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4월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공급 확대 중심에서 수요 관리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과 환경의 조화,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법에 근거해서 5년 주기로 수립하는 국가 에너지 대계(大計)이자,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2년마다 갱신, 수립하는 전력수급계획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에너지기술개발계획, 석유비축계획 등은 모두 에너지기본계획에 구속을 받는 하위 계획이다.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기간은 2019년부터 2040년이다. 정부는 이날 공개한 계획안에서 2040년 최종 에너지 수요를 경제가 연평균 2%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2017년 대비 약 20% 증가한 2억1100만 TOE(Ton of Oil Equivalent, 석유환산계수, 1TOE=1000만Kcal)로 추정했다. 이 수치는 현재의 에너지 소비 패턴이 유지되고 정부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가정(BAU, Business As Usual) 기준 전망치이다. 여기에 정부는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에너지 원단위를 20년 동안 38% 개선하는 등 수요 관리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통해서 최종 에너지 수요를 BAU 기준 전망 대비 18.6% 절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40년 목표 수요는 1억7180만 TOE로 2017년 최종 수요 1억7600만 TOE보다 0.2% 낮다. 다시 말해 정부의 계획은 20년 후의 최종 에너지 수요를 지금의 수준보다 줄이겠다는 얘기다.제3차 기본계획의 첫 번째 핵심 내용은 종전의 공급 중심에서 향후에 수요 관리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산업·수송·상업·가정의 순서로 부문별 수요 관리를 강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려서 최종 에너지 수요를 지금의 수준으로 억제하겠다고 한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원별 상대가격의 왜곡, 외부비용의 미흡한 반영 때문에 전력이 과소비되는 등의 문제가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에너지 이용을 합리화하고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겠다는데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고 하면서 20년 후의 최종 에너지 목표 수요를 현행보다 낮은 수준에서 억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혹시 에너지 수요를 너무 보수적으로 전망하고는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을 대폭 올려서 소비를 억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 수 있다.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앞으로 빠르게 진전되면 인구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할까, 아니면 감소할까? 산업혁명은 창조적 파괴가 다방면에서 큰 폭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지금은 불확실성이 크고 아무리 훌륭한 예측모형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20년 후의 미래를 정확히 전망하는 일이 쉽지 않은 때이다.이 점을 감안해도 제3차 기본계획에서 밝힌 목표 수요 전망은 5년 전에 수립한 제2차 계획과 비교할 때 증감의 방향이 다르고 일관성이 없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는 2035년까지 목표 수요를 연평균 0.3%씩 증가하는 것으로 잡았다. 이제 와서 목표 수요를 현행 수준보다 낮추겠다고 하니 정부는 이 간극의 원인과 계획의 실현 가능성, 방법론을 국민에게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제3차 계획의 두 번째 핵심 내용은 에너지 믹스의 급격한 전환이다. 이번 계획에서 정부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믹스로 전환한다’는 방향 하에 원전 발전을 줄이고 태양광 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행보다 4~5배 많은 수준인 30~35%로 대폭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비중의 확대는 예상됐던 내용이다.2년 전의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정부는 원전을 2030년까지 18기(현재 24기)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늘리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제3차 계획에서는 3020 이행계획의 연장선상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에 30% 이상으로 한단계 더 확대하는, 공청회 자료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도전적 보급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듯 원전 수출 지원을 통해 원전 관련 일감을 확보하고 산업·인력 핵심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내용을 계획에 포함시켰다. 비유하자면 음식점 주인이 본인은 먹기 싫은 음식을 손님에게 내다 팔며 장사하겠다고 하는 격이다.제3차 계획과 5년 전의 제2차 계획에서 수립한 에너지 믹스 정책을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비교하면 마치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이야기 같은 착각이 일 만큼 내용이 다르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제2차 계획에서 정부는 원전 비중을 29%(2035년)로 설정하고 이미 확정된 원전 건설 및 운영계획을 제외하고도 신규 원전 7GW 건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 당시 정부는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 산업경쟁력, 온실가스 감축 등에서 원전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원전 비중의 급격한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제3차 계획에서는 원자력에 대해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및 신규 원전 건설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며 급선회했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경쟁력, 온실가스 감축 면에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검증된 대안이 새로 생겼기 때문인가? 태양광 발전은 경제성, 환경성, 재처리 비용 면에서 원전보다 확실히 더 나은 대안인가?이번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앞으로 에너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국무회의 의결의 단계적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여건이 바뀌면 전망과 계획은 얼마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기본계획은 에너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20년 대계이다. 정부가 근 5년 만에 수요 전망을 낮추고 에너지 믹스 계획을 급선회한다면 경제성·기술성·환경성 등의 제 측면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국민이 납득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과 산업계의 혼란과 갈등은 가중되고,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증폭된다. 무슨 정책이든 소기의 성과를 내려면 합리성, 일관성,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5년 후에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또 바뀌겠지 하는 냉소적인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면 국가 에너지 대계 수립은 성과 없는 소모전으로 그치게 될 것이다.차제에 원자력 기술의 안전성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막대하다. 때문에 원전을 반대하는 이가 많지만 우리나라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형 원자로(APR1400)는 지난 5월 1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안전성 인증을 받았고, 오는 7월 말에 최종 설계인증을 획득할 예정이다. 따라서 막연한 불안감에 탈원전에 동조하기보다는 기왕에 경쟁력이 높은 기술력의 더 나은 향상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 국가 에너지 안보와 국민경제의 앞날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