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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늘어나는 빌딩 투자] 저금리·아파트 규제에 ‘믿을 건 건물’ 

 

법인 세워 사면 대출·세금 문제 유리… 강남·광화문 지역 인기에 여의도 관심도 커져

▎유튜버 보람양이 매입해 화제가 된 서울 청담동 빌딩. / 사진:구글
최근 인기 유튜버 6세 보람양이 가족회사 명의로 95억원 상당의 빌딩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서울 청담동의 대지 면적 258.3㎡짜리 5층 빌딩으로, 대지 3.3㎡당 매입 가격은 1억2100만원에 달했다. 건물 전체의 보증금은 3억원에 월세 수입은 2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람양뿐만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노홍철·아이유·엄지원·송승헌 등 유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빌딩을 사들였다. 노홍철은 서울 신사동 빌딩을 122억원에, 아이유는 과천의 46억원짜리 건물을, 송승헌·하정우는 서울 종로 빌딩을 매입했다. 보람양 말고도 적지 않은 온라인 방송 인플루언서들이 빌딩 매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2017~18년 다소 잠잠했던 빌딩 거래가 늘고 있다. 종합부동산 서비스 회사 신영에셋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분당권 역에서 거래가 완료된 오피스빌딩 거래 금액은 6조8733억원(거래면적 3300㎡ 이상)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금액(6조1150억원)보다 12.4%가 증가했다. 거래 건수는 37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38건에 비해 1건 줄었지만, 거래 금액은 늘었다. 을지로 써밋타워(8578억원), 퇴계로 스테이트타워 남산(5886억원), 종각역 종로타워(4637억원), 서울역 서울스퀘어(9883억원), 잠실역 삼성SDS타워(6280억원), KT목동정보 전산센터(3200억원) 등 고가의 대형 매물 거래가 늘어서다.

물론 대한민국 부동산 1번지인 강남 지역의 빌딩 매매도 활발하다. 임대료 급등으로 4~5년 전에 비해 상권이 위축됐지만, 지가 상승 등의 기대감으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 지역에서 대형 빌딩 거래가 활발하다면, 강남은 중소형 빌딩이 주로 거래되고 있다.

오동협 원빌딩중개법인 대표는 “강남 지역 주택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급등한 것처럼 빌딩 거래도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강남 지역 거주자 증가에 따른 상권 활성화와 삼성동의 대규모 개발 등의 호재가 맞물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빌딩 매매 수요가 증가한 것은 장기 저금리와 관련이 깊다. 국내외 금리 인하가 이어지면서 자금 조달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빌딩 감정가가 30억~50억원이라면 감정가액의 절반 정도를 대출 받아 매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빌딩 매입에 연 2.5%의 금리로 20억원을 대출 받는다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1050만원(20년 만기 기준)이다. 임대료로 상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최근 경기와 증시 부진으로 빌딩이 주목 받은 측면도 크다. 부동산은 인플레이션 헷지 효과가 있어 주식·채권 등 금융 상품에 비해 경기 충격, 금융시장 불안, 물가 상승 등 리스크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저금리에 시세 상승 노린 장기 투자자 몰려


지난해에는 정부가 꺼낸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 규제 영향을 받아 빌딩 투자가 부진했다. RTI란 담보가치 외에 임대수익으로 어느 정도까지 이자상환이 가능한지 산정하는 지표로 임대소득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1억원 이상 대출을 받을 경우 임대사업자들은 RTI가 150%(주택임대업 125%) 이상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상권이 좋지 못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빌딩 헐값 매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법인 설립을 통한 빌딩 매입 방법이 퍼지며 다시 매수세가 움트고 있다. 개인 임대업자의 RTI는 150%라 일반적으로 감정가의 50% 밖에는 대출받지 못하지만, 법인은 RTI 적용을 받지 않아 최대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인 법인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인 설립을 통한 빌딩 매매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기 부동산 신설 법인은 315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2463개)보다 27.9% 늘어난 것에서도 최근 빌딩 시장 동향을 엿볼 수 있다.

배우 권상우도 지난해 서울 등촌동 빌딩을 법인 명의로 매입했으며, 보람양도 법인 ‘보람패밀리’를 통해 빌딩을 사들였다. 법인 운영 등에 여러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1세대 1주택이라면 법인보다는 개인 임대업자가 유리하다. 다만 다주택자의 경우 금리 조건이나 세금 측면에서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지역별로는 종로·광화문 등 서울 중심가가 크게 부상했다는 점이 지난 2~3년 전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올 상반기 도심 권역 거래액은 3조4778억원으로 서울·분당권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2014~16년 빌딩 투자가 주로 강남권에 집중됐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대문 인근 구도심의 현대화 사업이 마무리 된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문화유적이 많아 방문객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신축 대형 빌딩을 중심으로 상권이 활성화 됐다.

SK텔레콤의 상권분석 서비스 ‘지오비전’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전국 주요 20개 상권 중 연 매출과 인당 매출이 가장 많은 지역 1위는 서울 광화문 인근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오비전은 위치와 인구지리·매출·업종 등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는 상권분석 도구다. 광화문역 상권은 2013년 연매출 7411억원으로 20위 수준에 그쳤는데, 매출이 5조8355억원으로 8배 이상 늘며 국내 최고 상권에 올랐다. 시청역 상권도 2013년 연 매출 1845억원로 전국 100대 상권 중 89위에 불과했지만, 이 기간 3조8080억원을 기록해 5위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부동의 1위를 지키던 강남역 남부는 매출 순위가 13위로 밀렸고, 2012년 2위이던 압구정동도 19위까지 떨어졌다. 위워크 등 공유오피스 붐으로 종로구 일대 대형 빌딩 매매가 활발하기도 했다.

도심 현대화 사업으로 광화문 일대 인기

종로처럼 도시 재개발 사업이 빌딩 시세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다음 주목 받는 지역은 여의도 일대다. 고층 빌딩 밀집 지역인 여의도는 국제금융센터(IFC)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빌딩 등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공급 과잉 문제에 시달리며 임대 시장이 악화됐다. 맥쿼리투자신탁·스팍스자산운용·딜로이트안진·옥시 등 잘 나가던 회사들에 IFC에 입주하자마자 경영 악화에 시달리자 여의도 일대에선 ‘IFC 괴담’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마포·서대문 일대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마무리 되며 젊은 부부들의 입주가 늘었고, 마곡지구 등 강서지역 개발 등으로 지난 1~2년 새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 강서, 북서 지역 상권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여의도의 오피스 공실률은 꾸준히 두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지난해부터 낮아지기 시작해 올 5월에는 공실율 7.3%(영등포구 등 여의도권역)로 내려왔다.

여기에 내년 7월 파크원을 필두로 신규 오피스 빌딩들이 여의도 대거 들어설 예정이라 전체적 상권 수준이 향상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여의도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낮 시간에 IFC 몰에서 모임을 갖는 가정주부들이 느는 등 단지 직장인 상권에서 벗어났다”며 “건물주들이 임대료 무료 등의 마케팅을 벌인 것도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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