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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엇갈린 한·일 위스키 시장] 바보야, 문제는 알코올 도수야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국내 출고량 절반으로 준 사이 일본은 배로 늘어… 저도수 주류 소비 트렌드가 결정적 영향
한국은 울고 있고, 일본은 다시 웃고 있다. 세계적으로 고급 주류(酒類)의 대명사로 통하는 위스키 시장 얘기다. 국제주류연구소(IWSR)에 따르면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008년 약 286만 상자(이하 모두 1상자 9리터 기준)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 2017년 약 159만 상자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9년 간 출고량이 44.5%나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는 이보다 적은 149만 상자가 출고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와 달리 일본의 위스키 출고량은 같은 기간 약 835만 상자에서 약 1780만 상자로 배로 늘었다. 앞서 일본은 1990년 위스키가 2364만 상자나 출고될 정도로 잘 알려진 위스키 애호국가였다. 아직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반등에는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국산 위스키 상징 ‘임페리얼’ 판권 매각


▎일본 위스키 시장의 반등을 이끈 산토리 ‘하이볼’ 칵테일. 국내 주류 업계도 소비 트렌드의 급변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신(新)무기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다.
일본과 달리 국내 주류 업계는 위스키 수요 급감 여파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류 업체인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장투불 대표가 지난 1월 22일 임직원 앞에서 “이대로라면 18개월 안에 적자가 날 것”이라며 “위스키 브랜드 ‘임페리얼’의 판권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 생존을 위해 정규 직원을 100명 이상 줄이겠다”고 덧붙였다. 임페리얼은 1994년 출시된 국산 브랜드로 한때 국내 위스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위스키였다. 출시 당시 국내 최초 12년산 프리미엄 위스키로서 “한국인의 음용 습관을 고려한 블렌딩(혼합)으로 한국인이 선호하는 맛과 향을 지녔다”는 평이 뒤따랐다. 지금도 ‘윈저’와 ‘골든블루’에 이은 점유율 3위다.

그런 만큼 업계는 임페리얼 판권 매각을 국내 위스키 시장 위기의 상징적인 결과물로 해석하고 있다. 임페리얼 판매는 오는 3월부터 다른 주류 업체인 드링스인터내셔널이 맡게 됐다. 주로 보리맥아와 호밀 등의 곡류를 원료로 한 증류주인 위스키는 영미권에서 발달해 세계 경제 성장을 등에 업고 범지구적 인기를 끌었다. 통상 다른 증류주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이지만, 그 사이 세계적으로 급증한 중산층 이상 소비자 사이에서 특유의 맛과 향이 통해서였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 위스키 시장의 최근 엇갈린 희비는 단순히 한국 경기가 침체되고 일본 경기는 회복세를 보이면서 일어난 현상일까. 물론 경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다른 요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주류 소비 트렌드의 급변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알코올 도수(度數)가 40도 이상으로 ‘독한’ 술인 위스키는 회식보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폭음(暴飮)보다 ‘웰빙(well-being)’을 중시하며 고도수 술을 즐기지 않는 세대로 (주류의) 주요 소비층이 바뀌면서 인기가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술을 마시더라도 일상에 지장이 없는 저도수의 ‘순한’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주요 소비층 사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의 주류 구매량은 전년 대비 약 17%, 주류 구매액은 약 15% 각각 증가했다. 불경기라고 술을 덜 마시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와인 매출은 매년 늘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와인 매출 신장률이 연평균 20%대를 유지(21.5%→20.5%→18.2%→22.7%)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런 수치들은 위스키의 부진이 불경기보다는 소비 트렌드 변화와 더 관련이 깊음을 보여준다. 와인의 경우 위스키만큼 고가 제품이 많으며, 12~15도 정도로 위스키보다 상대적으로 저도수다. 실제로 같은 위스키 시장 내에서도 30도대의 저도수 위스키는 수년 간 일반 위스키 대비 국내 성장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 간 국내 위스키 시장 규모가 5.4% 감소한 사이 저도수 위스키 시장 규모는 오히려 25.5%나 성장했다. 40도 이상 위스키 판매량은 2017년에만 전년 대비 20.7% 급감했다. 결국 저도수 위스키가 있어 그나마 전체 위스키 시장의 추락이 최대한 억제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위스키 시장의 반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앞서 일본의 대표 주류 업체 중 하나이자 최대 위스키 제조사인 산토리는 자국 위스키 시장의 계속된 추락과 주류 소비 트렌드 변화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산토리는 연구·개발 끝에 ‘하이볼’이라는 신개념 칵테일을 선보여, 2000년대 중후반부터 내수 시장에서 대대적인 판촉 영업에 나섰다. 하이볼은 이 회사가 만든 위스키에 소다수나 콜라 등을 타서 섞어 자연스레 저도수 술로 마실 수 있도록 한 기획 제품이다. 청량감이 가미된 저도수 위스키 칵테일인 셈이다. 이 하이볼이 일본 내 주류의 새로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급감하던 위스키 수요도 기적적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저도수 술을 즐기는 소비 트렌드 변화는 이미 한국과 일본만의 얘기가 아닌 세계적 추세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월 18일(현지시간) “술을 절제하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젊은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WSR은 지난해 미국인의 술 소비량이 전년 대비 0.8% 감소했다고 밝히면서 미국 내 저(低)알코올 및 무(無)알코올 주류 시장이 2022년까지 32.1%가량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위스키 업계가 저도수 제품 개발과 출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물론, 맥주 업계나 보드카 업계도 좀 더 순한 술을 선보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토리처럼 ‘흐름’을 일찌감치 읽어낸 기업일수록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산토리는 최근 하이볼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법인을 만들어 국내 시장에 전격 진출하는 한편, 맥주의 대체재로 하이볼을 부각시키면서 동남아 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 주요 6개국 주류 시장에선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기준 70.3%로 감소세인 반면 와인 등 다른 주류는 29.7%까지 증가세를 보였다. 일본 내에서는 하이볼이 이미 맥주의 대체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면서 맥주 소비량 역시 10년 넘게 계속 줄고 있다

국내 전체 주류 소비량은 늘어


이 같은 사례는 침체된 국내 위스키 시장과 관련 업계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국내외 주류 문화를 연구하는 명욱 칼럼니스트는 “일본 위스키의 성공은 철학 있는 기업과 기술자의 존재, 독주(毒酒)라는 이유로 위스키를 기피하던 소비층에게 위스키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준 것, 이를 신뢰한 소비층의 존재 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결과물”이라고 했다.

한국 주류 업계도 바뀐 소비 트렌드에 부응하되 전에 없던 차별화한 새 제품 개발과 이에 걸맞은 마케팅 전략 수립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일단 업계는 하이트진로가 국내 최저도수인 33도짜리 위스키 ‘더클래스 1933’과 ‘더클래스 33’을 지난해 출시하는 등, 저도수 위스키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부 업체는 1인 가구 소비자 급증을 고려, 국내 편의점 등으로 유통 경로도 다양화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하이볼 같은 킬러 콘텐트의 출현이다.

1472호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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