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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경상수지 적자의 흑역사] 국교 정상화 이후 단 한번도 흑자 못내 

 

54년간 무역 적자 누적액 700조원대… 부품·소재 높은 의존도와 중국 부상 영향

▎디스플레이 소재는 한국이 일본과의 무역에서 매년 손해를 입고 있는 분야다. 사진은 금호석유화학이 디스플레이 소재 연구에 한창인 모습(본문과는 관련 없음). / 사진:금호석유화학
7월 들어 시작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수출규제)에 격앙된 국민들은 불매운동으로 대응 중이다. 단순히 일제 강점기부터 축적된, 뿌리 깊은 반일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과의 교역에서 오랜 기간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며, 이번 일로 그 심각성이 부각됐기에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이를 짚어보려면 국제거래에서의 핵심 지표인 경상수지 추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는 국가 간 거래에서 상품·서비스의 수출입을 통해 얻는 이익이나 손실이다.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 무역외수지로 나뉜다. 무역수지가 상품 수출입에 관한 지표라면, 무역외수지는 서비스 거래 결과나 본원소득에 대한 지표다.

2010년부터 해마다 200억 달러 이상 적자


무역수지부터 보면, 지금껏 일본에 대한 한국의 적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그만큼 손해가 막심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對日) 무역 적자 누적액은 총 6046억 달러(약 708조원)에 달했다. 65년 1억3000만 달러였던 적자 규모는 1974년 12억4000만 달러, 1994년 118억7000만 달러로 커졌다. 1998년 한때 46억300만 달러로 줄었지만 200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 361억2000만 달러로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010년대에 연간 무역 적자가 2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난해에도 240억8000만 달러 적자로 교역국 중 일본에서 가장 큰 손해를 입었다. 종합적으로 65년 이후 일본과의 무역에서 한국이 연간 기준 흑자를 기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100억5000만 달러 이상의 무역 적자를 냈다.

지난해 주요 적자 품목을 보면 ▶원자로·보일러·기계류(-85억7000만 달러) ▶전기기기·녹음기·재생기(-43억3000만 달러) ▶광학기기·정밀기기(-35억7000만 달러) 순이었다. 원자로·보일러·기계류의 경우 수입액만 124억 달러에 달했다. 원자로는 원자력발전(원전)에, 보일러는 화력발전에 쓰인다. 이 외에 수입액이 많은 품목으로는 ▶반도체 제조장치(52억4000만 달러)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등 집적회로(19억2000만 달러) ▶정밀 화학 원료(19억 달러) ▶플라스틱필름과 시트(16억3400만 달러) 등이 있었다. 각각 한국 제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부품·소재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수출 제한을 발표한 3개 품목도 여기에 해당했다. 전체적으로 240억8000만 달러 적자 가운데 150억 달러 이상이 부품·소재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들 부품·소재는 불매운동을 펼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소비재’가 아닌, 기업들이 의존하는 ‘산업재’다. 국민들이 앞장서서 소비재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차제에 국내 제조업의 고강도 체질 개선을 이뤄내지 않는 한 산업재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이로 인한 적자까지 메꾸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재의 경우 일본산 수입이 여전히 많음에도 지난해 ▶담배(3억 달러) ▶음료·주류·식초(9200만 달러) ▶의류 및 부속품(4000만 달러) 등의 흑자가 발생했다. 불매운동이 격화되고 장기화하면서 올해 이들 품목의 무역수지는 지난해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65년부터 1980년대까지 매년 무역에서 적자를 내면서도 심각한 규모까지는 아니었다가, 2000년대 이후 그 규모가 급증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 무렵부터 한국의 대일 수출 비중이 크게 줄어든 배경에 주목한다. 정순원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지난해 한국의 대일 수출 비중은 5.3%로 과거보다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2000년엔 11.9%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무렵엔 20%가량이었다.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중요성 증대, 교역국 수 증가 등의 영향으로 대일 무역 비중 자체가 급감한 이유도 있었지만(대일 수입 비중도 2000년 19.8%에서 지난해 11.5%로 감소) 한국 상품이 일본 시장에서 과거처럼 잘 통하지 않게 된 것이 작용했다.

특히 중국이 저임금 노동시장을 통해 확보한 가격 경쟁력과, 단기간 쌓아올린 기술력으로 제조업에서 한국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그 경합 결과 중국산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을 대체하는 경우가 2000년대 이후 급증했다.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0년대 들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장윤종 포스코경영연구원장은 “2010년대 들어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모든 업종이 생산과 수출에서 2000년대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지난 10년간 제조업 내 수출이 10.5%에서 2.8%로, 부가가치는 9.2%에서 4.5%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2012~2018년 한국의 제조업 성장률은 연평균 2.9%로,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인 3.0%에도 못 미쳤다.

일본에서 한국 수출품의 영향력이 약해진 사이, 한국은 절대적인 대일 수입 비중 감소와는 무관하게 부품·소재 의존도를 낮추지 못했다. 완제품을 만드는 주력 산업(수출) 분야에서 일본 부품·소재 기술에 계속해서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1970년대부터 중간재를 해외에서 사와 국내에서 조립하는 가공무역 중심의 수출 전략을 구사한 한국으로서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경제적인 운송이 가능한 데다, 기술력과 자본력을 겸비한 일본 기업들의 중간재 도입에 일찌감치 힘썼다. 1990년대부터 이런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력을 키워 국산화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져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기업에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보다는 쥐어짜내기 바쁜, 기형적 산업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것도 컸다. 결국 뾰족한 대안 없이 일본산 부품·소재에 매달린 결과가 2000~2010년대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일 무역 적자였다.

여행 등 무역외수지도 대일 적자 이어져

한국은 무역외수지에서도 대일 적자를 기록 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서비스수지의 경우 2012년 36억 달러 흑자에서 감소세로 전환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적자였다. 지난해 대일 서비스 적자는 28억 달러였다. 그사이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인 여행객이 급증한 것과 관련이 깊다. 여행수지가 2012년 이후 나빠지면서 2014년부터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대일 여행 적자만 34억 달러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한국을 찾은 일본인(302만3000명)이 일본을 찾은 한국인(243만9800명)보다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53만9000명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294만9000명)의 2.5배 수준이었다.

최근의 불매운동이 잇단 일본행 취소 등으로 이어지면서 올해 모처럼 여행수지가 개선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여행 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일본행 패키지 신규 예약자 수는 7월 일평균 500~600명으로 이전(1100여 명)의 절반 규모로 줄어들었다. 다른 여행사들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다만 일본 내에서 반한 감정이 심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 경우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 대일본원소득수지 역시 적자 상태다. 한국 자본이 일본에 기업을 설립한 경우보다 일본 자본이 한국에 기업을 세운 경우가 더 많아서다. 지난해 국내 외국인 직접투자 잔액(269억 달러) 중 일본 국적의 비중은 21.4%에 달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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