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미세먼지, 4원소, 그리고 대한민국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 1. 1970년대 후반에 활약한 캔자스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이 있다. 이들의 히트곡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노래는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다. 당시 성황이었던 음악다방마다 이 노래가 나왔다. 곡 제목을 번역하자면 ‘바람 속의 먼지’쯤 되겠다. 1998년 영국의 유명 팝페라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리메이크해서 불러 다시 인기를 모았다. 이 록 그룹의 기타리스트였던 케리 리브그렌이 작사·작곡한 이 곡은 가사내용이 참 허무적인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잠깐만 눈을 감지만 그 순간도 지나가죠. 내 모든 꿈은 내 눈 앞에서 지나가죠. 호기심과 함께요. 바람 속의 먼지, 우리 모두는 바람 속의 먼지예요. 늘 똑같은 지루한 노래고요, 끝없는 바다 속의 물 한 방울일 뿐이에요. 우리가 하는 것들은 모두 땅으로 무너져 내리지요. 우리가 직시하길 거부하지만요.’ 이 곡은 원래 성경의 ‘전도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전도서 3장 20절은 ‘모두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먼지(흙)에서 나왔고, 모든 것은 먼지(흙)로 돌아가리라’라고 되어 있다.

# 2.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로 알카에다 조직의 테러리스트들이 민간 여객기 4대를 납치했다. 그중 2대가 당시 뉴욕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을 각각 들이받았다. 빌딩에 있던 사람들과 이들을 구하러 출동한 소방관·경찰관이 건물 붕괴로 3000명 정도가 사망했고, 약 600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이 테러의 피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은 것 같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먼지도 발생했는데 100마일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지난해 8월에 뉴욕포스트라는 로컬 신문에 9·11 테러의 후유증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지난 2010년 연방법에 따라 9·11 희생자들의 건강을 살펴줄 목적으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 헬스 프로그램’이란 공익단체가 설립됐다. 이 단체에 따르면 약 1만 명 정도가 당시 건물 잔해에서 나온 독성 먼지 때문에 암 등의 질환에 걸렸고, 그중 1000명 이상이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암의 잠복기가 길어 10~20년 후에도 발병한 경우가 꽤 있어 당시 분진 속에서 구호나 복구 활동을 벌였던 사람들에게 증세가 한참 후에 나타난 것이다.

# 3. BC 5세기경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四元素說)’을 제창했다. 흙·공기·불·물이 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 원소라는 것이다. 이 4원소설은 먼 훗날인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과학자 멘델레예프가 63개 원소를 기록한 ‘주기율표’를 만들기 전까지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정설로 여겨졌다고 한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도 완벽한 것이 아니어서 20세기 들어서야 118개 원소를 담은 주기율표가 정착됐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생활은 미세먼지로 시달리는 지경을 넘어서 위기상태로 치닫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삼한사온’ 대신에 ‘삼한사미’라는 말이 일반화되더니 얼마 전에는 미세먼지가 열흘 가까이 이어졌다. 공기 맑기로 으뜸가는 강원도 산골에서도 푸른 하늘을 보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앞서 언급한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던 윈드’는 단지 허무의 상징이 아니라 9·11 테러의 먼지처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 국민의 삶은 미세먼지 때문에만 힘든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자초형 불황’은 차치하고라도 안보 불안도 크다. 지난 2월 말 열린 미국과 북한 간의 핵 담판은 결국 결렬로 끝났다. 가까운 장래에도 회담의 동력이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북핵을 고스란히 이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일 것이다. 더구나 ‘판문점 군사합의’ 이후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에 따른 방어력 약화,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취소에서 오는 안보 불안도 고스란히 ‘남쪽’ 백성의 몫이다.

4대강을 둘러싸고 생기는 논란도 4대강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얼마 전 금강과 영산강 5개 보 중 3개를 해체하고 나머지 2개는 상시 개방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보 해체와 존치의 경우에 각각의 편익과 비용을 계산한 나름대로의 ‘과학적’ 분석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 이후 보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강한 반발은 논외로 치고, 분석 자체가 ‘과학적으로’ 옳으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이 나라가 직면한 이들 현안은 자꾸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 그와 관련된 정부의 책임론을 생각나게 한다. ‘공기’의 흐름인 바람을 타고 ‘흙’이 가벼워져 생긴 먼지가 날아다니는 것이 미세먼지인데, 이는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 적어도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 정설이고 심한 날에는 80% 이상이란다. 산업화로 발생한 중금속이 미세먼지에 섞여 날아오는 데다, 중국 동부 해안가 도처에 세워지는 쓰레기 소각장, 화력발전소에서 나온 먼지는 온전히 대한민국의 것이다. 심지어 중국은 석탄 화력발전소를 2, 3년 내 464기를 더 짓고, 이 중 상당수는 동부 지역에 지을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책임론도 거세다. 그간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항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더니 국민여론에 밀려 최근에야 약간 목소리를 높이는 양상이다. 현 정부 출범 시점부터 중국에 ‘결기 있게’ 항의를 해댔다면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으리라는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탈원전’ 명분으로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늘렸고, 앞으로도 원전 대신 화력발전소를 20기 이상 더 늘린다고 한다. 요즘 화력발전소가 많은 충남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공기가 나쁜 날에는 차라리 서울로 온다는 말도 한다. 중국이나 우리 자체의 ‘불’이 먼지를 생성하는 주범인 것이다.

북한의 핵은 최고의 ‘불’이다. 현 정부의 유화책 탓에 북한에 ‘믿는 구석’을 제공해 오히려 핵폐기 의지를 약화시킨 결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4대강의 보를 개방하면서 줄어든 ‘물’로 생긴 먼지도 무시할 수 있을까? 지난해 여름 세종보 개방으로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강바닥이 드러났고 시원한 강바람이 사라져 사상 최악의 폭염을 더 심화시켰다는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 먼지를 흡착하는 물이 줄어들면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이치일 것이다.

결국 경제 문제를 빼고 대한민국 환경과 안보의 당면 문제는 ‘4원소’와 관련된 문제다. 헌데 엠페도클레스는 이들 4대 원소가 조화롭게(제대로) 결합하거나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힘은 ‘사랑’과 ‘미움(또는 다툼)’이라고 했다. 그가 맞는다면 미세먼지, 북핵, 보 해체 등의 불안 요소는 현 정부의 지나친 사랑이나 미움이 초래한 것이 아닐까 돌아볼 일이다. 과다해 보이는 북한 껴안기와 중국 편향, 원전 혐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과거 정부에 대한 미움 등이 현 정부의 특징인 것이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은 이 정부의 ‘적정하고 올바른’ 사랑과 미움일 것이라고 말한다면 억지일까?

1476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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