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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없는 EU 탈퇴 반대’ 안건은 하원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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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국민투표 실시’ 의원 수정안은 부결이날 영국 하원은 ‘EU 탈퇴 시점을 늦춘 후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의원 수정안도 표결에 붙였지만 찬성 85표, 반대 334표로 249표차 부결했다. 보수당에서 탈당해 독자 그룹으로 활동 중인 세라 울러스턴 의원이 제안한 수정안이다. 이 표결은 영국 하원에서 국민투표를 다시 열자는 그룹이 얼마나 열세인지를 보여준다.이에 따라 메이 내각은 3월 20일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을 제3차 승인투표에 붙인 후 그 결과에 맞춰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게 된다. 영국을 제외한 EU 27개 회원국이 이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면 브렉시트 시점은 공식적으로 늦춰지게 된다. EU는 3월 21~22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이 안건을 다루게 된다.그렇다면 앞으로 영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이 가진 선택지는 7가지나 된다. ‘합의 없는 이탈’ ‘총리의 협상안에 대한 추가 투표’ ‘재협상’ ‘국민투표 재실시’ ‘의회 해산과 총선’ ‘불신임안 투표’ ‘브렉시트 중지’ 등이 그것이다. 가능성을 하나하나 살펴보자.우선, 탈퇴 시기를 미루고도 합의 없는 이탈을 하게 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이 탈퇴 시기를 당초 예정했던 2019년 3월 29일보다 더 뒤로 미루기로 표결했지만, 시기를 미룬다고 해서 ‘합의 없는 이탈’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탈퇴 시기를 미뤄서 시간을 벌었어도 그동안에 영국 정부와 EU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 결과가 현재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은 다수의 찬성으로 ‘합의 없는 이탈’에 반대했지만, 합의 있는 이탈을 하려면 뭔가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의 이혼’을 하자고 결의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이를 위해 뭔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다음으로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대해 영국 의회가 추가 표결을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해서 마련한 합의안을 의회가 통과시키는 방안이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일부 보충에도 이미 두 차례나 하원에서 거부했다. 하지만 영국 하원의 운영을 총괄하는 하원의장이 허락만 한다면 메이 총리는 합의안을 다시 표결에 붙일 수 있다. 표결에 붙이지 못한다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결은 심지어 탈퇴 시기를 연장하지 않고도 가능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브렉시트 시한을 약간만 연장한 후 합의안을 표결로 통과시킬 수도 있고, 합의안을 거부하고 시한을 좀 더 길게 연장할 수도 있다. 의회가 세 번째 표결에서 합의안을 통과하고 탈퇴 시기를 좀 더 뒤로 미루는 방법도 있다.주요 쟁점에 대한 재협상도 생각할 수 있다. 메이 총리의 정부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브렉시트 협상안을 제안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EU가 받아들이느냐 여부다. EU는 재협상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영국이 완전히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올 경우 EU가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추진하려면 영국 의회는 메이 총리의 기존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고 하원 표결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메이 총리는 이를 바탕으로 EU와 협상할 수 있다. EU가 기존의 입장대로 재협상을 거부하면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럴 경우 영국 정부는 ‘합의 없는 이탈’ ‘총선’ ‘총리와 내각 불신임안 투표’ ‘새 국민투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EU가 기존 입장을 바꿔 재협상을 하게 하려면 영국은 상당히 새로우면서 EU를 설득할 수 있는 새 협상안을 내놓을 수박에 없다. 그중 하나로 ‘노르웨이 모델’이 거론된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럽경제공동체(EEA)의 회원국으로서 관세 혜택을 누리며 유럽 단일시장에 제한 없이 접근하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 경제적인 손실을 최소화하고 브렉시트를 할 수 있기에 영국이 혹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혜택의 대가로 EU 회원국 국민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957년 3월 25일 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의 6개국이 유럽공동시장 실현과 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발족했다. 1958년 로마조약을 통해 공식 탄생한 EEC는 199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거쳐 유럽공동체(EC)가 됐으며, 다시 2009년 리스본 조약으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 됐다.
경제적 손실 최소화하고 브렉시트 가능하다면?그런데 EEC 설립 초기 이 조직이 프랑스와 독일 주도로 탄생하자 다른 나라들은 이에 대항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1960년 5월 3일 노르웨이는 영국·오스트리아·스웨덴·스위스·덴마크·포르투갈과 함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설립했다. 1970년 아이슬란드에 이어 1986년 핀란드, 1991년에는 리히텐슈타인이 각각 가입했다.하지만 EFTA는 EEC와 그 후신인 EU의 확대에 따라 서서히 축소됐다. 1973년 영국·덴마크가, 1986년 포르투갈이 EEC에 가입하면서 EFTA를 떠났으며 1995년에는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가 EFTA에 작별을 고하고 EU 회원국으로 새 출발을 했다. EFTA는 현재 노르웨이와 함께 아이슬란드·스위스·리히텐슈타인 등 4개 회원국만 남아있다. 노르웨이는 1972년과 1994년 두 차례 EU 가입 신청을 했지만 가입조약안이 국민투표에서 거부돼 비회원국으로 남았다. 내부 정치와 EU의 어업 등에 대한 정책적인 간섭을 두려워한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EU 가입 협상 시작을 놓고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됐다. 리히텐슈타인은 돈세탁 문제 등 금융과 관련한 EU의 규제 가능성을 걱정하고,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 등과 관련한 문제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EFTA는 냉전이 끝난 1994년 EU와 손잡고 유럽경제지역(EEA)을 설립했다. EEA는 자유무역 지역으로 EU의 역내 시장과 동일하게 사람·상품·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 하지만 EEA는 EU의 공통 통상정책을 따를 의무는 없다. EFTA 회원국 등 스위스는 1992년 국민투표로 EEA 협정 비준을 거부해 EEA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는 이처럼 EU와 EFTA 차원에서 설립된 EEA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영국이 이런 노르웨이 모델에 관심을 가질 경제적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동의 자유’다. 바로 ‘이동의 자유’ 규정 때문에 폴란드인을 비롯한 EU 회원국 국민이 영국에 대거 들어온 것이 브렉시트를 촉발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의 저임 노동자들은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며 반감을 나타냈다. 일부에선 ‘이동의 자유’를 악용해 다른 EU 회원국 출신이나 이민자 출신의 테러범이 영국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영국 내부 정치도 문제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인으로서 메이는 자신이 ‘영국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총리’ 또는 ‘영국을 브렉시트라는 진창으로 몰아넣은 못난 지도자’로 몰리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메이 총리가 코너에 몰리고 발목이 잡혀 브렉시트에 따른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보수당도 정국 운영의 책임을 지고 정권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브렉시트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기 때문에 보수당은 오랫동안 정권을 되찾을 기력을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메이 총리가 이런 파국과 역사적인 낙인을 피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 없는 이유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다 그렇게 할 것이다.
노동당이 정권 차지해도 혼란의 책임 져야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도 주목 대상이다. 메이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 총선을 하게 될 경우 정권을 차지하고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별다른 업적이나 기여 없이도 손쉽게 정권과 총리 자리를 얻을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코빈이 브렉시트 과정에서 메이 총리에게 협조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다. 그가 정권을 차지해도 브렉시트 과정에서 보여준 혼돈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어떤 방식이든 브렉시트가 불투명하게 진행되면 시장이 불안해 질 수밖에 없다. 영국 정치계가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할 것인지 관심거리다.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게 될지, 역사적인 정치극의 반전 결말을 보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