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멀리 내다본다면 한국 경제의 심각성은 경기 침체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울려온 성장잠재력 추락 경고음에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단기 업적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성장잠재력 하락에 따른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각 경제 주체들 간의 크나 큰 시각 차이는 위기의식을 희석시켜 성장잠재력 회복을 어렵게 하는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위험과 불확실성이다.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내외였다가 2010년대 들어 3% 초중반으로 하락했다. 2016~2020년 중에는 2.8~2.9% 정도로 추정된다. 2020년대에는 1%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신분상승 욕구로 너나없이 열심히 일해 높은 성장률을 자랑하던 나라가 이제는 저성장 국가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졌다.식자 중에서 혹자는 우리나라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에 근접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어이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생각건대, 외환위기, 코스닥시장 붕괴, 카드대란 같은 큰 충격을 받더라도 실제성장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 자동조절 기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은 일단 추세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이키기가 거의 어렵다. 경기 변동에 따른 경기 침체가 감기나 몸살이라면, 경제 체질이 근본적으로 약해지는 성장잠재력 하락은 고치기 어려운 노인병과 같다.세계 경제는 부가가치 창출 원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전환기의 분수령을 지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분해공학(reverse engineering)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아날로그 생산시대에 여러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했다. 이제는 다르다. 한계가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예컨대 아날로그 생산성이 각 나라들 간에 엇비슷해지는 데다 상품의 경박단소 경향으로 교역량이 줄어들어 해운업이 타격을 받고, 조선업도 주력 상품을 화물선에서 유람선으로 바꿔야 될지 모른다.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경쟁에서 한국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 것일까? 변화의 속도가 빨라 우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가 지나가는 아날로그 성장에 취해서인지는 몰라도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뿌리 채 이동하는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도 못하고 어느 결에 성장잠재력은 시나브로 약화되고 있다.생각건대, 디지털 분야에서는 미국에 차츰 종속돼가는 우려까지 든다. 쉬운 예로 떠들썩했던 ‘혜경궁 홍씨’ 트위터의 주인이 누군지 구글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영업비밀이라 하여 입을 다물면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안갯속에서 헤매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도 거기에 계속 담겨질 갖가지 내용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과 의식구조를 분해할지도 모른다.성장잠재력을 배양하려면 무엇보다 인적자원을 확충하고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 체제를 구축해 열심히 일하면 개인도 잘 살고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는 분위기부터 고양해야 한다. 창의적 교육훈련을 이끌어내어 생산적 인력을 양성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 기업가정신과 근로의욕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는 먼 시각으로 경제적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① 우리의 경우 학교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사람 사는 도리를 가르치기보다 ‘찍기’ 요령부터 가르쳐 청소년들의 잠재능력은 퇴장되기 쉬웠다. 어릴 때부터 경쟁심리만 부추기는 교육제도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성장잠재력을 저하시키는 교육이 됐다. 청소년들에게는 끊임없는 질문을 유도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저마다의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 그 능력을 발굴해주려는 노력이다. 사는 동네가 다르면 실력과 관계없이 가고 싶은 학교에도 갈 수 없게 만드는 학군제는 평준화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에게 불평등심리를 일찍부터 심어 주고 있다. ‘교육은 국가 100년 대계’라는 금언이 실천돼야 비로소 성장잠재력이 확충된다.② 근로자들이 생산성이 더 높은 일감을 찾아서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개인도 성장하고 사회도 발전하는 원동력이 된다. 막강 노동조합의 보호막 아래 유능한 인재들이 안주하게 되면 저마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상실한다. 결과적으로는 개인도 사회도 헤아리기 어려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고급 인력이 머리띠를 두르고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간에 더 연구하고 노력하도록 유도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필요조건이다.③ 고용률에 얽매여 억지춘향으로 생산 없는 일자리를 만든다면 허드레 임시 일자리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이 쇠퇴해 고급 일자리는 차츰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이 이윤추구 동기에 따라 상품을 생산해야 ‘보다 좋게, 보다 싸게, 보다 빨리’ 생산하려는 동기부여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동시에 성장잠재력은 향상된다. 생산 없는 빈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다가는 아까운 세금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생산성까지 곤두박질치게 하는 재앙이 된다. 고기를 잘 잡는 그물을 만들려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고 잡은 고기를 나눠주다가는 더 좋은 그물을 짜려는 노력을 해친다.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경쟁 질서를 유도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적극적 생산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거나 중립화시켜야 성장잠재력의 원천인 사회적 수용능력이 커지기에, 무엇보다도 예측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달리 표현하면,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가계와 기업이 근로의욕과 기업가정신을 쏟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다. 과거 경험에서 볼 때 ‘정부로부터의 불확실성’은 대부분 단기 업적주의에 매몰돼 눈앞의 가시적 성과를 위한 미봉책을 남발하는 부작용에서 비롯됐다.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려는 헛수고보다는 새로운 산업, 즉 미래의 부가가치 창출 과정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의식주 산업보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더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청소년들의 재능을 조기에 발굴하고 그 능력을 키워내는 산업, 고령사회에 절대 필요한 예방의학 같은 것들이다.세계 경제의 부가가치의 원천이 급격하게 이동하는 대전환기에 근시안적 단기 업적주의에 매몰되다 보면 산업경쟁력, 나아가 성장잠재력 배양을 엄두도 낼 수 없게 된다. 논어에서도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했다. 그 옛날부터 가계 운용과 기업 경영은 물론 국가 경영의 기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