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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ESS 화재 조사 결과] 모든 폭발·화재 위험에 대비하라? 

 

황건강·최윤신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조사위, 과도한 방재 대책만 내놓은 셈... LG화학 등 배터리 제조 결함 가능성

▎지난 2017년 화재가 발생한 한국전력시험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이 불로 리튬이온 배터리 등이 소실돼 5억원가량의 재산피해가 났다. / 사진:연합뉴스
#1. 지난 1월 경남 양산의 고려제강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설비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장 변전실이 불에 탔다. ESS 설비에서 화재가 잇따르자 LG화학 등 배터리 제조사들이 배터리 충전 용량을 제한해 달라는 요청의 공문을 돌린 뒤였다. ESS 화재와 관련해 조사를 진행 중이던 당국에서는 LG화학과 삼성SDI 등에서 제조한 동일한 종류의 배터리를 사용 중인 ESS 사업장을 대상으로 즉시 가동 중단을 권고한 상태였다.

#2. 지난 6월 11일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2017년 8월 전북 고창의 한국전력 전력시험 센터에서 발행한 화재부터 지난 5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23건의 ESS 설비 화재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배터리 보호 미흡과 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등 4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ESS 화재의 원인은 복합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예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원인이 모두 포함되면서 사실상 명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ESS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사용자들은 배터리 폭발과 화재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일반적인 위험 요소를 모두 포괄하면서 안전강화대책 역시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의 전력시험센터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터리 보호나 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등 포괄적인 원인은 석연찮은 구석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일반 사업자들은 언제든 폭발과 화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SS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금속 리튬의 폭발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 속에서 개발된 배터리다. 리튬은 공기 중에서 쉽게 반응하며 물과 닿으면 불이 붙거나 폭발한다. 이 때문에 초기 리튬 계열 배터리들은 금속 리튬을 음극으로 활용했으나 매우 위험하다는 평가 속에 상용화가 어려웠다. 대신 충전이 불가능한 일회용 배터리 위주로 리튬을 활용했다. 반응성이 높다는 단점은 동시에 장점이 되기 때문에 고효율 배터리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여러 차례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 형태의 배터리에 리튬을 활용하기 위해 금속 리튬 대신 리튬이온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이름에 포함돼 있는 ‘이온’은 전기를 띤 원소를 의미한다.

반응성 높지만 위험성 높은 리튬


현대적인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는 양극(+)에 리튬산화물을 놓고 음극에는 흑연 등 안정적인 구조를 지닌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기를 흐르게 하는 액체인 전해질 용액을 통해 리튬이온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리튬은 전해질을 만나면 이온 형태로 변하면서 이동할 수 있게 되는데, 배터리가 충전된 상태에서는 리튬이온이 음극에 위치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음극과 양극이 전선 등을 통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면 전자가 리튬이온에서 분리돼 전기가 발생한다. 리튬이온은 전해질 용액을 거쳐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방전된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충전되는 과정은 전류를 만들어낼 때와 반대 과정을 거친다. 즉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으면 양극으로 넘어간 리튬이온이 다시 음극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이렇게 리튬을 이온 형태로 만들어 다른 물질에 섞어 넣으면 금속 리튬을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폭발 위험성이 줄어든다.

배터리 구조상 폭발 사고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분리막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내부에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분리막이 있다. 분리막은 미세한 구멍을 통해 리튬이온은 이동하되 전자가 직접 흐르지 않도록 한다. 리튬이온과 함께 전자 역시 배터리 내부의 전해질 용액을 통해 이동한다면 배터리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분리막이 손상된 상태에서 충전하게 되면 과전류가 흘러 폭발할 수도 있다. 분리막의 손상 원인은 과도한 외부 충격이나 설계상의 결함 혹은 제조상의 문제 등 다양하다. 3년 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문제로 전량 리콜될 당시에도 배터리 크기를 줄이려다 보니 충분한 두께의 분리막을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설계나 제조상의 결함이 아니라면 외부 충격과 온도 등 주변 환경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과도한 충격을 받는다면 배터리 내부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발열 역시 마찬가지다. 배터리는 충전이나 방전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도 발열이 나타난다. 여기에 주변 환경에서 과도한 열기가 추가된다면 배터리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화학물질이 뜨거워지면 내부가 손상될 수 있다. 이번 ESS 사고 원인 조사에서 지목한 배터리 보호 미흡과 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대량으로 배터리를 구매할 경우 한번쯤 듣게 되는 이야기다. 조사위에서 이번 발표를 통해 ESS 화재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 등을 제시했으나 화재의 재발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지 못한 이유다. 김정훈 조사위원장은 발표 직후 진행된 간담회에서 “사고가 완전히 안 날 것이냐에 대해서는 100% 말씀드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가 화재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모든 가능성 포함된 조사 결과에 불안감 여전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6월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사고 원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조사 결과가 사실상 배터리 화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조심하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배터리 제조 결함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조사위는 이번 조사 결과 발표에서 LG화학 배터리셀의 불량이 화재의 간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17년 8월 이후 화재가 발생한 ESS 23곳 중 특정 시기에 LG화학 남경공장에서 생산돼 납품한 배터리가 유독 많았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기에 생산된 제품을 분해조사한 결과 제조상 불량이 있음을 발견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ESS 중 10여 곳의 배터리가 1개 공장에서 약 1분기 동안 생산된 것으로 나타나 조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간 LG화학 남경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해체분석한 결과 극판 접힘, 절단 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이 있었다. 다만 조사위는 이에 대해 모사실험을 실시한 결과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첨부했다.

LG화학의 배터리와 관련한 조사위의 설명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납득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5개월 동안 활동한 내용을 봤는데 정작 원인 조사는 하나도 된 것이 없다”며 “LG화학의 불량 셀에 대해 하나의 표본으로 180회의 모사실험을 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마무리 지은 것은 기본적인 확률과 통계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위가 실시한 모사 실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원인 규명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된 안전강화 대책 역시 ESS 화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대책은 화재에 대비한 소방방재에 집중됐다. 정부는 방화벽 설치 등 안전조치에 비용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ESS 사업자 일부에서는 부담만 늘었다는 푸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현 상황에서는 SOC(State Of Charge·충전 상태)를 70~80%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 화재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대책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고 과도한 방재 대책만 쌓였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지적은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국내 ESS산업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ESS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ESS 시스템을 해외 업체들이 그냥 받아 들일 리 만무하다”며 “정부의 대책에도 화재가 다시 반복된다면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ESS 화재 조사는 ESS를 포함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을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제는 배터리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2차전지 조사기관인 SNE리서치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리튬이온전지 시장은 용량 기준으로 2016년 98.5GWh에서 2020년 544.2GWh로 5.5배 확대될 전망이다. SNE리서치는 금액으로는 같은 기간 159억 달러에서 543억 달러로 3.4배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에도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나 폭발 위험성은 지속 제기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여객기 화물로 싣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위험한 물질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는 ESS뿐 아니라 각종 소형전자기기·전기자동차 등 사용처가 늘어나는 상황이라 불안감은 확산될 전망이다. 비교적 인적이 드문 장소에 설치되는 ESS에 비해 소형전자기기는 즉각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최근 한 남성이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액상전자담배를 사용하다가 큰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형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자담배 배터리 폭발 사고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수 발생했다.

안전성 높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시간 필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위험성 때문에 배터리 업계에서는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은 전고체 배터리다. 배터리를 채우고 있는 전해질 용액을 액체가 아닌 고체 상태로 만든다면 열과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해액 누수를 막을 수 있어 폭발 위험성이 낮아진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후지경제연구소는 오는 2035년경이면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약 28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에 비해 성능 감소가 빠르다는 점과 생산 비용이 높다는 점에서 상용화에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1489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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