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등 경쟁사, 재생가능에너지 100% 실현 … 국내 법·제도 미비에 삼성 의사결정 구조 문제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미국·중국·유럽 등 해외 공장과 사무실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늘려 202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에너지 전환 대상에서 한국은 제외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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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닌 기업 역량과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선 신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북유럽 신화에서 위턱은 하늘에, 아래턱은 땅에 닿는 초거대 늑대 펜리르가 연상된다고나 할까. 그만큼 규모와 실적 면에서 경쟁자를 압도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43조7700억원(약 2145억 달러)을 기록했다. 9743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베트남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2236억 달러)과 맞먹는 규모다. 영업이익은 58조8900억원에 달했다. 일본 전자 업계 상위 20개 업체의 영업이익을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세계 전자·통신 기기 업종에서 삼성전자에 견줄 만한 업체는 애플이 유일하다. 애플은 지난해 매출 2655억 달러. 영업이익 709억(약 82조3400억원) 달러를 거둬 실적 지표에서 삼성전자에 앞섰다. 하지만 시장 지위나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면에선 삼성전자가 낫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패널, 가전, 컴퓨터 등 사업 부문마다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강자다. 휴대전화 시장에선 애플을 제치고 8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TV 시장은 13년째 1위다. 디스플레이패널 시장에선 LG 디스플레이와 1위를 다투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규제 강화 주목
▎애플은 지난해 4월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큐페르티노시의 애플 파크는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 이곳에서 피크타임 때 쓰는 전력의 75%를 충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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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아이폰 한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애플이 공시한 2018년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 이익이 총영업 이익의 63%를 차지한다. 아이튠스, 애플리케이션 판매 등 서비스 수입(영업이익 14%)도 아이폰 사용자에서 나오니 아이폰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웃도는 셈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애플에 불리하게 급변하면 애플 실적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할 수 있는 사업구조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애플에 못 미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71조300억원(4월 18일 종가기준)이다. 종속기업 시가총액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상장법인 시가총액의 20%가 넘는다. 하지만 애플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1120조6300억원(4월 18일 종가기준)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실적 차이를 고려해도 이런 주가 차이는 지나치다.삼성전자가 과소 평가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투자자들은 수익성 지표 못지않게 경영지배구조, 비전, 가치 등 계량화할 수 없는 지표를 주가에 반영한다. 삼성전자는 경영지배구조가 취약하다. 남북한 대치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필자는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변수 중 하나로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규제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주목한다. 이는 기업 경쟁력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근원적 위험 요인이다.기후변화가 엄습하면서 전 세계는 에너지 소비체계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세계 2위 석유회사 BP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2040년 화석연료·원자력 등 오염물질을 제치고 세계 최대 에너지원의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BP는 지난 2월 14일 발표한 에너지전망 연례보고서에서 “재생가능에너지는 앞으로 20년 간 해마다 7.1%씩 증가해 2040년 전 세계 에너지 사용 에너지원의 30%를 차지할 것”이라며 “화석연료 등 온실가스 배출원이나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는 갈수록 줄고 있다”라고 분석했다.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수익성 개선, 지속가능성 제고 등 생존전략 차원에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166개 기업이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고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RE100 이니셔티브는 기업들이 경영 과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태양광·풍력·조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자발적 약속이다. 프랑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슈나이더일렉트릭이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전문가 23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I)이 경쟁 업체보다 18% 높았다. 기후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기업 대비 67% 웃돌았다. 포춘 500 기업 중 190개가 8만여 개 온실가스 배출 감축 프로젝트를 실행해 에너지 비용 37억 달러(2016년)를 절감했다.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업종은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애플은 지난해 4월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했다. 구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사는 업체로 손꼽힌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말 데이터센터 전력의 5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한다고 발표했고, 아마존은 데이터센터 사용 전력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했다. 소니 등 전자·통신 기기 업체도 나름의 전환 목표와 일정을 제시하며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미국·중국·유럽 등 해외 공장과 사무실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늘려 202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에너지 전환 대상에서 한국만 제외했다. 이에 기흥·화성·평택 등 반도체 제조공장은 전력소비량이 유난히 많음에도 석탄·원자력 등 환경오염원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온실가스 841만톤(tCO2e, 6가지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단위)을 배출했다. 전년도(689만톤)보다 22% 늘어난 수치다. 지난 수년 간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새로 도입한 게 없으니 지난해에도 전년도보다 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삼성전자는 국내에선 재생가능에너지를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기업 전력구매계약(PPA)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살 수 있는 법·제도가 없는 탓이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원천 봉쇄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업무계획에서 녹색요금제 신설을 명시했다. 세부안이 나오지 않아 평가할 단계가 아니지만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방식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김성환 의원이 검토하는 기업 PPA가 훨씬 낫다. 기업 PPA를 도입하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설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10년 간 미국에서 기업 PPA 체결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설비가 13GW (연간 475만 가구 전력 소비량) 늘었다.
기업 전력구매계약 제도 도입할 만기업 PPA 도입 없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안(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목표) 만으로는 기업의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 목표를 달성해도 태양광 발전량은 36.5GW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수요만 하더라도 이 발전 목표치의 82%에 달한다. 재생 가능에너지 발전시설이 애초 계획보다 크게 늘지 않는 한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재생가능에너지 100%로 전환할 수 없다.법·제도 미비, 발전시설 부족 등 외부 변수 못지않게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막는 것이 삼성전자의 의사결정 구조다. 에너지 전환이나 환경 부문에서 애플의 의사결정 구조를 살펴보자. 애플은 2013년 리사 잭슨 부사장을 영입해 사내 환경정책을 총괄하게 했다. 잭슨 부사장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청 장관을 맡아 환경정책을 주도한 거물급 인사다. 뉴올리언스 출신 화학공학자인 잭슨 부사장은 기업 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애플의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큐페르티노 26만㎡ 부지에 자리한 애플 파크의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덮는 작업도 잭슨 부사장이 주도했다. 그는 또 캘리포니아와 워싱턴DC를 오가며 환경정책 관련 대관 업무도 수행하며 지역 전력 업체나 규제 기관과 협력해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짓는 등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이끌고 있다.삼성전자에는 에너지·환경 담당 최고위 임원이 없다. 경영 의사결정에 환경 담당 임원이 관여한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국회 신재생에너지포럼 소속 국회의원, 환경단체 대표, 기업 고위임원 등이 참석한 '재생에너지선택권 이니셔티브' 출범식에서 삼성전자는 임원급 인사를 파견했다.
에너지·환경 담당 최고위 임원 없는 삼성전자기후변화에 대한 이해가 깊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정책 의지가 강한 환경 담당 고위임원이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외부환경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서야 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최고의 환경정책 전문가를 영입해 기업 최고의사결정 구조에 포함했다. 삼성전자가 기후·에너지 환경 변화에 맞춰 시장 지위와 실적을 유지하려면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박스기사] 애플의 재생가능에너지 전환 정책 - 비용 줄이고 지속가능성 높이는 ‘일거양득미국 캘리포니아주 큐페르티노시 26만㎡ 부지에는 애플 파크가 자리한다. 애플은 50억 달러(약 5조7000억원)를 들여 이 사옥을 짓고 있다. 완공이 되지 않았지만, 애플은 2017년 4월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입주시키고 있다. 지금은 연구개발 인력 2000명 이상이 우주선 모양의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 애플 파크의 장관은 도너츠 모양의 지붕을 덮은 태양광 패널이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중 가장 크다. 지붕이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인 셈이다. 애플 파크가 피크타임에 쓰는 전력의 75%를 이곳에서 생산한 태양광 에너지로 충당한다.애플은 지난해 4월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한다고 발표했다.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지금도 애플은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발전소를 15개 이상 건설하는 등 11개국에서 25개 재생가능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인도·멕시코·터키 같은 나라에선 지역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 이런 노력 끝에 애플은 지난 2011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58% 줄였고 온실가스 220만톤이 대기에 퍼지는 것을 막았다. 애플은 협력 업체에도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2015년부터 협력 업체 상대로 재생가능에너지 전환 프로그램을 실행해 지금까지 23개 협력 업체가 애플에 납품할 제품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페가트론, 콴타 컴퓨터, 피니사르 등이 대표 사례다. 페가트론은 중국 상하이와 쿤산 공장에서 아이폰 등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한다. 콴타 컴퓨터는 맥북에어·맥북프로·애플워치를 제조하는 대만 업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한 피니사르는 아이폰X에 들어가는 안면인식 레이저 부품을 만든다. 애플의 협력 업체들은 지난해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량 150만톤 이상을 감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자동차 30만대 이상이 1년 간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폭스콘을 비롯해 중국 대형 제조공장들이 재생가능에너지 100% 대열에 아직 합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폭스콘은 지난해 허난성에 400MW(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로 허난성 정저우 공장의 소비전력을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협력 업체의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지속해서 추적하는 모범적인 기술 업체로 애플을 꼽았다. 그린피스는 2017년 보고서에서 “애플은 2020년까지 협력 업체가 쓰는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4GW(기가와트)로 늘린다는 목표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리사 잭슨 애플 환경 담당 부사장은 미국 기술 전문 매체 패스트컴퍼니와 인터뷰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가 저탄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길을 막는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