수요 증가에 맞춘 안정적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북한에 매장된 전체 광물자원 가치는 3조~4조 달러에 달한다”며 “남북이 기술과 자원을 결합하면 희토류 등 희소 자원에 대한 산업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1472호 (2019.02.2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