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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어디로 가나] 7가지 선택지 중 하나 고를까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합의 없는 이탈부터 브렉시트 중지까지 다양… ‘이동의 자유’ 보장하는 노르웨이 모델도 관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운데)가 3월 1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 2차 투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브렉시트 자체가 불안할 뿐 아니라 이로 가는 과정도 불투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3월은 브렉시트는 ‘폭풍의 언덕’에서 표류한 한 달로 기억될 것이다. 영국 하원은 3월 12~14일(이하 현지시간) 브렉시트와 관련해 연속적으로 3차례나 역사적인 표결을 실시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 내각은 EU와 합의한 탈퇴 협정과 미래 관계 정치선언을 하원에서 승인 받아 애초 예정된 3월 29일 EU에서 탈퇴하려고 했다. 영국은 지난해 제정한 EU 탈퇴법에 따라 탈퇴 협정을 의회가 비준하기 전에 정부와 EU 간의 협상 결과에 대해 하원에서 승인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EU 탈퇴 과정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합의 없는 EU 탈퇴 반대’ 안건은 하원 통과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EU에 잔류하는 가능한 ‘소프트 브렉시트’를 주장해왔다. 메이 총리가 물러나면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의회는 표결에서 합의안의 발목을 잡았다. 메이 영국 총리는 이미 지난해 11월 EU 측과 EU 탈퇴를 위한 협상 결과 585쪽 분량의 EU 탈퇴 협정과 26쪽 분량의 미래 관계 정치선언에 각각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16일 표결에 붙여진 브렉시트 합의안은 찬성 202표, 반대 432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영국 의회 표결에서 정부 안건이 230표 차이로 부결된 것은 의정 사상 최대 규모다. 메이 총리에겐 치욕적인 표결 결과다. 이 합의안은 애초 지난해 12월 하원 표결에 붙이기로 돼 있었으나 메이 총리가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시간을 벌기 위해 1월 16일로 미뤘던 것이어서 충격이 더욱 컸다.

이 합의안은 영국이 애초 예정한 3월 29일 EU에서 탈퇴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21개의 전환 기간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합의안이 부결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주권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의 국경을 둘러싼 ‘안전장치(backstop)’ 부분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은 다른 EU 회원국과는 맞댄 국경이 없지만 아일랜드 섬에선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같은 EU 회원국일 때는 아무런 제약 없이 물자와 인력이 국경을 오갈 수 있었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새롭게 국경 통제 시설을 설치하고 무역 관세를 부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이른바 ‘하드 보더(단단한 국경)’가 불가피해진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와 EU는 이 문제를 매듭짓기 전까지 북아일랜드 지역만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EU로부터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탈퇴하기를 바라는 브렉시트 강경파는 “합의안이 안전장치 종료 시점을 명시하지 않아 영국이 영원히 EU 관세동맹 안에 남아있게 될 수 있다”며 합의안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메이 총리는 3월 11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이 부분만 따로 협의해 ‘안전장치가 무기한 적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아냈다. 메이 총리는 영국이 안전장치 때문에 영원히 관세동맹에 갇히지 않도록 보장하는 법적 문서를 확보하고, 영국이 일방적 종료 권한을 갖도록 하는 보완책에 합의했다.

메이 총리는 이 수정안을 하원에 회부해 3월 12일 2차 승인투표를 실시했지만 표결 결과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부결됐다. 메이 총리가 문제가 된 안전장치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했음에도 표결에서 합의안이 다시 거부당한 이유는 합의안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장관이 메이 총리의 새로운 합의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결과 “영국이 EU 동의 없이 안전장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수단은 없다”라고 발언하자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메이 총리가 소속한 집권당 보수당은 1월 16일의 1차 투표에서 118명이 반대표를 던졌는데 3월 12일의 2차 투표에선 그나마 이보다 적은 7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자 메이 총리는 다음날인 13일 ‘합의 없는 EU 탈퇴 반대’ 안건을 하원 표결에 붙이고 여기에 반대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날 하원 표결에서 ‘하원은 어떤 경우에도 영국이 탈퇴 협정과 미래 관계 정치선언 없이 EU를 떠나는 것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은 찬성 321표, 반대 308표로 통과했다. 겨우 4표 차이의 아슬아슬한 표결이었다.

‘합의 없는 브렉시트 반대’ 안건이 통과되자 메이 총리는 14일 브렉시트 연기안을 표결에 붙였다. 그 결과 영국은 애초 ‘3월 29일 오후 11시’로 예정됐던 브렉시트를 결국 연기하기로 했다. 영국 하원은 14일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EU 탈퇴 시점을 연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 결의안과 의원 수정안을 놓고 표결해 이렇게 결정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내놓은 영국 정부의 연기안은 EU 탈퇴 시점을 ‘3월 20일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에는 6월 30일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그보다 더 뒤로 연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원은 이 정부안을 찬성 412표, 반대 202표로 받아들였으며 표차가 210표에 이르렀다.

‘제2 국민투표 실시’ 의원 수정안은 부결

이날 영국 하원은 ‘EU 탈퇴 시점을 늦춘 후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의원 수정안도 표결에 붙였지만 찬성 85표, 반대 334표로 249표차 부결했다. 보수당에서 탈당해 독자 그룹으로 활동 중인 세라 울러스턴 의원이 제안한 수정안이다. 이 표결은 영국 하원에서 국민투표를 다시 열자는 그룹이 얼마나 열세인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메이 내각은 3월 20일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을 제3차 승인투표에 붙인 후 그 결과에 맞춰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게 된다. 영국을 제외한 EU 27개 회원국이 이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면 브렉시트 시점은 공식적으로 늦춰지게 된다. EU는 3월 21~22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이 안건을 다루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이 가진 선택지는 7가지나 된다. ‘합의 없는 이탈’ ‘총리의 협상안에 대한 추가 투표’ ‘재협상’ ‘국민투표 재실시’ ‘의회 해산과 총선’ ‘불신임안 투표’ ‘브렉시트 중지’ 등이 그것이다. 가능성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탈퇴 시기를 미루고도 합의 없는 이탈을 하게 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이 탈퇴 시기를 당초 예정했던 2019년 3월 29일보다 더 뒤로 미루기로 표결했지만, 시기를 미룬다고 해서 ‘합의 없는 이탈’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탈퇴 시기를 미뤄서 시간을 벌었어도 그동안에 영국 정부와 EU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 결과가 현재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은 다수의 찬성으로 ‘합의 없는 이탈’에 반대했지만, 합의 있는 이탈을 하려면 뭔가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의 이혼’을 하자고 결의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이를 위해 뭔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대해 영국 의회가 추가 표결을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해서 마련한 합의안을 의회가 통과시키는 방안이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일부 보충에도 이미 두 차례나 하원에서 거부했다. 하지만 영국 하원의 운영을 총괄하는 하원의장이 허락만 한다면 메이 총리는 합의안을 다시 표결에 붙일 수 있다. 표결에 붙이지 못한다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결은 심지어 탈퇴 시기를 연장하지 않고도 가능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브렉시트 시한을 약간만 연장한 후 합의안을 표결로 통과시킬 수도 있고, 합의안을 거부하고 시한을 좀 더 길게 연장할 수도 있다. 의회가 세 번째 표결에서 합의안을 통과하고 탈퇴 시기를 좀 더 뒤로 미루는 방법도 있다.

주요 쟁점에 대한 재협상도 생각할 수 있다. 메이 총리의 정부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브렉시트 협상안을 제안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EU가 받아들이느냐 여부다. EU는 재협상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영국이 완전히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올 경우 EU가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추진하려면 영국 의회는 메이 총리의 기존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고 하원 표결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메이 총리는 이를 바탕으로 EU와 협상할 수 있다. EU가 기존의 입장대로 재협상을 거부하면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럴 경우 영국 정부는 ‘합의 없는 이탈’ ‘총선’ ‘총리와 내각 불신임안 투표’ ‘새 국민투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EU가 기존 입장을 바꿔 재협상을 하게 하려면 영국은 상당히 새로우면서 EU를 설득할 수 있는 새 협상안을 내놓을 수박에 없다. 그중 하나로 ‘노르웨이 모델’이 거론된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럽경제공동체(EEA)의 회원국으로서 관세 혜택을 누리며 유럽 단일시장에 제한 없이 접근하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 경제적인 손실을 최소화하고 브렉시트를 할 수 있기에 영국이 혹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혜택의 대가로 EU 회원국 국민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957년 3월 25일 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의 6개국이 유럽공동시장 실현과 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발족했다. 1958년 로마조약을 통해 공식 탄생한 EEC는 199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거쳐 유럽공동체(EC)가 됐으며, 다시 2009년 리스본 조약으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 됐다.

경제적 손실 최소화하고 브렉시트 가능하다면?

그런데 EEC 설립 초기 이 조직이 프랑스와 독일 주도로 탄생하자 다른 나라들은 이에 대항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1960년 5월 3일 노르웨이는 영국·오스트리아·스웨덴·스위스·덴마크·포르투갈과 함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설립했다. 1970년 아이슬란드에 이어 1986년 핀란드, 1991년에는 리히텐슈타인이 각각 가입했다.

하지만 EFTA는 EEC와 그 후신인 EU의 확대에 따라 서서히 축소됐다. 1973년 영국·덴마크가, 1986년 포르투갈이 EEC에 가입하면서 EFTA를 떠났으며 1995년에는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가 EFTA에 작별을 고하고 EU 회원국으로 새 출발을 했다. EFTA는 현재 노르웨이와 함께 아이슬란드·스위스·리히텐슈타인 등 4개 회원국만 남아있다. 노르웨이는 1972년과 1994년 두 차례 EU 가입 신청을 했지만 가입조약안이 국민투표에서 거부돼 비회원국으로 남았다. 내부 정치와 EU의 어업 등에 대한 정책적인 간섭을 두려워한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EU 가입 협상 시작을 놓고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됐다. 리히텐슈타인은 돈세탁 문제 등 금융과 관련한 EU의 규제 가능성을 걱정하고,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 등과 관련한 문제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FTA는 냉전이 끝난 1994년 EU와 손잡고 유럽경제지역(EEA)을 설립했다. EEA는 자유무역 지역으로 EU의 역내 시장과 동일하게 사람·상품·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 하지만 EEA는 EU의 공통 통상정책을 따를 의무는 없다. EFTA 회원국 등 스위스는 1992년 국민투표로 EEA 협정 비준을 거부해 EEA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는 이처럼 EU와 EFTA 차원에서 설립된 EEA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영국이 이런 노르웨이 모델에 관심을 가질 경제적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동의 자유’다. 바로 ‘이동의 자유’ 규정 때문에 폴란드인을 비롯한 EU 회원국 국민이 영국에 대거 들어온 것이 브렉시트를 촉발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의 저임 노동자들은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며 반감을 나타냈다. 일부에선 ‘이동의 자유’를 악용해 다른 EU 회원국 출신이나 이민자 출신의 테러범이 영국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영국 내부 정치도 문제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인으로서 메이는 자신이 ‘영국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총리’ 또는 ‘영국을 브렉시트라는 진창으로 몰아넣은 못난 지도자’로 몰리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메이 총리가 코너에 몰리고 발목이 잡혀 브렉시트에 따른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보수당도 정국 운영의 책임을 지고 정권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브렉시트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기 때문에 보수당은 오랫동안 정권을 되찾을 기력을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메이 총리가 이런 파국과 역사적인 낙인을 피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 없는 이유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다 그렇게 할 것이다.

노동당이 정권 차지해도 혼란의 책임 져야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도 주목 대상이다. 메이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 총선을 하게 될 경우 정권을 차지하고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별다른 업적이나 기여 없이도 손쉽게 정권과 총리 자리를 얻을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코빈이 브렉시트 과정에서 메이 총리에게 협조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다. 그가 정권을 차지해도 브렉시트 과정에서 보여준 혼돈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어떤 방식이든 브렉시트가 불투명하게 진행되면 시장이 불안해 질 수밖에 없다. 영국 정치계가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할 것인지 관심거리다.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게 될지, 역사적인 정치극의 반전 결말을 보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476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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