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일본의 ‘레이와(令和)’ 팡파르 

 

정영수 칼럼리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일본 신화에 따르면 일본의 조상신은 천조대신(天照大神)으로 여성이다. ‘천조대신’이니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라고 하며 한때 우리도 일제 강점기 땐 그들의 조상신을 덩달아 섬기도록 강요받았다. 천조대신은 ‘하늘을 비추는 위대한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왕(日王)을 일본에서는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며, 신적(神的) 존재로 여겨 성(姓)이 없다.

일본은 왕이 죽으면 일왕의 최고 자문기관인 추밀원에서 제일 먼저 연호를 정한다. 밤을 세워가면서 동서고금 가장 좋은 말을 골라 그럴 듯한 연호를 만들어 공표한다. 명치(明治), 대정(大正)에 이어 평성 등으로 이어졌다.

이 중 ‘쇼와(昭和)’는 원래 정한 연호가 아니었다. 한 일간 신문기자가 요리사로 가장해 추밀원에 몰래 들어가 연호를 특종 보도했다. 그때 연호가 ‘광문(光文)’. 아침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다음 연호는 ’광문‘이라고 나가자 “천기를 누설했다”고 해서 추밀원이 즉각 재소집되고 결국 ‘쇼와’로 바꾼다. 신문은 결과적으로 오보를 한 셈이어서 사과문을 내야만 했다.

“새로운 겐고(元号, 연호의 일본식 표현)는 레이와(令和)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1일 총리관저에서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소개했다. 레이와는 일본의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의 ‘매화의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는 “레이와에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라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연호가 도입된 645년 다이카(大化) 개신 이후 등장한 247개 연호에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한자 ‘令(레이)’이 포함된 것이다.

‘레이와’는 일본이 연호를 쓰기 시작한 645년 이후 248번째 연호다. 그동안 연호에는 和(화할 화), 平(평평할 평), 明(밝을 명), 正(바를 정) 등 좋은 뜻의 글자를 많이 가져다 썼다. 그중에서도 ‘和’는 무려 20번째 쓰인다는 것. 21세기의 연호 ‘레이와’ 시대, 진정한 ‘和’를 염원하는 사람이 많다.

3월 31일까지 일본 정부는 일본 문학과 한문학, 일본 사학과 동양사학 권위자들로부터 추천받은 후보작을 6개로 추렸다. 일본 정부는 발표 당일인 4월 1일 오전 9시 학계·언론계·재계 ·여성계 등 9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했다. 이후 중·참의원 의장단과 각료들과의 협의를 거쳐 각의에서 연호를 확정했다.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일왕 즉위와 함께 일본의 연호는 ‘레이와(令和)’가 된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Reign, not govern)’는 입헌군주국 일본에서는 공문서 등에 날짜를 표기할 때 일왕 즉위 이후 재위 기간을 나타내는 연호를 서력기원과 함께 쓴다. 일본 국민으로선 연호가 갖는 의미가 크다.

4월 말까지 사용되는 연호 ‘헤이세이(平成)’는 현 일왕 아키히토(明仁)가 30년 전인 1989년 선왕 히로히토(裕仁) 서거 후 왕위를 계승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헤이세이 이전 연호는 ‘쇼와’로 히로히토 일왕 재위 64년(1926~89) 간 사용됐다. 그때가 일제 강점기여서 우리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일본 연호 중에 우리 귀에 익은 건 ‘메이지(明治·1868~1912)’. 무쓰히토(睦仁) 일왕 재위 기간에 사용했던 연호다. 메이지 43년(1910)에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됐다. 조선도 일본식으로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 광무(光武), 융희(隆熙)를 쓴 적이 있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 국민들은 종일 축제 무드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처럼 함께 모여 TV를 시청하며 환호성을 울렸고, 신문이 호외를 발간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1482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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