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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의 금리 인하 시사 그 후] 연준의 ‘선제적 대응’ 효과 이번엔 글쎄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낮은 금리, 미중 무역전쟁, 지정학적 불안 등 걸림돌… 통화정책 회의론 거세질 수도

“역사적 유턴(U Turn).” 프랑스 명문 인시아드대 안토니오 파타스 교수(경제학)가 올 3월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올 1월 초 인내를 입에 올린 것을 두고서다. 당시 파월은 “인내하며 경제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기준금리 인상 중단의 시그널이었다. 실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월 30일 성명에서 “위원회는 인내심을 갖고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하는 게 적절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파타스는 “Fed가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까지는 적어도 5년이 걸릴 전망”이라며 “통화정책 정상화(Back to Normal)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됐다”고 말했다.

파타스 말이 주술적 힘을 발휘했을까. 6월 19일(현지시간) 파월은 인내를 끝냈다. 그는 이날 FOMC 성명서에서 ‘인내심’ 관련 단어를 없앴다. 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는 “위원들이 통화정책을 완화할 근거가 강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의 시그널이다.

6개월 만에 끝난 파월의 인내

그럴 만했다. 미 경제는 올 1분기 예상을 깨고 3.2%(연율) 성장했다. 하지만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6월 비즈니스컨디션지수(BCI)가 2009년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미 경제 자체의 열기가 식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2020년 경기 침체설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8년 위기를 예측한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2020년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튼소리는 아닌 듯하다. 미·중 무역전쟁이 좀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가장 심한 무역갈등이다. 지정학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과의 갈등이 걸프지역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때문에 고조되고 있다. FOMC 멤버들마저도 성명서에서 미 경제를 표현하는 말을 ‘탄탄한(solid)’에서 ‘완만한(moderate)’으로 바꿀 정도다. 한단계 낮춘 셈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등도 추가적인 통화완화를 내비쳤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추가 부양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BOJ 총재는 연준보다 하루 후인 6월 20일 열린 통화정책회를 마치고 “자산 매입을 연 80조엔(약 860조원)에서 유지한다”며 “글로벌 정보기술(IT) 부문의 경기 조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6월 초부터 구로다는 “미·중 무역전쟁 등 해외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해왔다. 대외 변수에 따라 추가 완화도 가능하다는 시그널이다.

ECB와 BOJ의 움직임과 중국 위안화 약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신경을 건드리는 요소다. 그는 금리 인하 압력 단계를 넘어 파월 해임까지 시사했다. 파월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파월은 인내를 약 6개월 만에 끝내고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선제적 대응은 1980년대 이후 연준이 성공해본 전략이다. 로버트 헷절 리치몬드연방준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서 등을 통해 “선제적 대응은 역풍이 불기 전에 미리 대응하는 전략”이라며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 시대 연준이 즐겨 써 ‘V-G패러다임’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V와 G는 볼커와 그린스펀의 첫글자다. 연준의 역사에서 두 사람은 숙원을 해결한 사람이었다. 선제적 대응은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를 주도한 윌리엄 마틴(재임기간 1951~70년) 전 연준 의장이 주창한 전략이다. 그는 생전에 “경기 변동에 앞서 대응하는 통화정책(lean against wind)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후임자인 볼커와 그린스펀이 실행하는 모습을 보고 1998년 숨을 거뒀다.

이제 월가와 여의도 경제 분석가들은 파월이 언제 금리 인하를 단행할지를 두고 예측 게임을 시작했다. ‘올 3분기일까 아니면 4분기일까’다. 국내 몇몇 이코노미스트들은 7월 회의 때 금리 인하가 단행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심지어 과감한 분석가들은 4차 양적완화(QE4)를 예언하기도 했다. 시장 한켠에선 유동성 장세 기대감도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미 금리 인하나 추가 양적완화가 기대한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됐다. 자산운용사인 PGIM 펀드매니저인 네이선 쉬츠는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연준이 무역전쟁의 역풍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금리를 내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Fed의 운신 폭은 크지 않다.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2.5%(최고 목표치)다.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택하지 않는다면, 운신의 폭은 최대 2.5%포인트 정도 밖에 안 된다.

더구나 미국 우량 회사채(10년물) 금리가 3.5% 안팎이다. 2009년 위기 순간에 버금갈 정도로 낮아졌다. 기준금리를 내려봐야 기업의 설비투자를 자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린스펀 시절 선제적 금리 인하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당씨 선제적 금리 인하는 주식과 장기 회사채 가격을 부양해 기업의 장기 자금 조달비용을 ‘빠르게 떨어뜨려’ 투자와 일자리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올해에는 연준이 금리를 내려도 주식과 채권 가격이 단기 상승에 그칠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연준이 금리를 내리거나 더 나아가 자산을 매입(추가 양적완화)하면,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더 많이 감수하기보다 줄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통화완화를 장기 회사채나 주식 등 더 위험한 자산을 사들이는 기회가 아니라 위험자산을 처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역전쟁과 지정학적인 불안 탓이다.

대형 금융그룹 모임인 국제금융협회(IIF)의 마틴 브룩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SUNDAY와 통화에서 “시장 금리는 파월이 올 1월 인내하며 살펴보겠다고 말할 때부터 낮게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연준이 금리를 내려도 이미 낮아진 시장 금리를 재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듯하다”고 말했다. 또 연준의 통화완화가 “트럼프의 기대와는 달리 위안화 기준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 값이 올해 초 이후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등이 무역전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주식·채권 가격 단기 상승에 그칠 듯

선제적 대응의 결과가 시원찮으면 1987년 그린스펀 등장 이후 경제정책의 대명사가 된 통화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통화정책 회의론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L. 랜덜 레이 미 바드컬리지 교수(경제학) 등 포스트 케인스학파들에 의해 제기됐다. 최근 들어서는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 네오 케인스학파들로 번지고 있다. 케인스학파의 좌파에서 우파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파월이 다시 쓴 선제적 대응의 실패가 회의론을 더욱 증폭시켜 정책 패러다임을 변경시키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아이 아논 벤구리온대학 교수가 [통화 이론과 정책:흄과스미스에서 빅셀까지]란 책에서 말한대로 “경제위기는 시간 차가 있기는 하지만 당대 주류 이론과 정책 패러다임의 위기로 이어지는 셈”이다.

1490호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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