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주목 받는 1등 내수주] 경기 침체, 탈세계화에 실적 앞세워 고공행진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휠라·신세계인터 주가 1년 새 3배로 올라... 스타벅스·맥도날드·아디다스 등 주가도 연일 신고가

▎부산 남구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한국 수출은 최근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주가란 때론 합리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PER)은 7.5배로 저평가돼 있다. 주가는 4만원대로 전년 대비 1만원 가까이 하락했다. 이에 비해 신라젠은 주가가 최근 3년 새 8배 가까이로 뛰었다. 신라젠은 외부감사를 받기 시작한 2012년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회사다. 그런데도 항암제 개발로 앞으로 실적이 크게 늘어날 거란 가능성이 주가에 반영됐다.

주가는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일종의 기대지수의 성격이 있다. 증시가 경기선행지수인 이유도 증권시장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미래가 현재 시장에 먼저 반영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증권시장 참여자들의 터무니 없는 ‘미래학’이 증시를 흔들기도 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은 외면받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의 종합적인 생각이 모여 주가가 정해진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는 내수기업의 주가 흐름이 흥미롭다. 저성장, 소비 부진, 온라인마켓의 급부상 등으로 이마트·롯데쇼핑·CJ오쇼핑 등 정통 유통 업체의 주가는 부진한 데 비해 휠라코리아·신세계인터내셔널 등 특정 브랜드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기술주 가운데 경기방어주 성격인 있는 NHN엔터테인먼트·엔씨소프트 등의 주가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부진할 때는 내수·소비재 기업이 주목받는다. 경기가 나빠져도 생활 필수재 소비는 줄이기 어려워서다.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수출 기업보다는 음식료·통신·패션·화장품 등 내수 업종의 주가가 오르게 마련이다. 특히 최근 들어 개별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휠라코리아의 주가 그래프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흡사 2017년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를 보는 듯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휠라코리아 주가는 7만6600원(4월 22일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5월 9일 2만3550원 대비 3배 이상으로 올랐다. 4월 16일에는 8만3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역대 신고가다. 주가가 별다른 저항선에 걸리지 않고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해 2조9546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 3조2273억원, 내년 3조4666억원 등 꾸준히 늘어날 전망인 것이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다. 디스럽터·레이 등 운동화 브랜드가 1020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끌며 매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LG생건·매일유업·BGF리테일 등 주가 탄력


신세계인터내셔널도 역시 주가가 지난해 4월 23일 12만3500원에서 올해 4월 22일 31만500원으로 3배 가까이로 뛰었다. 글로벌 증시가 부진했던 지난해 10~11월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올랐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은 해외 패션 브랜드를 수입·유통하는 회사로 올해부터 화장품 사업에 역량을 쏟기 시작한 점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보브(VOV) 등 자체 의류 브랜드의 성장세도 힘을 보탰다. 지난해 10월 101만원까지 빠졌던 LG생활건강 주가도 역대 최고점에 근접한 143만8000원으로 올랐고, 호텔신라 주가도 최근 3개월 새 30%가량 상승했다. 매일유업 주가도 10% 이상 뛰었다. 편의점 1위 BGF리테일(CU)도 올해 들어 주가가 30% 가까이 상승하며 2위 GS리테일과의 격차를 벌렸다.

내수 업종별로 시장 지배적 기업들이 힘을 받는 이유는 탈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일본과도 무역갈등을 빚고 있어, 교역이 둔화할 경우 각국이 내수 부양에 힘을 쏟을 것이란 중장기 관측이 힘을 얻는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유가 안정에 기반을 둔 내수 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 역시 부가가치세 삭감 등 소비 활성화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EU도 유럽중앙은행(ECB)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이런 경기 부양에 따른 내수 기업의 수혜 가능성이 각국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최근 주인공은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 아니다. 스타벅스·맥도날드·에스티로더 등 업종별 1위 내수 기업들이 수익률 상위를 휩쓸고 있다. 스타벅스 주가는 75.74달러까지 올라 신고가 행진을 기록 중이고, 맥도날드 역시 194.23달러로 1년 새 30% 가까이 상승했다. 연초 주춤했던 에스티로더 주가도 2월부터 급등하기 시작, 170달러 선까지 오르며 연일 최고가 행진 중이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경우 주당 232.15유로로 올라 신고가 기록을 경신 중이다. 2015년에 비해 5배 가까이로 올랐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은 주당 243유로를 기록해 역대 가장 높은 주가를 자랑 중이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영국 기업 유니레버 주가도 58.79달러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의 탈세계화 움직임 속에 각국의 경쟁적인 내수진작 정책으로 이런 주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필수소비재·내구재 등은 역내 교역이 활발할 수 있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기업을 보면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가진 회사들인 경우가 많다”며 “시장이 급변하고 저성장이 굳어지고 있음에도 시장 지위를 지키며 실적도 괜찮고, 소비자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브랜드의 주가 흐름이 좋다”고 설명했다.

통신·IT·게임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말 대비 주가가 2배 이상으로 오른 NHN엔터테인먼트는 사상 처음으로 올해 1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2013년 설립 이후 실적이 지지부진했지만, 네이버·라인 등 관계사와의 협업을 통해 굵직한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있다. 올 2분기 디즈니와 협업한 ‘라인 디즈니 토이 컴퍼니’, 3분기 ‘닥터마리오 월드’ 등 글로벌 기업과의 지적재산(IP) 제휴 게임을 내놓는다. 최근 지상파 방송의 침체에도 SBS콘텐츠허브 주가가 올해 들어 20% 상승한 것도 국내 시장에서의 튼튼한 입지와 넷플릭스 등 해외 업체와의 협업 가능성이 열려서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그간 외면받았던 유통 업종에서도 차별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이 올해 들어 4개월째 감소하며 유통 등 내수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전망인데, 기업마다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쿠팡·티켓몬스터·위메이크프라이스 등 e커머스 업체의 대두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NHN엔터·SBS 등 국내 콘텐트 강자 주가도 상승 흐름

SK증권은 이마트를 유통 업종에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매력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꼽고 있다. 트레이더스·SSG 닷컴이 신성장 동력으로서 입지를 다지면 장기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롯데쇼핑은 온라인 대응이 한발 늦었고 올 1분기는 마트·백화점 매출 부진까지 겹쳤다. 대신증권은 “온라인 쇼핑과의 경쟁 심화로 1분기 마트 채널 매출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며 4월 19일 롯데쇼핑 목표 주가를 25만원에서 22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1482호 (2019.05.0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