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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례로 본 환율 급등기 대처법] 위기의 수출 전선 재정비가 급선무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7년 초 이후 상황 참고할 만… “국내 지표 개선 없이는 극복 어려워”

외환시장이 고환율 탓에 요동치고 있다. 5월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92.8원에 마감했다. 전거래일보다 1.2원 하락한 수치이지만 장중 한때 기록한 1196.5원은 2017년 1월 11일(1202.0원)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3개월 전인 지난 2월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110~1120원대 수준이었다. 불과 석 달 만에 70~80원이 오른 셈이다. 1년 전인 지난해 5월엔 108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내외 경제 리스크가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무역분쟁이 최근 들어 한층 격화될 조짐을 보인 데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잇따라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월 21일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1200원선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위원은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없다면 원·달러 환율 1200원 재돌파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앞서 5월 2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나친 쏠림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통해 시장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기재부 측은 “경제 수장으로서 현 상황에 대한 원칙을 강조했을 뿐 구두 개입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외환 전문가는 “지금의 외환시장이 비정상적이라는 판단을 정부가 내리고서 사실상 구두 개입에 준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했다.

원·달러 환율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

원화가치가 급락할수록(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서 국내 경제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탄탄하고 자급자족으로 힘을 지탱할 수 있는 강대국들과 달리,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크지 않은 경제 규모에도 외환시장 개방도가 높은 경제) 환경에서 환율 변동성에 그만큼 취약해서다. 이 때문에 고환율이라는 위기 신호는 과거 수출 위주로 달성한 집약적 고성장 이후 수시로 국내 경제에 파고들어 애를 태웠다. 가장 최근 일은 한동안 1200원대 고환율이 이어졌던 2016년 말~2017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말 환율이 1200원을 넘은 것은 2008년 이후 8년 만의 일이었다.

2017년 1월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때다. 그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강조했던,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의 이른바 ‘트럼프노믹스’ 출범 전후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불안감이 고조됐다. 특히 미국은 이 무렵(2016년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 원·달러 환율 급등을 부채질했다. 이런 대외 변수에 더해 한국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나온 것도 지금과 닮은꼴이다. 당시 OECD는 한국의 2017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16년 전망치(2.7%)보다 낮은 2.6%로 잡았다. 가계부채 뇌관까지 우려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775조원이었던 국내 가계 부채 총액은 2016년 3분기 1295조원으로 70% 급증했다.

이후 미국은 같은 해 몇 차례 더 금리를 올렸지만, 환율은 오히려 낮아지면서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2017년 말엔 거꾸로 “원화가치가 3년 만에 최고치로 뛰면서 분위기 좋던 수출 전선에 위기감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저환율인 경우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리스크를 고려해도 내수시장에서 원화 강세는 고무적인 결과였다. 한국 경제가 당초 예측과 달리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다는 신호여서다. 실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2.9%, 2017년 3.1%를 최종 기록하면서 OECD 전망치를 훨씬 상회했다. 경상수지도 반도체 등 주력 수출 산업 부문의 호조에 힘입어 2012년 3월 이후 2017년 12월까지 6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국내에서 달러화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환율이 안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북핵 리스크가 완화한 것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보다 조금 앞선 2016년 초에도 1200원대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얼마간 유지됐다. 이 무렵 ‘중국발(發) 금융위기론’이 불거질 만큼 중국의 경제지표가 좋지 않았다. 2015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9%로 2014년(7.3%) 대비 크게 둔화됐다. 2015년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3조3479억 달러로 2014년(3조8608억 달러)에 비해 크게 줄어 있었다. 커진 불확실성에 중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잇따라 급락하면서 국내 외환시장도 악영향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라 북한과의 사이가 나빴던 것도 부정적 요소 중 하나였다. 때마침 북한이 첫 수소탄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2016년 1월)하면서 환율 급등을 한층 부채질했다. 이후 환율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결정 발표(2016년 6월) 전까지는 하락할 수 있었다.

2011~2015년 사이엔 원·달러 환율이 1200원선으로 오른 일이 없었다. 2009년과 2010년엔 1200원대를 쉽게 넘나드는 환율 급변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창 불안정했던 경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위기가 한창 진행됐던 2008년 한땐 위기 직전의 1100원대에서 1500원대로 급등했다.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1998년엔 2000원대라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고환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과거 사례들과 현재를 비교해서 가까운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참고하는 편이 바람직할까. 전문가들은 예외적·극단적인 대외 변수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2008~2010년이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사례보다는, 2016년과 2017년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처한 상황이 지금과 비슷한 2016년 말~2017년 초와 그 이후의 사례를 참고해봄이 적합해 보인다. 미국이 불확실성을 유발했고 중국 경제가 흔들렸으며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문재인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와 정부 기조가 지금과 같아서다.

1분기 경상수지 흑자, 6년 9개월 만에 최저

여기까지만 보면 최근의 환율 급등도 일시적인 것으로, 2017년 초 이후 그랬듯이 머지않아 안정세로 돌아갈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물론 미·중 무역분쟁의 불똥이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튀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하나 더 있다. 국내 경제지표가 당시처럼 당초 우려를 딛고, 대외 변수를 뒤로 한 채 선방할 수 있느냐다. 이 대목에서 현황이 썩 좋지 못하다는 점이 일부 우려를 자아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의 경상수지는 112억5000만 달러 흑자로, 지난 2012년 2분기(109억4000만 달러 흑자)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세계 교역량 둔화에다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아직 흑자는 유지되고 있지만(월간으로 83개월 연속), 5월 현재 발표되지 않은 4월 경상수지에서 적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뜩이나 대외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 국내 경제지표까지 안 좋으면 시장 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국내 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더 안 좋기 때문에 환율이 급등한 것”이라며 “경상수지가 빠르게 가라앉고 있어 외환시장을 자극 중”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뿐 아니라 석유·철강 제품 등의 부문에서도 수출이 침체돼 연내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선태 KB국민은행 연구위원도 “국내에서 수출 같은 지표가 살아나지 않으면 환율이 다시 내려가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인위적 개입도 ‘차악’일 수밖에 없다. 지금을 수출품 가격 경쟁력 확보의 호기(好機)로 보고 수출 전선 재정비 등 ‘최선’의 길에 집중할 때라는 분석이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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