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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수두룩한 바이오산업 어디로] 복제약-삼바·셀트리온 의존도부터 낮춰야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인보사 사태, 분식회계 의혹, 실적 부진 등에 신음… 기술력 한계가 각종 무리수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5월 28일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허가를 취소했다. / 사진:연합뉴스
미래 성장성을 담보로 내달렸던 한국 바이오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업계 선두주자로 꼽혔던 기업들이 잇단 악재에 신음하고 있어서다.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은 판권을 가진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가 5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허가 취소를 받으면서 비상이 걸렸다. 염기서열반복검사(STR) 결과 인보사에 연골세포 대신 발암 가능성이 있는 신장세포가 포함되는 심각한 오류가 발견됐다고 식약처는 밝혔다. 2017년 판매 허가를 받은 인보사는 지금껏 국내 바이오산업의 대표 성과물로 인식됐다. 코오롱 측이 19년의 세월을 들여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으로,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였다.

식약처는 코오롱생명과학이 허가 당시 허위 자료를 제출해 오류를 은폐한 것으로 보고 이 회사를 형사 고발했다. 이로써 코오롱생명과학은 기존에 체결했던 총 1조원대 기술수출 계약도 물거품이 돼 해외 기업들에 위약금까지 물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제2의 황우석 사태’로까지 불리는 이번 인보사 사태로 코오롱그룹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인보사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은 상장폐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인보사 매출이 사라지면서 기술수출 대금의 절반을 못 받고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 향후 상장폐지될 수 있다.

무너진 ‘순수 국내 기술’ 신화


재계 1위 삼성그룹이 공을 들여 키워온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으로 2016년 말부터 고강도의 회계 감리 및 검찰 수사 대상이 됐는데 올 들어 그 칼끝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증거를 인멸했다고 보고, 두 회사의 공용 서버를 은닉·훼손하도록 지시하는 데 개입한 혐의로 삼성전자 임원 2명을 최근 추가 구속했다. 앞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도 임직원 2명이 구속 기소된 바 있다. 법원이 좀 더 신중한 입장이라는 점이 삼성 측으로서는 위안거리다.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는 지난 2월 증권선물위원회가 법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행정제재 집행정지 처분에 불복해 항고한 사건을 다시 기각했다고 5월 28일 밝혔다. 분식회계 여부를 아직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가하면 국내 바이오 업계 선봉장으로 군림해온 셀트리온그룹 역시 고전 중이다. 수익성 악화가 최대 근심거리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3387억원으로 전년(5078억원) 대비 급감했다. 이에 영업이익률도 2017년 53.51%에서 지난해 34.49%로 떨어졌다. 유통·판매를 맡은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영업이익이 2017년 1537억원에서 지난해 아예 적자 전환(-252억원)하면서 쓴맛을 봤다. 두 회사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를 앞세워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따른 경쟁 격화로 가격 인하가 불가피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졌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셀트리온그룹은 램시마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지난해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며 “올 상반기까지는 실적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5월 16일 “2030년까지 40조원을 연구·개발(R&D)과 시설에 투자해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미국)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나섰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연매출 2조원을 못 넘기고 있는 셀트리온그룹이 10여 년간 40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얘기는 비현실적이라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서 회장이 최근 엔터테인먼트나 정보기술(IT) 등, 바이오와 무관한 사업 분야 개척에 공들이는 행보를 연달아 보인 것도 일부 의구심을 자아냈다.

신약 허가 취소와 분식회계 혐의, 그리고 수익성 악화. 위기의 바이오산업을 구할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차제에 장기 성장성 확보가 가능한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위주로 산업 육성 전략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특정 기업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중심으로 한, 단기 외형 성장 전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국내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2조2327억원. 이 가운데 셀트리온의 생산액이 차지한 규모가 9023억원으로 전체의 35%가량이나 됐다. 수출에서도 셀트리온의 램시마와 ‘트룩시마(혈액암 치료제)’ 원액 등 두 품목 실적만 도합 9억1275만 달러로 전체 바이오의약품 수출액의 57.8%를 차지했다. 둘 모두 특허가 만료된 해외 기업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해 만든 바이오시밀러다. 한 기업에서 만든 바이오시밀러 몇 개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고속성장이 가능한 분야라 한국이 풍부한 제조 노하우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면서도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면서 수익성이 계속 이전만 못해지는 추세라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육성이 절실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업계 전반에서 오리지널 신약의 대성공을 기대할 만큼 기술력을 충분한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기술력의 허점을 드러낸 인보사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관계자는 “2017년 한국 바이오산업의 기술력은 미국의 77.4% 수준으로 일본(92.5%)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기술력의 한계는 의약품 성능이나 회사 실적 조작과 같은 무리수로 이어지면서, 업계에 이번처럼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구조로 직결될 수 있다.

일각에선 정부 책임론도 제기

이와 함께 일각에선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육성을 위해 기업들의 후보물질 도출부터 임상 1~3까지 R&D 비용의 20~40% 세액을 공제해주는 등 노력하고는 있지만, 보다 철저한 신약 허가·관리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한주 가천대 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인보사 사태의 경우 일차적으로는 기업 책임이지만, 생물학적 제재의 부작용 가능성이 제대로 점검되지 않았고 국가도 나 몰라라 한 측면이 있다”며 바이오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빠른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범진 아주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흔들림 없이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보여야만 기업들도 안심할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산업 성장을 위해 R&D 인력의 꾸준한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1488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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